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가 이끄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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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자는 항상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해야합니다. (12) (시편)
가진수 교수

시편은 예배의 책입니다. 시편에 있는 시들은 각 저자들의 하나님에 대한 반응이자 예배입니다. 다윗과 아삽을 비롯한 여러 저자들의 시에서 예식의 예배를 넘어서 생동감이 넘치는 찬양과 흘러넘치는 감사와 삶의 예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오직 하나님을 사모하고, 높이며, 영화롭게 합니다.

시편의 히브리어 제목은 ‘찬양(Praises)’이며, 아름다운 표현들로 가득한 시와 찬양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시편의 시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높이고 경배와 헌신을 통해 우리의 신실함을 높이는데 도움을 줍니다. 시편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다양한 예배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승리하심에 대한 환희, 진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 그의 도우심에 대한 간절한 청원,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경건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 등입니다. 한편 시편의 저자들은 탄식을 하나님께 쏟아 놓습니다. 두려움, 상심, 실망 등의 감정과 절박할 때의 간절함 그리고 구원의 확실함을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부르짖어 요청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시편은 오랫동안 교회의 ‘첫 번째 찬송가집’이라고 불려왔습니다. 시편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말씀은 십자가상에서의 예수님의 괴로운 외침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막 15:34) 또한 시편 86:9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말씀은 요한계시록의 기쁨에 찬 찬양에서 역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계 15:4)

오늘날, 많은 위대한 찬송가와 예배 곡들이 시편의 보물창고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할지를 많이 가르쳐줍니다. 각각의 시는 단지 저자의 마음뿐 아니라 그 시를 짓도록 영감을 주신 성령님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편을 더 많이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노래하고 기도할수록, 더욱더 진실함과 열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은 우리를 이전에 갔던 어떤 곳보다 더욱 깊은 곳으로 하나님과 함께 가도록 안내해주며,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넓히게 합니다.

시편들은 예루살렘의 성전 성소에서 희생제물이 드려질 때 노래의 제물로 함께 드려졌습니다. 회당이 각 지역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이는 장소가 되었듯이, 시편은 율법과 선지자들의 암송에 일찍이 포함되었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도 시편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볼 때 시편은 전통적 성가부터 찬송가, 현대 찬양에 이르기까지 모든 예배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시편에 있는 대부분의 시들은 ‘탄원’과 ‘기념’이라는 두 개의 큰 기둥의 주제로 나뉘는데 모두 하나님의 언약에 근본을 둡니다. ‘탄원’ 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약속을 기억하고 도와주시도록 간청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신실하심으로 인해 하나님은 우리의 요구를 들으시고 허락하십니다. ‘기념’ 시는 공동체가 모여서 모든 세상을 다스리는 위대한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그분의 구원하시는 역사를 찬양합니다(시 47:2).

시편은 ‘나와 우리’ 모두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온 모든 자들에게 예배를 경험케 하면서 또한 하나님의 ‘위대한 성도들’의 구성원이자 예배자로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시편은 다섯 율법서와 유사하게 다섯 권의 책으로 나뉩니다. 각 책은 송영으로 마무리되며 마지막 시편은 전체의 송영으로 마무리됩니다. 시편의 절반은 다윗이 작성했으며 나머지 반은 다른 저자들이 썼습니다. 우리가 모든 시편의 환경을 다 알지 못하지만, 어떻게 예배자들이 시련과 승리 가운데 하나님께 응답하고 예배했는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시편을 읽을 때 우리는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편은 예배가 오직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가장 중요한 우리의 목적임을 가르쳐줍니다. 비록 우리가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은혜도 받지만, 예배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시 108:3-5)

시편은 또한 우리에게 예배의 본질을 알게 해줍니다. 히브리 원어로 ‘예배’의 문자적 의미는 ‘무릎 꿇다’ 또는 ‘엎드리다’입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예배는 높은 권위자에게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자세입니다. 시편은 우리에게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고 권면합니다(시 95:6). 그리고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하라고 우리를 부릅니다(시 96:2).

