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선 앞두고 헌신짝 신세가 된 K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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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3월 1일부터 식당·카페 등 다중이용시설의 ‘방역패스’를 중단한 데 이어 거리두기 완화까지 시사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확진자가 점점 폭증하는 상황에서 ‘방역패스’를 중단하고 거리두기까지 일주일 앞당겨 완화할 수 있다는 신호에 대선 민심을 고려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우선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미접종자에게 식당 등 다중시설의 이용을 제한해 온 ‘방역패스’를 시행 4개월 만에 스스로 거둬들인 이유가 모호하다.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오미크론의 특성을 고려한 방역체계 개편과 연령별·지역별 형평성 문제 등을 고려했다는 것인데 지난 23일 대구지법이 60세 미만 대구 시민에 대해선 ‘방역패스’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 외에 다른 동기를 찾기 어렵다.

정부는 그동안 줄기차게 “중증과 사망 최소화를 위해 ‘방역패스’는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대구지법의 판결에 대해서도 즉시 항고 의사를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랬던 정부가 불과 5일 만에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은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2차장인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에 대해 “‘방역패스’ 제도는 치명률이 높았던 델타변이 유행상황에서 접종 완료자의 일상회복 지원과 미접종자 보호를 위해 도입·운영돼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전파력이 강하지만 중증화율·치명률이 낮은 오미크론이 우세종이 되면서 완전히 다른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됐다는 거다.

정부가 그동안 다른 방역 조치들은 완화하면서도 ‘방역패스’를 고수해 온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미접종자가 다중 이용시설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감염을 예방하는 데 있고, 다른 하나는 미접종자의 백신 접종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가 흔들림 없이 유지해온 방역 원칙에 반하는 결정을 갑자기 내리자 의료현장에서부터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의료 역량이 감당 가능하다고 계속 얘기하는데 이는 현장에 한 번도 와보지 않고 하는 소리”라며 신규 확진자가 1만 명대 이하로 줄어들어야 의료 체계 붕괴를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방역패스’ 도입과 중단 모두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한국은 오미크론 정점을 지난 국가들보다 접종률이 높았기 때문에 추가 접종률 제고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방역패스’를 추진해야 할 근거가 없었다”며 그런데도 접종률을 더 높이겠다는 목적으로 추진한 정부가 갑자기 이를 중단할 근거는 더더욱 없다고 했다.

정부가 굳이 지금 시점을 택한 것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조차 정치적 의도라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대선 이후인 2~4주 뒤 중환자와 사망자가 속출할 가능성이 있는데 정부가 거꾸로 거의 모든 방역규제를 푸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무책임한 처사”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이처럼 정부의 정치적 의도를 지적하는 근거는 박향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이 “정치권과 언론 등의 문제 제기도 지속돼 온 점을 고려해 ‘방역패스’ 중단을 결정했다”는 말에 그대로 담겨있다. 말 그대로 방역을 과학이 아닌 정치와 여론 추이에 맞추고 있다는 것을 당국자가 인정한 셈이다.

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정치방역을 노골화하고 있다는 비판은 대선 유세장으로까지 옮겨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지난달 28일 강원도 동해시 유세에서 “(정부가) 선거날 코로나19 확진자가 수십만 명 나온다고 발표해서 여러분의 당일 날 투표를 못 하게 막을 수 있다”며 사전투표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부가 대선일에 코로나19 확진자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이를 염려한 유권자들이 투표를 포기하게 할 거라는 일각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가정이고 의혹 제기 수준이다. 다만 그 근거가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같은 날 정례 브리핑에서 “국내외 연구진들의 향후 발생 예측을 종합하면 3월 9일 확진자는 23만 명 이상, 병원에 입원 중인 중환자는 1,200명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 게 이런 의혹의 배경이다.

대선일이 가까워지자 여야 모두 그 어느 때보다 사전투표 독려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야당 지지층 일각에서는 지난해 4.15 총선 때 불거졌던 사전투표 부정 의혹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이들이 아직 적지 않아 보인다. 당시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사전투표용지 QR코드 전산 조작과 투표 조작으로 부정선거가 이뤄졌다’며 선거무효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투표지를 재검표한 결과 문제가 될 만한 부정은 없었다고 했다.

사전투표에 대한 거부감은 대선 당일의 변수와도 연결된다. 9일에 투표하겠다고 마음먹은 유권자가 선거 당일에 확진자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폭증하는 데 두려움을 느껴 투표를 포기하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여당 후보보다는 야당 후보에게 좀 더 불리하게 작용하게 될 거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사전투표를 할지 선거일에 투표할지는 전적으로 유권자의 선택에 달렸다. 다만 코로나 사태의 변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방역수칙을 잇따라 완화하면서 확진자 수가 걷잡을 수 없이 폭증할 경우, 예상하지 못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정부가 ‘방역패스’를 중단하고 거리두기까지 앞당겨 풀려는 듯한 모습은 그 어떤 명분에도 궁색해 보인다. 감염이 급증하면 방역을 조이고 추세가 나아지면 완화하는 기본 방역 원칙에도 위배된다.

K방역을 집권 5년의 최대 치적으로 자랑해 온 문재인 정부가 세계에서 코로나가 제일 심각한 나라로 만든 것은 ‘무능’이란 한 단어로 함축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총리는 “방역 지표가 비교적 안정되게 유지되고 있다”며 한가한 소리를 한다. 이쯤 되니 대선을 앞두고 K방역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