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 대한민국, 그리고 기독교(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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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수 교수 ©기독일보 DB

그러면 대한민국의 건국과정에서 한국 기독교가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첫 번째로 한국 기독교는 미군정의 중요한 파트너로 역할을 담당하였다. 우리는 1945년에서 48년에 이르는 미군정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미군정요원은 미군 가운데 최고 학력이 높은 집단이었다. 이들은 미국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로서 원래 일본의 통치를 위해 준비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일본식 행정을 미국식 행정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바로 선교사들과 그의 자녀들이었다. 이들은 미국인들 가운데서 한국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었다. 이들과 파트너가 되어서 해방 3년을 이끌어 간 한국사람들도 대부분 기독교인들로서 영어를 알고, 민주주의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과게 일제시기 변두리에 있었던 친미기독교세력이 이제는 중심인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새로운 나라의 기초를 만들었다.

둘째, 해방 후 한국사회를 이끌어 갔던 정치지도자들은 주로 기독교인들이었다. 해방정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정치인은 이승만, 김구, 김규식, 여운형, 박헌영이었다. 이 중 이승만, 김구, 김규식은 기독교인이었다. 이들은 다같이 귀국하여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였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지지했다. 이승만은 귀국해서 기독교인들을 배경으로 독립촉성중앙회를 만들었고, 김구는 반탁투쟁을 했으며, 김규식은 기독교청년회를 배경으로 활동하였다. 이 셋은 다같이 독립촉성국민회를 만들어서 같이 활동하였다. 하지만 이들 중, 김규식이 좌우합작에 나섬으로, 김구가 남한단독선거를 반대함으로 남한의 기독교인들은 이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결국 이승만을 대한민국의 유일한 지도자로 지지하게 되었다.

셋째,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세력은 서북출신의 기독교인들이다. 해방 직후 서북지역의 기독교인들은 조만식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국가건설을 꿈꾸었다. 그러나 이들은 북한이 공산화되자 월남하여 남한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는데 커다란 노력을 다 기울였다. 비록 조만식은 북한에 잔류했지만 평북의 한경직, 평남의 이윤영등은 월남해서 이승만과 함께 대한민국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서북기독교과 미국 기독교의 관계를 활용하여 미군정을 잘 활용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친미유학파를 통해서 미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넷째, 해방정국에서 각 지역의 기독교인들은 좌익세력과 싸우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해방 직후에 기독교인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 후 미군이 늦게 한반도에 늦게 상륙함으로써 한동안 좌익이 인민위원회를 만들어서 중요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이승만과 김구가 귀국하면서 이들은 국내의 기독교인들과 손을 잡고 자신들의 세력을 각 지역으로 확대하였다. 이승만, 김구, 그리고 임시정부요인들은 독립촉성국민회를 만들어서 각 지역에 지부를 형성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각 지역에 설립되었던 인민위원회와 투쟁하였다. 이런 지역 기독교인들의 노력이 없이는 각 지역의 인민위원회와 투쟁할 수 없었다.

필자는 해방공간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에 가장 중요하게 기여한 집단이 바로 독촉국민회라고 생각한다. 이 국민회는 이승만을 정점으로하는 임정요인들을 지도자로 하며,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하는 각 지역인사들을 지역책임자로 하여 당시 전국적으로 가장 큰 정치세력을 형성하였다. 이 단체에서 제헌국회의원이 가장 많이 탄생했고, 이 단체와 관련된 사람들 가운데 각료들이 선출되었다. 이들은 각 지역에서 인민위원회와 싸웠을 뿐만이 아니라 6.25 전쟁시에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가장 많이 희생되었다. 해방공간에서 기독교인들은 주로 정당이 아닌 독촉국민회를 통하여 정치에 참여하였고, 대한민국의 건국에 기여하였다.

박명수 박사(서울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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