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대부흥의 회개, 3.1운동 기독교 지도력의 원동력”

삼성제일교회서 3·1절 민족화합기도회 열려
 기도회 주요 참석자들이 단상 앞에서 만세삼창을 외치고 있다. ©노형구 기자

제34회 3·1절 민족화합기도회가 ‘민족을 가슴에 품고 화합하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삼일절인 1일 오전 서울 삼성제일교회(담임 윤성원 목사)에서 열렸다. 삼성제일교회·충무교회·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 등이 주관하고, 국가조찬기도회·국가기도운동본부·한국전력그룹선교회 등이 주최했다.

이날 1부 예배에서 이정익 목사(기독교대한성결교회 증경총회장, 신촌교회 원로)는 ‘지금은 기도할  때’(신명기 32장 7절)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 목사는 “1884년 갑신정변에서 자객으로부터 공격받은 민영익이 알렌 선교사에게 치료를 받은 것을 계기로 이듬해 1885년 조선에서 선교사의 활동이 정식으로 허가됐다”며 “이후 1895년부터 10년 동안 조선 기독교 신자는 500명에서 26,000명으로 증가했다. 14만여 개의 성서가 배포됐다. 그럴수록 일본의 기독교 탄압은 거세졌다”고 했다.

이어 “‘기독교의 정치화를 멈추라’는 서구 선교사들의 종용을 조선 기독교가 받아들였지만 일본의 압력은 오히려 더욱 거세졌다. 신자들의 내면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며 “기독교인들의 내면의 불은 이후 1907년 평양 대부흥을 촉발시켰다. 영적 대각성, 성경공부, 도덕운동, 새벽기도운동, 사경회 운동 등이 평양을 뜨겁게 달궈 교회는 200%, 세례교인은 194%가 증가했다”고 했다.

이정익 목사 ©노형구 기자

이 목사는 “니체는 ‘우둔한 정치인이 기독교를 핍박한다. 절대로 기독교를 핍박하지 말라’고 했다. 1919년 독립운동은 기독교 신자들의 내면에 타오른 도덕, 영적, 민족 사랑의 불이 폭발해 외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라며 “3.1운동과 신사참배 거부 운동은 민족에게 저항심을 길러줬다. 3.1운동 소식을 해외로 알린 스코필드 선교사는 일본 경찰에게 매질당해 결국 불구가 됐다. 이후 캐나다로 추방된 그는 해방 이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이 목사는 “명치유신으로 군사력 증강, 경제 성장 등을 꾀한 일본이 아시아를 노릴 때, 당시 조선은 쇄국정치, 정치인들의 내부분열 등으로 쇠망해 결국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이라며 “그럼에도 대한민국이 어려움에 빠질 때마다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에도 남북통일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독일 동독에 위치했던 니콜라이 교회가 통일까지 무려 10년 동안 기도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기도회를 통해 반드시 응답주시고 열매 맺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장 폴 목사(한국전력그룹선교회 지도목사)가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 치유 회복을 위하여’, 이선희 장로(C-LAMP)가 ‘평화통일의 새 역사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기도했다. 김수영 권사(시인, 동화작가)는 축시를 낭독했고, 노준우 학생(봉은중 1학년)이 ‘시베리아의 난로 최 페치카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읽고’라는 제목으로 소감을 나눴다. 이후 정기선 장로(RUK운동협의회)의 인도로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합심 기도하고 만세삼창을 외친 뒤, 이정익 목사의 축도로 1부 예배 순서가 마무리됐다.

참석자들이 합심기도를 하고 있다. ©노형구 기자
참석자들이 합심기도를 하고 있다. ©노형구 기자
참석자들이 태극기를 들고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노형구 기자

곧바로 2부 세미나에서 정근모 장로(전 과기처 장관, 전 명지대·호서대 총장, 3.1절 민족화합기도회 발기인)가 환영사를 전했다. 정 장로는 “1987년부터 故 최태섭, 故 김인득 장로님 등과 함께 민족 화합기도회를 이곳 삼성제일교회에서 시작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자는 생각에서 이 기도회를 시작한 것”이라며 “천연자원은 없고 두뇌자원만 가진 대한민국을 두고 전 페루 대통령은 한 때 ‘한국을 주목하라’고 했다. YWAM 창립인 로렌 커닝햄 목사는 ‘21세기는 한국이 중심이 될 텐데, 왜 과거만 바라보는가? 미래를 바라보라’고 주문했다. 한국은 더 이상 과거의 한국이 아니라 전 세계 빛을 비추는 대한민국이 돼야 한다”고 했다.

정 장로는 “하나님이 대한민국에게 주신 일에 우리 민족이 최선을 다한다면 하나님의 꿈을 이룰 수 있다.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부르신 국가”라며 “대한민국 기술자가 만든 원전이 중동 국가에서 운전을 시작했다. 미국에 있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놀라운 미래를 향해 꿈을 준비하고 있다. 기도를 많이 하여 하나님이 주신 꿈인 초일류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을 다해 나아가자”고 했다.