음악은 예배에서 항상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시편 자체가 ‘성가’지만 예배자들을 ‘새 노래’로 찬양하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목소리와 함께 트럼펫, 수금, 심벌즈 그리고 여러 악기들이 시편을 통해 울려 퍼지며 신체적인 여러 자세와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은 기도의 자세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충성심을 나타내며, 맹세할 때 역시 손을 듭니다. 시편 134편 2절은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권고합니다. 이 자세는 또한 감사함을 나타냅니다. 손뼉을 치는 것은 기념하는 행동이며, 기념 축제에서 성소를 향해가는 예배자의 행진도 의미가 있습니다(시 68:24-25). 그리고 어떤 예배자들은 주님의 임재하심을 소고 치며 춤 추며 기뻐했습니다.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시 150:4) 시편은 하나님을 찬양할 때 모두 함께 하나 되어 화음으로 영광 돌리는 찬양대의 아름다운 모습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내 목소리와 악기가 드러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목소리와 여러 악기를 통해 영광 돌릴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음악이라는 선물을 통해 찬양할 수 있으며, 성경은 음악이 예배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해줍니다.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되찾아왔을 때, 다윗왕은 레위인들이 즐거운 노래를 부르도록 합창단을 임명했습니다. 이 노래들은 악기들과 함께 사용되었으며 합창단의 음악가들 중에는 심벌도 연주했습니다. “노래하는 자 헤만과 아삽과 에단은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요”(대상 15:19) 그리고 몇 편의 시를 쓴(시 50편, 73-83편) 베레갸의 아들 아삽(Asaph)도 있었습니다(대상 6:39, 16:5).

고라의 자손들은 지금의 예배 인도자와 같은 역할을 담당한 또 다른 중요한 집단이며 열두 개의 시편을 지었습니다(시편 42-49편, 84-85편, 87-88편). 성전에서 노래하는 자들이나 음악인들은 예배의 영을 일으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도왔습니다. 성전 음악인들은 자신의 임무를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일평생 음악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로 헌신했으며, 그들의 음악 기술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수해주었습니다. 다윗 왕의 통치 후 몇 세기 동안 128명의 아삽 자손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으며, 성전과 예배를 재건하기 위해 참여했습니다. 그 성전 음악인 가족의 혈통은 매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약 오백 년을 생존했습니다.

아삽과 그의 동료 레위인들은 예배에서의 질서와 보이는 형식 또한 매우 중요시했습니다. 음악인들은 각자의 임무가 주어졌으며, 각자 독특하고 필수적인 부분들을 연주했습니다. 레위인들은 하나님께 예를 갖추어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도 예배했는데 그들은 순결함을 상징하는 세마포 예복을 입었습니다(대상 15:27). 분명한 것은 그들이 모든 면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길 원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일, 성전 봉헌식, 히스기야의 성전 정화, 성전 기초의 재건축과 같은 중요하고 위대한 순간에 악기와 노래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기념하고 예배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레위 지파와 같이 예배와 찬양을 담당하는 전문 사역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영적 능력과 음악적 기술을 겸비한 훈련받은 찬양 인도자들이 많아져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잘 드리는 교회와 공동체가 많아져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찬양 인도자들과 악기 연주자들, 영상과 음향 스태프들이 사역에 집중할 수 있는 토대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은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고 미국의 대통령으로 두 번의 임기를 지냈으며 유용한 기구들을 발명하고, 여러 주제의 탁월한 논문과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무덤에 이름을 새길 때, ‘버지니아 대학의 창립자’로서 기억되기를 가장 원했다고 합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은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죽인 용감한 10대로서, 이스라엘 역사의 위대한 왕으로서, 가장 지혜로운 자였던 솔로몬의 아버지로서가 아닌 열정적인 하나님의 예배자로 기억되길 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피조물로 지음 받았습니다(사 43:21). 그러므로 우리의 가장 최우선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예배자입니다. 다윗은 인생의 분명한 우선순위를 잘 알았던 사람이었고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예배자로서의 삶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인생의 우선순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무엘하 6장에서 다윗 왕은 언약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 도시로 되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것은 즐거운 행사였고 큰 규모의 음악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열광적인 환영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왕의 행동이었습니다. 다윗은 왕을 상징하는 예복을 벗고 행렬을 인도하고 뛰며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해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삼하 6:14)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의 행동은 이미지를 생각하고 명예를 지키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왕에게는 하기 힘든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서 순수하고 열정적인 마음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는 다윗과 같이 있는 그대로의 진심을 담은 순수하고 열정적인 예배자의 모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편의 시와 찬양들은 승리할 때나 슬플 때, 혼란스러울 때, 억압될 때, 만족할 때나 놀랄 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상황과 관계없이 언제나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으로 나아가야 함을 말해줍니다. 시편은 하나님은 전능 왕으로 통치하시며 우리는 그분을 신뢰하며 예배해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예배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열정적인 예배자로서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삼상 13:14)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를 다윗의 고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시 86:11-12)

시편은 갈수록 영적 능력이 약화 되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식어지는 이 시대에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를 알려줍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로서 우리 평생을 온전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모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예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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