영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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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호 목사(한국교회연합 바른신앙수호위원장, 예장 합동총신 증경총회장)
최철호 목사(한국교회연합 바른신앙수호위원장, 예장 합동총신 증경총회장) ©합동총신

인간이 가장 궁금해 하는 대상은 ‘영혼’일 것이다. 신학, 철학, 심리학, 사회학 등의 모든 학문과 종교는 이 궁금증과 자체의 신비에서 비롯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혼에 관하여 가장 오래 되고 유명한 철학적 고찰은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의 《영혼에 관하여》이다. 그는 정의하기를 “영혼은 생명을 잠재적으로 가지는 자연적 신체의 제일 현실태이다”고 하였다. 그는 영혼의 여러 능력으로 영양섭취능력, 욕구능력, 감각능력, 장소운동능력, 사고능력을 꼽았다. 이후 그의 성찰은 몇몇 학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다수의 관념을 지배하였다. 그만큼 그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때 영혼에 관한 생각은 잡다하였다. 이를테면, 영혼은 불 또는 뜨거운 것이다(데모크리토스, 레유키포스), 영혼과 지성은 동일하다(데모크리토스), 영혼과 지성은 서로 다르다(아낙사고라스), 영혼은 제일원리들이다(엠페도클레스, 헤라클레이토스), 영혼은 원소들이다(플라톤-티마이오스), 영혼은 일종의 운동능력이다(탈레스), 영혼은 공기空氣다(디오게네스), 영혼은 물(습기)이다(히포), 영혼은 피[血]이다(크리티아스), 영혼은 우연하게 신체의 옷을 입은 것이다(피타고라스) 등으로 각양 생각들을 쏟아내었다.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그의 《자유의지론》에서 영혼에 관한 네 가지 학설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영혼이 단일한 혈통에서 오는지(영혼 유전설), 새로 태어나는 사람 각자에게 영혼이 새로 만들어지는지(영혼창조설), 새로 태어나는 사람들의 육체에 다른 곳에 이미 존재하는 영혼들이 보냄을 받는지(영혼선재설), 그것도 하나님이 보내시는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오는지 (하는 네 가지 가설 중에서) 그 어느 것도 경솔하게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그는 영혼(아니마anima)이 지성(누스νοῦς)으로부터 발생하여 고등사물로부터 하급사물에까지 이른다는 플로티누스의 관념을 따랐다.

코스타 벤 루카(864?-923)는 인간의 육체 안에 두 영이 있다고 보았다. 하나는 생혼으로, 그것의 자양분은 공기이며 심장으로부터 흘러고, 또 하나는 동물혼으로, 그것의 자양분은 생혼이며 뇌로부터 흘러나온다고 보았다.

아비첸나(980-1037)는 영혼을 육체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실체로 보았는데, 영혼은 네 가지의 사변적 능력―질료적 지성, 습성적 지성, 현실적 지성, 조명을 받기에 적합한 지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군디살리누스(?-1151)는 영혼이 물체는 아니지만 실체로서 어떤 의지적 운동에 의해서 물체들을 활성화 하고, 감각화 하며, 움직이는 어떤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영혼이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받아들였다.

12세기 말의 인물인 요한 블룬드는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형상이며, 그러므로 육체와 더불어 소멸한다고 하였다.

필리푸스(1160/85-1236)는 영혼이 세 가지의 실체―생장혼, 감각혼, 이성혼―로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앞의 둘은 유전되고 소멸되지만, 이성혼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고 즉각적으로 주입되며 비소멸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알렉산더 할레스(1170-1246)는 영혼과 육체는 서로 구별되는 실체인데, 이성혼이 하나님에 의해 주입되기 이전의 태아에게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의 능력을 초월한다고 보았다.

기욤 도베르뉴(1190-1249)도 영혼과 육체는 각각 구별되는 실체로 보았다. 그는 영혼이 육체의 실체적 형상이 아니라 다만 화법으로만 가능할 뿐이라고 하였으며, 영혼만이 인간적 작용의 유일한 주체라고 하였다.

아베로에스(1126-1198)는 인류 전체에 단 하나의 수동적이고 능동적인 지성이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영혼 안에 있는 두 부분 중 하나인 능동지성은 가능지성 위에 작용하고, 가능지성은 그것을 수용하는 질료적 지성이라고 함으로써 지성단일론을 주장하였다.

