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실 이전 갈등, 발목잡기 아닌 협치로 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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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는 문제를 놓고 신구 권력이 충돌하는 모습은 지극히 우려스럽다. 대통령 당선인의 청와대 용산 이전 계획에 퇴임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이 갑자기 제동을 걸고 나선 모양새인데 이러다가 정권 인수인계 차질로 국정 운영 공백이 초래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22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가원수이자 행정 수반, 군 통수권자로서의 책무를 다하겠다”고 했다. 임기가 50일 남은 대통령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데 이상할 게 없다. 문제는 회의 내내 불안한 한반도 정세를 강조하며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인한 안보 공백과 혼란을 걸고 넘어졌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재임 5년 동안 일관되게 보여준 언행과 너무나 달라 낯설다. 북한이 올해 들어서만 열 차례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는데 단 한 번도 ‘도발’이라고 하지 않고 오직 ‘종전선언’에 매달려온 그 대통령이 맞나 싶을 정도다.

문 대통령이 자신이 대선 후보 시절 약속했다 지키지 못한 청와대 이전 문제를 차기 정권이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에 심기가 불편한 것이라면 차라리 인간적으로 이해가 간다. 그런데 난데없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까지 소집해가며 안보 불안 운운하는 모습은 좀처럼 적응이 안 된다.

문 대통령의 안보관을 의심하는 게 아니다.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토를 달 마음도 없다. 아무리 그래도 북한이 그 어떤 도발을 해도 초지일관 너그럽던 대통령의 태도가 임기 종료를 앞둔 시점에서 왜 갑자기 조급하게 바뀌었는지는 궁금하다.

문 대통령의 임기 중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같은 긴급한 안보 상황으로 긴급하게 열린 NSC는 총 64번이다. 이중 문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한 건 채 30%도 되지 않는다. 북한이 개성공단 연락사무소를 폭파했을 때도 NSC를 주재하지도 않았다. 바다에 표류 중인 해수부 공무원을 북한군이 총에 쏴 죽이고 불태웠을 때도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다.

그랬던 문 대통령이 윤 당선인이 선거 공약대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하자 NSC까지 직접 소집해 그토록 진노를 표출할 일인지 의아스럽다. 그러니 문 대통령이 윤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반응해 느닷없이 긴급 NSC 회의를 소집한 게 낯설고 뜬금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니겠나.

문 대통령은 회의 내내 “국정에는 작은 공백도 있을 수 없다. 특히 국가 안보와 국민경제, 국민 안전은 한순간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너무나 지당한 말이다. 그런데 진작에 그런 자세로 국정, 특히 안보에 임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북한에 끌려다니며 온갖 수모를 다 당해놓고 차기 정부에 훈수를 두는 모양새니 일각에서 안보는 핑계고 반대를 위한 반대, 발목잡기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다.

윤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 자리로 이전하는 문제가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입장이 전혀 다르지 않겠나. 정권을 인수인계하는 시점에서 무슨 큰일이라도 당장 터질 것처럼 안보문제를 거론하며 충돌하는 모습은 국민 불안과 사회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협조가 아닌 제동을 거는 자체가 대선 불복으로 비칠 수도 있다.

야권에선 이런 문 대통령의 태도에 연일 쓴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군사력 아닌 대화로, ‘힘이 아닌 종전선언과 같은 종잇장으로 평화를 만든다’던 정권이 안보 공백을 걱정한다고 하니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대선 때마다 여야의 단골 공약이었다. 문 대통령도 대통령에 당선되면 제왕적이고 권위적인 대통령제의 상징인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에서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두 번이나 공약했다. 그런데 정작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에 들어간 후 그 약속을 지킨 대통령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번 윤 당선인은 달랐다. 당초 광화문 정부청사를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하려다 용산으로 계획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소통을 거치지 않은 점은 논란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탈(脫) 권위, 탈 제왕적 대통령제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상징성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한국교회연합도 지난 21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한교연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에게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과 소통하며 섬기겠다는 철학과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 “여야가 협력하여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문제를) 지체없이 마무리 지으라”고 촉구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놓고 신구 권력이 사사건건 부딪치는 모습은 물러나는 측이나 새로 시작하는 측 양쪽 모두에 부담이 될 뿐 아니라 또 다른 갈등과 분열을 야기한다는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렇지 않아도 대선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앞장서야 할 정치권이 지방선거를 겨냥해 또 다시 진영대결을 부추긴다면 당장 눈앞에 득보다 긴 안목에서 실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제 임기를 45일 남긴 문 정부는 자신들이 지키지 못한 청와대 이전 약속을 후임 대통령 당선인이 실천에 옮기겠다는 데 필요한 조언은 할지언정 예산, 안보 불안 타령으로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윤 당선인 측도 무조건 밀어붙이려 할 게 아니라 전임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선이라는 전쟁은 끝났다. 여든 야든 진영이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배에 탄 공동운명체라는 점을 명심하고 거친 파도를 넘기 위해 협력해야 할 때다. 이제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