정근모 장로 ©노형구 기자

이어 이덕주 교수(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감신대 은퇴교수)가 ‘삼일운동, 미완의 숙제, 평화통일’이라는 제목으로 세미나 발제를 전했다. 이 교수는 “평양신학교의 재학생과 교수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자(1906). 교수들은 뒷자리, 학생들은 앞자리에 앉았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정신”이라며 “‘높고자 하는 자는 낮은데 처하라’는 것이다. 당시 신학생들은 성경책, 우산,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이는 기독교가 대한민국에게 준 선물이 복음, 개화 그리고 민족임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어 “복음 속에 드러난 가치란 자유·평등·정의·인권·민족이다. 이것들은 불교, 유교, 도교 등이 우리민족에게 가르치지 못했던 것”이라며 “복음은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이 성별, 계층, 인종, 민족 등을 초월해 평등하고 자유하며 어떤 사람에게도 예속될 수 없는 존재임을 가르치고 있다. 왕이 아닌,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가치 또한 기독교 복음이 알려준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독교를 통해 과학, 경제, 산업, 의료 등 과학 지식과 문명이 조선에 전파됐다. 우물 안 조선이 세계와 어깨를 견주는 과학문명 국가가 될 수 있던 건 기독교 때문”이라며 “(무엇보다) 조선 기독교 부흥은 민족의 환난과 궤를 같이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평등, 인권 등을 침해한다’며 한일합병을 거부하고 투쟁을 시작했다. 1906년부터 서울연동교회, 상동교회 등을 중심으로 기독교 청년들은 구국기도회를 열고 기도문을 사람들에게 배포했다. 이들은 기도문에서 ‘일본의 보호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해달라’며 조선 독립국 선포를 시작했다”고 했다.

또한 “목포 영흥학교, 원산감리교회 등을 중심으로 열린 기도회에서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로 표현된 복음과 태극기로 표현된 나라 사랑, 민족 구원 사상을 함께 외쳤다. 이후 원산 부흥운동(1903)과 평양 대부흥운동(1907)이 발흥했다”며 “1919년 3.1운동에서 기독교인들이 발휘한 지도력은 원산부흥운동·평양대부흥운동 등 대부흥운동에서 기원한 것이다. 부흥운동의 핵심은 철저한 회개운동이었다. 이는 신자들의 철저한 윤리적·도덕적 갱신, 거듭남의 체험을 이끌었다”고 했다.

이덕주 교수 ©노형구 기자

특히 “평양 대부흥운동은 신자들이 저지른 간음, 폭력, 거짓 등에 대해 철저히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며, 잘못에 대해 되갚는 등, 이를 통해 불신자들이 예수 믿는 자들을 신뢰하고 이들의 말을 따랐다”며 “결국 부흥운동이 일으킨 기독교인들의 회개가 불신자들을 감동시켜, 이후 3.1운동에서 기독교들이 지도력을 발휘하는데 결정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결국 기독교인들의 통렬한 회개와 각성, 실천 등이 조선 기독교의 신뢰를 구축했고, 전국에 분포된 교회들이 3.1운동 확산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3.1운동 민족대표자로 참여한 이승훈, 길선주, 김병조, 이갑성, 이필주, 박희도, 신석구 등 목회자와 장로들이 3.1운동 가담자로 지목돼 감옥에 갇혀도 결단코 변명하지 않았다”며 “이들은 3.1운동에 참여하기 전, ‘과연 이 운동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하나님께 묻고 계속 기도했다. 그리고 3.1운동이 하나님의 명령이자 하늘의 뜻이라서 이 운동에 참여했다고 고백했다. 결국 3.1운동은 나라의 자유와 더불어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기 위한 종교적 저항 운동”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3.1운동에 참여하기 전, 신석구 목사에게 두 가지 고민이 있었다. 첫째, 교역자로서 이런 정치운동에 참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가? 둘째, 교리가 다른 천도교와 함께 3.1운동 합작을 하는 게 맞는가?”라며 “신 목사는 새벽기도에서 하나님께 뜻을 계속 묻다, 1919년 2월 28일 새벽에 ‘사천 년 전하여 내려오던 강토를 네 대에 와서 잃어버린 것도 죄인데 찾을 기회에 찾아보려고 힘쓰지 아니하면 더 큰 죄’라는 하나님 음성을 들었다”고 했다.

 평양신학교 재학생들과 교수들이 함께 찍은 사진. 양복을 입은 교수들이 뒤에 앉아 있었다. ©노형구 기자

또한 “이승훈 장로는 ‘한일합병으로 언론, 출판, 교육의 자유를 박탈당했다’, 신흥식은 ‘한일합병이 처음엔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지만 이후 일본의 행태로 우리 민족이 극심한 차별대우를 받아서’, 김창준은 ‘독립운동에 참가한 뒤 하나님께 묻는 기도를 통해 3.1운동이 천운이라고 생각했다’며 각기 3.1운동의 참가 이유를 밝혔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제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미래를 비춰주는 등불이 돼야 한다. 3.1운동 지도자들은 이 운동이 독립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평화에 기여하는 국가가 되기를 바랐다”며 “샬롬(Shalom)이라는 ‘평화’는 셀렘(Shelem)이라는 ‘완전’에서 기원했다. 한 마리 양이 주님께 돌아올 때 비로소 99마리의 양들에게 평화가 찾아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1907년 신석구 목사가 “참으로 나라를 구원하려면 예수를 믿어야겠다. 나라를 구원하려면 잃어버린 국민을 찾아야겠다. 나 하나 회개하면 잃어버린 국민 하나를 찾는 것이다. 내가 믿고 전도하여 1인이 회개하면 또 하나를 찾는 것이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국민을 다 찾으며 나라는 자연 구원할 것”이라고 말했다며 “현재 기독교는 세상의 조롱과 수치를 받고 있다. 떨어진 권위를 회복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 잃어버린 바 된 내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가는 것”이라고 이 교수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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