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가 이끄는 삶(스바냐, 학개)

오피니언·칼럼
기고
예배는 하나님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것입니다.(24)
가진수 (월드미션대학교 예배학과 교수) 

기원전 7세기 후반, 유다가 불순종의 삶으로 인해 참되게 예배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선지자 스바냐를 일으키셔서 불충한 백성들을 흔들어 깨우셨습니다.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습 1:14-15)

스바냐는 유다의 요시야 왕 시기에 선지자로 활동했습니다. 이 시기에 유다 사람들은 다른 종교에서 가져온 풍습과 숭배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 위에 손을 펴서 남아 있는 바알을 그 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또 지붕에서 하늘의 뭇 별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과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멸절하리라”(습 1:4-6)

신실하지 못한 백성들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는 이미 심판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요시야 왕의 개혁(왕하 22-23장)조차 하나님의 심판을 완전히 뒤집기에는 많이 늦었습니다. 하지만 스바냐는 여전히 유다의 희망을 놓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경외함 가운데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날, 심판의 날을 잠잠히 기다리면서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돌이켜 순종하는 길이었습니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습 2:3) 스바냐서는 하나님의 위엄과 거룩함 앞에 우리 모두 겸손해야 함을 말해줍니다. 권능의 재판관이시며 왕이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며 침묵 가운데 예배하면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한편 스바냐는 이 위기의 시기에 새로운 예배의 시대가 열릴 것을 보여줍니다. 신실한 남은 자들이 하나님께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습 3:13-14). 그리고 남은 자들이 이방 민족들에게 심판을 행할 때에 그 민족들조차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가 그들에게 두렵게 되어서 세상의 모든 신을 쇠약하게 하리니 이방의 모든 해변 사람들이 각각 자기 처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습 2:11) 이 땅의 모든 백성과 열방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습 3:9-10). 스바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전 우주가 하나님을 예배하여 그의 앞에 모든 무릎을 꿇고 모든 입술이 고백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다’라고 고백할 것을 예언합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10-11)

아마도 스바냐에서 가장 가슴을 울리는 구절은 이 말씀일 것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4, 17).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인해 기뻐하시며 심지어 즐거이 부르며 노래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의 예배는 생동감이 넘치며 기쁨이 넘치는 역동적인 예배가 될 것입니다(습 3:15). 예배는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는 그분을 높이고 그분께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우리를 향해 같은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이 분명하고 놀라운 사실에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스바냐서를 통해 몇 가지 예배의 통찰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가장 싫어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 위에 손을 펴서 남아 있는 바알을 그 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습 1:4)

둘째, 하나님은 예배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으시며 온전한 헌신만을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또 지붕에서 하늘의 뭇 별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과”(습 1:5)

셋째,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우리의 자세는 겸손과 경외의 침묵이어야 합니다.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하고 그가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음이니라”(습 1:7)

넷째, 하나님은 모든 민족으로부터 예배 받으시기 합당한 분이십니다.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습 3:9)

다섯째,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에서 가장 원하시는 것은 순종과 겸손입니다.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습 3:12)

한편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는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유대 땅에 새 제국을 세웠습니다.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는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가 예루살렘에 성전을 다시 짓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이 열정은 점점 시들어져 18년이 지난 후에도 성전은 아직 완공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를 스가랴와 함께 보내셔서 유대인들이 성전 재건축을 마무리하도록 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집을 위해서는 잘 꾸미면서 성전은 무시했습니다.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학 1:4) 이는 백성들의 왜곡된 우선순위를 말해줍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 위에 두었습니다. 성전 재건을 통해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삶의 바른 우선순위를 세우도록 하시며 예배를 그 무엇보다 우선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학개는 ‘우리 삶에서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으로 우리를 일깨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존재하는 예배자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2) 그리고 변치 않는 우리의 가장 큰 우선순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학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올바로 세우지 않으면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축복이 위태롭게 됨을 알려줍니다(학 1장). 비록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 얻고자 하는 이기적인 욕망으로 예배해서는 안되지만, 바른 예배는 우리 삶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도록 역사하십니다(학 2:18-19).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합당한 자리와 영광을 드리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축복의 삶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우선순위를 가르치셨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학개는 성전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는 곳임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 2:7) 그리고 하나님이 모든 민족을 흔드시고 성전을 완전한 광채로 채우실 미래를 바라봅니다. 성전의 재건축을 감독하는 스룹바벨은 하나님의 ‘인장’이 될 것이며 따라서 앞으로 오실 메시야를 미리 알려줍니다(학 2:20-23).

학개는 당시 유다의 상황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히 드러날 미래를 예언했습니다. 성전보다 더 크시다고 하신 예수님은 참으로 ‘임마누엘’이시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마 1:23).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 12:6) 그러므로 우리는 한때 유대인들처럼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왕상 8:48, 단 6:10). 우리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시는 오직 그분께 온전히 예배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우리의 우선순위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을 때,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우치기 위해서는 때론 아픈 질책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을 짓는 일에만 열중했으며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새롭게 하는 일은 실패했습니다. 학개의 말은 하나님 백성들이 잘못 가고 있는 마음을 흔드는 직접적이고 강력한 질책이었습니다.

학개는 백성들에게 성전을 다시 지으라고 명령했습니다(학 1:4, 9). 성전은 예식을 치르기 위한 건물 그 이상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눈에 보이는 상징입니다. 성전은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회복된 관계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학개 선지자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신실한 임재가 임한다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학개는 그 땅으로 돌아온 진정한 이유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였음을 그 백성에게 경고하며 약속의 말씀을 함께 전했습니다(학 2:10-19). 백성들은 예배에 대한 우선순위를 즉각 바르게 잡아야 했습니다.

학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올바른 길로 갈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는 올바른 우선순위와 참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며 이것이 메시아가 통치할 미래임을 알려주었습니다(학 2:22-23). 에스겔이 묘사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미래에 예배드릴 ‘새 성전’과 일맥상통합니다(겔 40-46장). 이 미래의 성전에 대한 말씀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당시 백성들에게 필수적인 삶의 일부였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전이나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부름 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 2:9)

우리는 학개서를 통해 몇 가지 예배의 통찰을 배웁니다. 첫째, 예배는 개인적 편안함보다 우선 되어야 합니다.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학 1:4)

둘째, 우리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없을 때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학 1:6)

셋째,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존귀와 영광을 드리는 것이며 예배의 시작입니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학 1:12)

넷째,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우리를 위로하시며 임재를 약속하십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 2:5-7)

다섯째, 불순종은 우리가 하나님께 가져오는 제물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학 2:12)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의 가장 중요한 자세는 순종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교회에서 자주 예배를 드리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예배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학개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삶을 버리고 주일을 포함한 교회 예배뿐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나라를 다른 모든 것보다 첫 번째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의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예배가 우리 인생의 가장 최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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