롤랑 크레모나(?-1259)는 영혼과 육체가 구별되는 두 개의 실체라는 전통적 견해를 따르면서도, 영혼이 육체를 떠날 때 그 영혼은 더 이상 영혼이라 불리지 않고 영으로 불러야 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 순간 영혼은 육체와의 관계를 상실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로베르투스 그로싸테스타(1160-1253)는 인간 영혼이 삼위일체의 모상이기 때문에 육체와 맺고 있는 관계가 하나님이 피조물과 맺고 있는 관계를 유한한 차원에서 모방한다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에 의해 무로부터 창조된 영혼이 임신하는 순간 육체 속에 주입되며, 영적인 것이 가장 가까운 물체적 실체인 빛을 통해서 육체에 작용한다고 하였다.

페르투스 히스파누스(1205-1277)는 육체가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지 않고, 다만 이성혼에 의해 전해지는 현실성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한 질료로 이해하였다. 그는 인간 안에 단 하나의 형상만 있는데, 이 형상이 바로 이성혼이며, 육체는 영혼에 의해 수용되는 생명에 대해 가능태로 질서지워진다고 하였다.

로저 베이컨(1214/20-1292)은 이성혼만이 하나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고, 생장혼과 감각혼은 자연적 형상으로 소멸한다고 보았다. 그는 생장혼과 감각혼은 질료의 잠재성으로부터 도출되고 유전되는데, 특히 생장혼은 육체로 하여금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이성혼을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는 예비적 형상이라고 하였다.

알베르투스 마뉴스(1200-1280)는 영혼이 하나의 영적 실체로서 육체와 결합하려는 자연적 경향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영혼 안에는 능동지성과 가능지성이 있는데, 전자는 현실태로부터 나오고 후지는 가능태로부터 나오는 영혼의 부분이라고 하였다.

보나벤투라(1217-1274)는 영혼을 인간의 형상으로 이해하였는데, 영혼과 육체는 각각 고유한 질료와 형상으로 서로 합성되어 있고, 각각 상대방과 결합되려는 경향을 지닌다고 하였다. 그는 가능지성과 능동지성의 구별을 부정하고, 영혼이 지닌 하나의 능력 가운데 들어 있는 두 작용이라고 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1224/5-1274)는 실체적 형상의 단일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영혼의 주체는 육체가 아니라 제일 질료이며, 영혼은 육체가 그것을 통해 존재하고 살아 있도록 하는 원리, 물질적 기관들을 통해서 활동하는 질료의 형상이라고 보았다. 그는 자신의 걸작 《신학대전》에서 “지성적 혼은 순수한 형상이고 질료와 형상으로 복합된 어떤 것이 아니다”고 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혼의 존재는 그것이 신체의 형상(forma)인 한에 신체 안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신체보다 먼저 있는 것은 아니나 신체가 소멸되어도 자기 존재 안에 존속한다. 이렇게 각기의 혼은 자기의 일성(一性, unitas) 안에 존속한다. 따라서 많은 혼이 그 다수성 안에 존속한다.” 그는 영혼에 관하여 《신학대전》과 《지성단일성》을 통하여 상세하게 논술하였다.

이상은 철학적 관점에서 영혼을 탐구한 것으로, 백화쟁론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영혼에 대하여 명확하게 정의한다.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 인간은 전체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영혼을 영과 혼으로 구별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영혼’으로 통칭할 것인가는 신학적 관점의 차이이지, 교리로 다룰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봤을 때 이성적인 면이 강한 서양인들은 이 둘을 거의 구별하지 않으나, 동양인들은 서로 구별하는 데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물론 서양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람은 전자의 입장을 취한다.

구약성경은 입김, 숨, 바람, 공기 등의 여러 의미를 갖는 ‘루아흐’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있다. 사람의 심령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짐승에 대해서도 사용한바 있다(전 3:21, 한글성경은 ‘혼’으로 번역하였다). 영혼에 대한 개념은 신약에 들어와서 보다 명확해진다. 직관과 교통의 기능을 갖는 영spirit은 ‘프뉴마’로, 이성적인 부분인 혼soul은 ‘프쉬케’로 각각 표현된다. 영혼에 대하여 가장 깊이 있게 다룬 곳이 로마서 8장이다. 프뉴마는 사람의 영과 하나님의 영애 대해 동일하게 사용된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직접적인 장소는 프뉴마(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하나님과 말씀(성경)을 보다 더 잘 이해하려면 영과 혼을 구별하는 것이 훨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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