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흑사병 창궐에도 예배와 성찬 참여 강조”

목회·신학
신학
노형구 기자
hgroh@cdaily.co.kr
총신대 김지찬 교수, 4일 예자연 세미나서 발제
김지찬 교수. ©사랑의 교회 유튜브 캡쳐

예배회복을위한자유시민연대(대표 김진홍 목사·김승규 장로, 이하 예자연)가 지난 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위드 코로나 시대 예배의 회복을 위한 전문가 초청 세미나’를 개최한 가운데, 이날 마지막 발제자인 김지찬 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는 ‘예배에 대한 신학적 관점-성경과 코로나’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김 교수는 “지난 2년 동안 다수 한국교회는 정부와 방역당국의 요구에 저항하기보다는 순응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이런 경향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초월성보다는 내재성을 강조하는 사회 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여기서 우리는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1527년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 불과 10년도 안 돼 치사율이 70%가 넘는 흑사병이 비텐베르그 시에 들어왔다. 프리드리히 선제후는 대학을 예나로 옮기고 루터에게 식구들과 함께 피신할 것을 명령했다”며 “그러나 루터는 명령을 따르지 않고 흑사병의 도시 비텐베르그에 남아 병자들을 돌보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로하는 목사로서의 소명을 감당했다”고 했다.

이어 김 교수는 1527년 흑사병의 대유행을 직접 경험한 마틴 루터가 동료 목사들에게 쓴 ‘우리가 치명적 전염병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공개 서신을 인용해 설명을 이어갔다. 김 교수는 “루터는 이 공개 서신에서 전염병을 하나님의 형벌로 간주하고 피신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자들을 칭찬했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모두가 심지어는 기독교인들까지도 광신자라고 비난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루터는 이들이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 한 믿음으로 위험을 무릅쓴 행동을 비난해선 안 된다고 봤다”고 했다.

또한 “그렇다고 (전염병의 위험으로부터) 피신한 사람들을 정죄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믿음이나 용기가 다 같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라며 “루터는 특별히 목사와 정부 지도자·의사·경찰은 피신해선 안 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이들은 교인들과 시민들을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요 관리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단지 충분한 목사들이 상주해 다른 목사들이 가도 된다고 양해한다면 목사는 피신할 수 있으며, 정부 지도자·의사·경찰도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한다면 전염병으로부터 피신할 수 있다고 봤다”며 “루터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집을 오픈해 전염병 환자들을 받아들이고 돌보는 영적 의사의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만일 루터가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종교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루터는 흑사병의 도시 비텐베르그에서 남아 있는 자들에게 무엇을 요구했을까? 놀랍게도 예배와 성찬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며 “즉 예배와 성찬에 참여하면서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죽을지를 알아야 어떻게 살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오늘날 현대 교회는 어떻게 죽을지를 먼저 고민하지 않기에 어떻게 살지를 알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예배와 성찬을 통해 우리 삶을 비추는 초월적인 빛과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면, 기껏해야 윤리적·도덕적 삶을 추구하는 바리새인적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며 “결국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오늘날 현대 교회는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기’ 보단 ‘인간을 향해 살아가기’를 강조하면서 세속화되어 가고 있다”며 “세련된 언어·스마트한 삶의 방식·윤리적 행동으로 삶을 꾸려가지만 실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늘의 능력과 힘, 은사를 공급받지 않음으로 사탄이 주는 죽음과 죽음의 소문에 마비된 그리스도인들이 늘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움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종교와 예배의 자유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종교와 예배의 자유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적이 돼야 한다. 왜냐하면 예배를 통해 초월적 은혜와 신령한 능력을 공급 받지 못하면 죽음과 죽음의 소문이 가져다주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고 세상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교회는 때론 예배의 자유를 침범하는 어떤 제도나 법이나 정치 세력에 대해서 저항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세미나가 진행되는 모습. 맨 오른쪽이 김지찬 교수 ©노형구 기자

아울러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명에 책임을 지고 예배를 드리겠다는 분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런 분들은 방역 조치를 완벽하게 하고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며,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위험을 무릅쓰고 예배에 참석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며 “여러 이유로 두려움 혹은 직장에서의 압력이나 주관적인 판단이든 예배에 참석할 수 없다고 결정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감염의 두려움이나 직장에서의 압력 때문에 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서도 식당이나 상점 등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다니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역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예배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우리의 힘을 다해 뜻을 다하면서 목숨을 바쳐 혼을 다해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거룩한 시간”이라고 했다.

그는 “비대면 예배는 엄밀한 의미에서 성경적 예배는 아니다. 이는 상황 상 어쩔 수 없는 경우 일시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임시방편일 뿐 결코 대면예배의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즉 예배로서의 충분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온라인예배’가 아닌 ‘예배를 온라인으로 송출’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제자 가운데 한 목사로부터 들은 얘기다. 집합제한 기간 동안 대면예배를 드렸다는 이유로 점검 나온 한 공무원은 ‘우리교회는 비대면 예배, 인터넷 예배를 드린다’면서 대면예배를 드린 내 제자 목사를 비판했다고 한다”며 “비대면이라는 얘기는 예수를 믿지 않는 상식인의 수준에선 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단 한번이라도 경험한 경건한 신자들 가운데선 통할 수 없는 논리다. 왜냐하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예배 가운데 만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종교개혁자 루터의 삶을 통해 큰 도전을 받는다. 어떻게 루터는 흑사병이 창궐하는 도시를 떠나지 않고 목회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루터에겐 생사 간의 유일한 ‘위로’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 위로는 인간적인 위로 소위 값싼 은혜가 아니었다. 루터에겐 생사 간의 유일한 위로가 있었고,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다”고 했다.

#김지찬교수 #예자연 #예배회복 #마틴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