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사회학3. 국가

오피니언·칼럼
기고
류현모 교수

이스라엘을 이집트로부터 해방시킬 때 하나님은 모세라는 인간 지도자를 사용했지만 모든 결정은 직접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가라 하시면 출발했고 서라 하시면 장막을 치고 그곳에서 머물렀다. 광야 40년의 세월을 거쳐 요단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서도 여호수아라는 선지자가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통수권자는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이셨다. 그러던 그들이 사사기를 지나면서 강력한 주변국들에 핍박을 당하자 왕을 달라고 하나님께 조르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에 사울이라는 첫 왕을 임명하신다.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는 나라에서 왕이 다스리는 나라로 바뀔 때, 그들의 재능, 시간, 재산의 상당 부분을 왕에게 위임해야 하는 위험을 백성들에게 경고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하나님은 국가가 해야 할 일들을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않으셨지만, 성경 전체를 보면 외적으로부터 국민을 보고하고, 나라 안에서 공의가 실행되는 것을 국가의 지도자가 해야 할 일로 꼽고 있다.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 있어야할 질서는 율법을 통해 명확히 주셨기 때문에 율법의 준수가 그 바탕이 된다. 이스라엘의 왕과 그가 다스리던 시대를 평가할 때 하나님의 율법을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지켰느냐가 그 지표가 되고 있다.

이슬람은 알라가 다스리는 신정국가를 추구하고 있다. 코란에 계시되어 있거나, 무함마드의 행전인 하디스, 순나에 나타난 알라의 뜻을 따른 그들의 선례를 기준으로 하는 샤리아(법)에 의해 통치된다. 무슬림들은 샤리아와 그것을 집행하는 종교와 정부의 지도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이슬람은 그들의 포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악의 무리로 간주하며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이슬람을 전파하는 것이 알라의 뜻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전쟁을 통해 이슬람을 전파했고, 종교와 정치의 지도자인 칼리프는 알라에게 복종하듯 자신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이슬람 국가 국민들의 자유도가 떨어지는 이유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정부 시위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이다.

무신론적 인본주의는 이상주의 국가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들은 기독교에서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하는 가정과 교회 같은 사회기관들을 악의 근원으로 규정하고 이를 뜯어고치기 위해 사회주의적 이념을 가진 힘 있는 국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상주의 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이 많고,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세금도 많이 내고, 국가에 권력도 더 많이 양도해야 한다고 선전하고 설득한다. 그러나 실제로 국가가 할 수 있는 일과 가정이나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질적으로 아주 달라서 국가가 이들 기관을 대신할 수는 없다. 또 인본주의적 이상주의자들은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의 국가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적인 권력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 목적으로 생긴 것이 국제연합(UN)이다. 그러나 실상은 국제연합과 산하기관들이 각국으로부터 예산을 받아서 무신론의 이념을 전파하는 것이 주된 일이 되었다

공산주의는 국가의 경계가 사라진 전 지구적 공산사회 건설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사용하는 사회가 이루어지려면 공산당이 모든 것의 주도권을 쥐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모든 인민들이 일어나 부르주아가 주도하는 국가를 무너뜨리고, 그 권한을 양도한 공산당이 모든 권력을 가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세상 모든 사람의 평등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국가 간의 경계도 허물어져야 한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노동의 가치를 시장에서 결정해 주지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노동이나 그로인해 발생한 생성물의 가치를 결정해 주는 노멘클라투라라고 하는 관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에 대해서는 누구도 대답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이 이상향이라고 주장하는 행복한 나라의 기준도 사람마다 모두 행복의 정의가 다른 것처럼 다수결로 결정된 행복을 강제로 공급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뉴에이지는 국가라는 기관의 행정과 법률은 작은 자아(아트만)가 큰 자아(브라만)와 하나가 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가급적 개인에 간섭하지 않는 국가를 선호한다. 포스트모던 역시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선으로 생각하고, 절대적인 기준이나 도덕률의 필요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국가에 의해 강력한 법률이 시행되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이다. 그래서 그 가치를 위해서는 기존의 법과 질서들을 지키지 않더라도 정치적으로 정당(PC)하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부어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인간 개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지만 그들이 모일 경우 그 집단은 비도덕적인 일들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집단이 그런 일들을 오히려 권장하기까지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 집단이 국가가 될 때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서슴없이 비인간적인 행위를 저질러 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니부어는 사회집단이 개인보다 더 부도덕하게 되는 것은 그들의 모임에 의해 새로운 악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에 이미 존재하던 악이 집단이라는 익명의 방어막 뒤에서 고삐가 풀린 채 날뛰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사회 집단은 그것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축적된 이기적 충동들을 억제할 수 있는 힘이 개인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또 개개인의 자정능력이 발휘된다고 할지라도 사회집단의 이기주의에 부딪쳐 변질된다는 측면에서 개선의 가능성이 희박하다. 따라서 사회 전체를 국가권력으로 개선해 보려는 무신론적 이상주의의 무모한 시도보다는, 개개인이 자신의 죄를 바라보게 하고 구속의 복음을 받아들인 후 변화가 파급되게 하는 기독교의 방법이 훨씬 실효성이 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과 네 나라가 구원을 얻으리라.

묵상: 사회개혁을 위해 국가에 더 많은 힘을 양도할 용의가 있는가?

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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