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복잡한 질문, 단순한 답

오피니언·칼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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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균 목사

본문 : 민수기 21장 1~20절

우리는 인생에서 많은 문제를 만난다. 그런데 문제의 원인은 의외로 큰 것이 아닌 지극히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또 그 원인이 외부가 아닌 내부 있기도 하다. 따라서 그 처방도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서 있기도 하다.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문제로 몰아넣을 실 때가 있다. 그때 우리에게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요구하신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당면한 복잡한 문제 앞에 단순하지만 선명한 해답이 무엇인지 주고 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에돔을 통과하길 원했으나 거절당한다. 어쩔 수 없이 200만 명이 우회하게 되었다. 가까운 길을 두고 먼 길을 돌아가는 백성들은 모세에게 온갖 원망을 쏟아냈다. 백성이 호르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4절). ‘마음이 상했다’는 말의 원어는 ‘상심했다’가 아니라 ‘조급해했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둘러가는 광야기 때문에 조급하여 원망했던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환난은 환난 자체로 끝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소망이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한 채, 환난이 조급함을 낳았고, 조급함이 원망을 낳고, 원망이 저주까지 발전된 것이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이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5절). 이스라엘은 먹을 것과 물이 없다고 원망했을 뿐 아니라 이 하나님이 주시는 음식을 ‘하찮은 음식’이라고 저주까지 한다. 하찮은 음식은 ‘만나’를 뜻하는 것으로 노골적으로 하나님께 이 만나가 먹기가 이제 역겹다고 하였다. 과거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눈을 뜨고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매질과 노역에 시달렸다. 심지어 갖은 학대와 질병으로 죽기도 했다. 고통을 못 이기고 살려 달라고 부르짖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은혜로 출애굽 시키셨다. 물이 필요할 때 반석에 물도 내시고 먹을 것이 없을 때 매일매일 만나도 공급하셨다. 어떤 이들은 더 먹고 싶어 정한 양보다 더 거둬가며 좋아했던 만나였다. 그런데 자기가 좀 불편해지고 손해 보는 것 같으니까 역겨운 음식이라고 온갖 저주를 쏟아내고 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신 분”욜 2:13)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끊임없이 불평과 저주를 쏟아내는 이스라엘을 참다못한 하나님의 결론은 ‘징계’라는 카드를 꺼내셨다. 갑자기 이스라엘 진영에 불뱀이 쏟아져 백성들을 물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진영은 원망 소리가 비명소리로 바뀌었다. 물린 사람은 고통하며 죽어갔다. 그렇다면 이렇게 무시무시한 징계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단순한 것이었다. 바로 ‘조급함’이었다. 이 조급함은 조금도 손해 보기 싫어하고 불편하기를 참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있었던 것이다. 조급함은 우리의 신앙에 발목을 잡는다. 기다리지 못하는 마음, 참지 못하는 마음, 포용하지 못하는 작은 마음이 우리를 멸망을 몰아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므로 한번 말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해라. 한번 찾아오기 전에 열 번 기도하길 바란다.

이스라엘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니까 그제야 돌이키기 시작했다. 모세에게 제발 살려 달라고 요청한다. 그때 진노 중에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장대 위에 놋뱀을 달아 쳐다본 자들이 살리라’ 기회를 주셨다. 원망에 불뱀으로 징계하셨지만 자백에 놋뱀으로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근데 중요한 것은 그 이후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사람들은 두 부류로 극명히 나눠졌다. 한 부류는 놋뱀이 무슨 치료가 되냐고 의원을 찾고, 약초를 찾으러 다녔다. 이들은 세상의 방법을 택한 자들이다. 그러나 또 다른 부류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붙들었다. 이것은 철저한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세상의 방법을 찾은 사람들은 시름시름 죽어갔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른 자들은 살아난 것이다. 이 말씀은 단순한 것 같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제의 원인과 문제의 답은 멀리 있지 않고 단순한데 있다는 것이다.

혹시 문제의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고 원망하고 있는가?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우리 안에 있다. 문제의 답을 또 어디서 찾고 있는가? 모든 문제의 해답은 하나님께 있음을 믿으시길 바란다. 오늘 놋뱀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Typology) 한다. 오늘도 힘겨운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길 바란다. 이기지 못할 것도 없고 풀지 못할 문제도 없다.

저는 목사로 장례를 많이 집례한다.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임종 앞에 복음을 전하는 경우가 많다. 똑같은 복음을 전하지만 반응은 저마다 다르다. “이제껏 어떤 삶을 살았느냐 중요하지 않다. 지금 주께서 손을 내밀고 계신다. 예수의 손을 잡으세요.”라고 콜링(calling)하면 그러면 겸손히 예수를 영접하는 분들이 계신다. 그 모습은 마치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지금 예수가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절대 믿지 않겠소.” 끝까지 자기 고집을 부르신다. 결국 죽음의 공포 앞에 시름시름 앓다 죽어 가신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질문이 죽음 앞에서만 적용이 되겠는가? 광야 같은 인생에서 우리는 선택의 연속에 있다. 우리의 인생에서 수많은 복잡한 질문 앞에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히 12:2)는 단순한 답을 붙들 때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홍석균 목사(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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