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쪽짜리 공청회, 공론 대신 갈등만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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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진영 기자
jykim@cdaily.co.kr

지난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공청회가 예상대로 반쪽짜리로 그쳤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1소위원회가 개최한 이날 공청회에는 법사위 민주당 간사 박주민 의원과 민주당 소속의 법사위 법안심사 1소위 위원, 평등법 발의자인 민주당 이상민 의원, 정의당 장혜영 의원 등과 민주당에서 추천한 진술인 3명만 참석했다.

이날 공청회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진술인 추천도 거부하고 전원 불참했다. 그럼에도 공청회를 그대로 강행한 민주당은 “법안 심의도 아니고 여론을 들어보자는 공청회조차 거부하는 것은 직무 유기”라며 국민의힘에 반쪽짜리 공청회의 책임을 전가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날 공청회가 양당 간 사전 합의가 없이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공청회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여당 법사위 소속 위원들은 20일 발표한 성명에서 “민주당의 일방적인 ‘1소위 공청회’ 개최는 진정성, 정당성, 그리고 법적 효력을 모두 결여한 선거용 꼼수”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공청회 개최를 놓고 국회에서 여야가 정면충돌하는 모습은 향후 ‘차별금지법’의 험로를 짐작케 한다. 다만 민주당이 21대 국회 들어 ‘대북전단금지법’, ‘공수처법’에 이어 최근 ‘검수완박법’까지 다수의 힘으로 몰아붙여 통과시킨 이력으로 볼 때 이 또한 과거의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국회법에 의하면 위원회는 제정 법률안에 대해 공청회를 개최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입법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뿐 아니라 각계각층의 국민 의견을 듣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의힘 소속 위원들은 민주당이 전체회의가 아닌 1소위에서 공청회를 개최하는 제정법안 심사에 필요한 전체회의 공청회를 생략하기 위한 ‘명분쌓기’로 보고 있다.

국회법 제58조 제6항에 따라 위원회에서 제정 법안을 심사할 때는 공청회를 개최하거나 위원회 의결로 이를 생략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여기에서 말하는 ‘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소위원회’에서 하는 공청회는 국회법이 정하고 있는 법률 제정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제정법 심사 시 전체회의에서 공청회를 하도록 한 취지는 심사·의결에 참여하는 위원들 전원이 법안에 대해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려는 것인데 소위원회 공청회만 개최하고 전체회의에서 이를 생략한다면, 이는 다른 위원들의 의견 청취 기회를 박탈하여 국회법에 규정된 안건 심사 절차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복음법률가회도 23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사위 제1소위를 일방적으로 개최해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25일에 개최키로 한 자체가 “국회법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라며 민주당을 강하게 질타했다.

교계는 민주당이 반쪽짜리 공청회를 강행한 것에 격앙된 분위기다. 한교총은 25일 오후에 발표한 논평에서 반대 토론자도 청중도 없이 공청회를 강행한 국회 법사위 제1소위를 향해 “밀실에서 찬성자들만의 논리로 국민의 뜻을 왜곡하려는 몰염치한 권한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진평연과 복음법률가회 등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도 같은 날 국회 안팎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 간 합의없이 일방적인 공청회를 개최한 민주당을 규탄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런가 하면 이런 반쪽짜리 공청회에서 민주당이 추천한 진술인 3인은 한목소리로 차별금지법의 조속한 제정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는 여론이 60%까지 올라오는 등 상당한 수준의 합의가 확보됐다”고 했고, 김종훈 대한성공회 신부는 “기독교인들이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는 것은 일부 의견이 과잉 대표된 것”이라며 각각 차별금지법 제정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교계는 예상했던 바라면서도 내심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다. 특히 진술인이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국민이 60% 이상이라는 주장을 편 것에 대해 그 내용을 정확히 알고 제정에 동의하거나 합의한 것이 아니므로 찬성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일축하면서도 일방적이고 부정확한 논리의 확장을 경계하는 눈치다.

기독교인 대부분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찬성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기독교계를 대표할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은 인사가 교계의 대다수 반대 목소리를 거꾸로 찬성 의견으로 왜곡 둔갑시키는 자체가 교계를 어지럽히고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한다며 자제를 주문하고 있다.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이 발의한 차별금지법(평등법)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등을 이유로 고용이나 교육 기회 등에서 특정인을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차별로 보고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런 좋은 법을 반대하는 기독교는 사회와 괴리된 집단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이런 차별을 금지하는 건 이미 법률로 충분히 실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민주당 등이 별도의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건 남자와 여자 외에 제3의 성을 인정하는 소위 ‘젠더 이데올로기’ 실현에 있다. 교계는 이 법이 차별금지의 범위를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게 정함으로써 소수를 위해 다수의 인권을 역차별한다는 점에서 절대로 제정되어선 안 되는 ‘악법’으로 보고 있다. 차별이 아닌 복음적 관점에서 구별하는 것조차 혐오로 규정하고 법으로 금지하는 건 양심에 재갈을 물리려는 과잉, 독재라는 것이다.

이런 논란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방적으로 공청회를 강행했다는 건 사실상 공론이 필요 없다는 뜻으로도 비친다. 이런 식의 공청회를 열고 여론 수렴을 다 했다고 나올지는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란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절차도 내용도 낙제점인 이런 반쪽짜리 공청회가 공론의 장을 명분으로 오히려 갈등만 키우고 있는 게 한국 정치의 씁쓸한 현실이다.

#차별금지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