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1: 인식론

오피니언·칼럼
류현모 교수

철학이란 지식의 근원과 지식을 추구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 사람들은 자연과 물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의 방법론으로, 비물질적이며 초자연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또 다른 방법론으로 지적 탐구를 지속해왔다. 근대에 접어들어 과학이 발달하면서 자연과 그것을 구성하는 물질에 대해 과학자들이 탐구의 방법론에 대한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를 근거로 이들은 초자연에 대한 지식까지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하여 초자연을 부정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과학자들의 종교 비판을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철학자인 앨빈 플랜팅가는 기독교 믿음의 반대자이든 옹호자이든 모두 자신들 견해의 기반을 ‘증명’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우주 혹은 신의 존재나 그 기원에 대해 유신론자와 무신론자는 서로 다른 기반 위에 서 있고 상대의 기반에 대해 비난하지만, 서로를 납득시킬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의 믿음이 굳이 맹목적이라고 폄하될 이유가 없으며, 기독교를 반대하는 논리가 반드시 이성적이지도 않음을 알아야 한다.

사실 기독교는 이성적 믿음을 요구한다. 성경은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사 1:18)” 즉, 누가 맞는지 서로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따져 보자고 우리에게 도전한다. 성경을 읽어보지도 않고 하나님은 없다고 하는 맹목적 무신론이나, 성경책은 덮어두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맹목적인 믿음 모두를 삼가라는 것이다. 전도할 때에도 그들의 질문이나 반문에 대해 대답할 내용을 항상 예비하여, 온유와 두려움으로 설득할 것을 요구한다(벧전 3:15).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말한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두려워하라”라고 할 때의 철학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르면서 그리스도는 모르는 철학’을 말한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처럼 가벼운 철학은 인간의 정신을 무신론으로 기울게 하나, 깊이 있는 철학은 인간의 정신을 종교로 향하게 한다. 기독교 철학은 지난 이천년 동안 끊임없는 비판에 대응하여 깊이 있는 고찰을 거친 논리적인 철학을 대표한다. 그 세계관은 절대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믿음에서 시작하고, 그분이 창조하신 개개인에게 의미 있고 목적이 있는 삶을 선물로 주셨음을 믿는 믿음으로 뼈대가 잡힌다. 이런 철학에 기반한 사람의 삶은 일관성, 합리성, 진실성을 가지면서, 세속주의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세계관을 형성한다.

철학의 인식론은 어떤 대상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그 대상의 본질에 대해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는 노력이다. 초자연의 존재에 대한 믿음 유무에 따라 신을 알려고 하는 노력을 시작하기도 하고(유신론) 그 노력을 포기하기도 한다(무신론). 초자연의 존재를 믿고 그 믿음을 따라 간 사람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알아가는 것을 포기한 사람의 차이는 인생을 살아 갈수록 더 큰 인식능력의 차이를 드러낼 것이 분명하다.

한편 “자연 혹은 물질에 대한 지식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모든 세계관들이 나름의 답을 내놓을 수 있다. 유신론과 무신론 모두에서 존재를 인정하기 때문인데, 이를 통해 각 세계관의 차이를 명확히 비교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창조주가 인간에게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기 때문에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초월적 존재인 신의 존재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과 동일하다. 하나님이 알려주셨기 때문에 알 수 있으며, 특히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에 하나님의 질서가 존재할 것을 가정하기 때문에 논리적이고 과학적 연구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범신론인 뉴에이지에서는 개인(아트만)이 자연에 대해 명확한 지식을 가질 수 없지만, 자신이 고등한 자아(신 혹은 브라만)와 하나인 것을 깨달을 때 모든 것을 즉시 알 수 있다고 믿는다. 마치 전기기구를 전원 콘센트에 플러그인(plug-in)할 때 작동하는 것처럼 깨달음만이 지식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뉴에이지의 인식의 목적은 실재(reality)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깨달음에 이르는 도구일 뿐이다.

인본주의는 초자연을 부정하고 자연주의에만 매달린다. 그래서 과학이 모든 인식의 방법론이 된다고 믿는다. 그들에게는 물리적 우주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며, 진화의 결과로 인간에 이르러서야 정신과 이성이 생겨났고, 그 이성을 사용하여 앎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공산주의 역시 유물론적 자연주의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들 모두 과학만이 진리로 접근하는 유일한 길이라 믿으며, 변증법적 유물론이 모든 것의 답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포스트모던은 모던 시대의 세계관(인본주의와 공산주의)들이 너무 이성 중심, 과학 중심, 논리 중심의 고정된 틀 속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생각을 억압한다고 생각해 온 언어학자,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도로 확장하기 위해 고안된 세계관이다. 이들은 절대 진리를 부정하며 주관적 진리를 주장하므로 기독교와 유신론에 대해서도 파괴적이지만 다른 무신론에 대해서도 똑같이 파괴적이다.

이처럼 유신론과 무신론적 세계관들은 물질과 자연을 인식하는 방법론도 다르며, 판이하게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지도자들은 우리 시대의 충돌하는 다른 세계관들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시대를 읽고 그 시대를 주도하는 이념들의 도전에 맞서 기독교 신학과 철학의 논리성과 타당성을 변호하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세상은 지속적인 변화 속에 있으며 그것을 주도하는 이념들도 계속 변화하기에 이는 끝없는 열심을 요구하는 힘든 작업이다. 말씀과 기도로 늘 깨어서 주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구해야한다.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실 것이다.

묵상: 초자연적인 존재를 인정하고 그에 대해 알고자 한 노력이 당신의 삶에 어떤 유익이 되는가?

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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