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주 낙태 허용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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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는 권리가 아닌 생명의 문제”
문지호 의사(성과학연구협회)

낙태법 개정을 두 달여 앞두고 2020년 10월 7일 정부는 14주까지의 태아에 대해 이유 없이 낙태를 허용한다는 법안을 입법예고 했다. ‘낙태죄는 유지한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95% 이상의 낙태가 12주 이내에 이뤄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14주 이내의 낙태 허용은 대부분의 작은 아기들이 합법적으로 살해당할 위기에 처했다는 의미다.

낙태죄를 유지한다는 것은 엄마를 처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헌법적 정의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입법이 예고 된 기간 동안 우리는 헌법에 합당한 생명 보호를 위해 열심히 의견을 제출해야 한다. 한 나라의 문화는 그 국가가 사람을 어떠한 존재로 대하였는지로 평가 받는다. 우리나라는 후대와 다른 나라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 결정하는 시험대 위에 서 있다. 유물론이 득세하여 개인의 존귀한 가치가 무너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낙태법 개정을 앞두고 전국민이 생명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하여 생명문화 선진국으로 평가받기를 기대한다.

낙태에 대한 논의는 여러 문화권에서 진행중이다. 찬반의 이견이 있지만 명확한 것은 낙태는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생명의 문제다. 낮은 수준의 인간관을 가진 이들은 태아가 죽어도 마땅한 시점을 법으로 정하려 한다. 일부 법률가들과 의사를 동원하여 몇 주 이내의 ‘불완전한’ 인간을 죽이는 일에 면죄부를 주려고 한다. 이런 저급한 인간관은 비단 태중의 아기만 겨냥하지 않는다. 어느 인간이라도 정신이나 신체 기능이 불완전하다고 판단되면 존중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실제적으로 낙태죄의 비(非)범죄화를 시도한 나라에서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불완전한’ 아이를 굶어 죽이도록 허락했다. 느슨해진 낙태법이 생명을 죽여도 아무 처벌을 받지 않는 야만국을 만드는 것이다.

테레사 수녀는 “만일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죽일 수 있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겠는가?”라며 경고하였다. 단지 편의를 위해 아이를 죽이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어떤 생명도 존중받지 못할 것이다. 자궁 속의 아기를 죽이는 일이 합법화 될 때, 가방 속에 아이를 가둬 죽이는 사건은 더욱 자주 생길 것이다. 부끄럽게도 이미 우리의 저속한 문화는 아동 학대를 용인하고 있다. 폭행과 방치, 정서적 학대 등은 n번방 사건에서 보았듯 문화의 저질화에서 비롯되었다. 낙태죄 관련법은 이런 학대를 저지할 방어선을 남겨 놓는 것이다. 14주 낙태 허용에 동의하는 것은 무고하게 ‘죽어도 되는 사람’ 여부를 법원이 결정하도록 방관하는 것이다. 합법적 살인에 동참하는 일이다.

전 세계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동의하듯 생명은 수정의 순간부터 시작된다. 세포의 자기복제와 단백질 합성이 일어나는 시점이다. 우리 국민 대다수도 태아가 귀한 생명이라는 점에 한 치의 의문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소수 정부 인사들의 판단 때문에 아기들의 생명이 포기되어질 판이다. 소규모 단체들의 낙태는 권리라는 구호에 선동당하면 안 된다. 잘못 개정된 낙태법 때문에 자녀들이 낙태를 권리라고 배우고 실천한다면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의 잔인함을 막는 일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 바로 우리 모두가 태아 때부터 존귀한 생명이었음을 계속 얘기하는 것이다.

인본주의자들은 생명존중자들의 의견을 비웃을 것이다. 비(非)인간화된 본인과 자녀들이 겪게 될 비극을 아직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명을 얘기하면 마치 기독교나 가톨릭 단체가 제기하는 종교적 문제 정도로 취급하려 한다. 낙태는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다. 엄마가 원치 않았다면 비웃고 있는 그들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낙태법은 두 생명을 보호하는 법이다. 태아는 물론이요 엄마를 보호하는 법이다. 낙태를 시행한 소녀와 여인의 몸에 입은 상처, 마음에 남겨질 죄책감, 그리고 영원히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가능성에 대해 보호해 주는 법이다. 제발 낙태를 권리라고 주장하지 말라. 그 권리를 죄책감 없이 누리기를 바라지 말라. 지금도 수많은 의료진들이 낙태된 아이보다도 더 작은 미숙아를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낙태가 권리가 되고 합법화 될 때 우리는 뱃속의 아기뿐 아니라 연약하게 태어난 아기들마저 쉽게 포기할 의사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낙태죄의 헌법 불합치 판결은 우리를 각성시켜 주었다. 온 국민들이 생명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을 얻게 되었다. 미디어와 생명단체들의 거리 활동을 통해 14주 아기가 어떤 모양인지 모두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잔인하게 조각나 죽여지는 낙태 동영상을 통해 끔찍한 현실도 보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어떤 나라도 부럽지 않게 아기의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 10개월간 뱃속에서 잘 살았다는 의미로 태어나자마자 ‘한살’을 선물로 준다. 생후 백 일째에 의미를 부여하여 모든 친지들이 생명을 축복해주는 전통이 있다. 현대에는 환갑잔치보다 아가의 돌잔치를 더욱 중히 여기는 국민 정서까지 더해져 가고 있다. 국민의 정서와 의지를 반영하여 낙태법이 엄마와 아기를 위한 생명보호법이 되도록 계속 얘기를 나누자. 어려운 상황에서 임신한 엄마들이 축복 속에 자녀를 낳아 잘 기를 수 있도록 국가가 응답하기를 바란다.

국민의 권리를 국가가 침범할 때, 아브라함 카이퍼는 ‘국가는 단지 공범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진짜 범인은 죄와 감각적 쾌락 속에서 주도권을 상실한 국민 자신들이라고 했다. 태아의 생명권에 대해 우리가 입을 다물고 있다면 우리 역시 태아 살인의 진범이 될 것이다. 우리 국민 모두는 태아 때부터 생명의 권리를 가진 인간이었다. 어머니의 결심으로 태어나 생명 값을 하며 살아가는 생명의 증인들이다. 두 눈을 부릅뜬 생명의 증인들이 정부에 의견을 제출한다. 14주 낙태 허용을 반대한다. 입법예고안을 수정하여 더 많은 생명을 지키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문지호

의료윤리연구회 회장
명이비인후과 원장
온누리교회 안수집사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운영위원
한국성과학연구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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