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다시 등장한 불심검문과 차벽,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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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주변에서 열릴 예정이던 보수단체 집회가 경찰의 철통 방어에 완전 봉쇄당했다. 경찰은 1만1천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서울시내로 들어오는 진입로 90곳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집회 참가자들이 탄 차량의 광화문 집결 자체를 막았다. 광화문 광장을 둘러싼 세종대로 주변은 경찰 버스 3백여 대로 거대한 장벽이 만들어졌다.

경찰은 코로나 확산을 이유로 법원이 허락한 차량 시위마저 사실상 통제하고 차단했다. 이에 대해 야당과 진보진영에서까지 “계엄령이 선포됐나”, “군사 독재시대에서나 보던 광경”이라며 헌법이 보장한 집회 시위의 자유에 대한 공권력의 침해를 강력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자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은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코로나와의 전쟁이다. 광화문 광장을 에워싼 차벽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며 경찰의 광화문 봉쇄를 두둔했다.

애초에 이런 광경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다. 코로나 확산 위험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지만 한편에서는 해도 해도 너무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정말 코로나 감염 위험 때문이라면 “코로나는 신앙이 아니라 과학”이라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뭐가 되나.

경찰의 철통같은 광화문 봉쇄는 집회 참가자들이 차량 안에서 마스크를 쓰고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마구 퍼뜨릴 것이라고 굳게 믿든지, 아니면 광화문에만 존재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행인이나 차를 탄 모든 사람을 감염시킬 거라고 단정해야만 가능한 행동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경찰의 이 같은 대응이 논리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정부는 이번 추석 연휴에 귀성하는 미풍양속마저 코로나19를 이유로 절제를 요구했다. 대놓고 고향에 가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이더니 해마다 2~3일간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 주던 것을 바꾸어 요금을 징수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도 식당에서 음식을 먹지 못하고 포장해 차안에서 먹도록 했다.

그 효과로 이번 추석 연휴에 제주도에만 25만 명의 관광객이 한꺼번에 몰렸다. 서울 도심 광화문 일대는 완전 봉쇄됐지만 서울 시내 백화점, 식당, 근교 공원에는 시민들이 몰려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색했다. 특히 서울대공원은 추석 연휴 기간 내내 하루 평균 2만 명씩 차량이 몰리는 바람에 극심한 차량 정체가 빚어졌다. 국토부가 집값 잡겠다고 내놓은 정책들이 주변 지역의 집값 상승으로 이어진 것과 똑같은 ‘풍선효과’가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나타난 것이다.

고향 대신 관광지에 몰린 사람들이 아무리 마스크를 잘 쓰고 방역 수칙을 지킨다 해도 ‘사회적 거리두기’ 자체가 어려운 만큼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위험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광화문이 중국 우한처럼 코로나 바이러스의 진원지가 아닌 바에야 차 안에 탄 사람이 반정부 구호 깃발을 차에 꽂고 도로를 주행한들 코로나19가 확산될 가능성이 제주도나 서울대공원보다 보다 낮은 것은 과학이기 전에 상식이다.

정부와 경찰의 이런 강압적 조치를 두고 지난 광복절 집회의 학습효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지지하는 국민과 반대하는 국민을 다 같은 국민으로 보지 않는 다는 점일 것이다. 지난 광복절에 보수단체의 반정부 집회는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여론전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인근에서 동시에 열린 민노총 집회는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이 바로 그 논리이다.

개천절 집회는 광화문 집회와 분명 달랐다. 그때는 단상에 올라가 마스크를 제대로 안 쓴 채 연설을 하지 않은 몇몇 인사들에 의해 확진자가 나왔지만 엊그제 개천절에는 차 안에서 마스크를 쓰고 이동하려 했을 뿐이다. 광복절과 개천절이 똑같았던 한 가지는 정부를 비판하는 보수단체가 주최했다는 것뿐이다.

마치 개천절 집회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한 경찰의 모습에서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과거 정권과 무엇이 다른지 구별해 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어떤 공권력도 최소한 헌법상의 권리조차 막으려 든다면 적어도 모두가 인정하고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을 써야 한다. 불심검문과 차벽, 계엄령을 방불케 하는 철통 봉쇄로 얻고자 하는 것을 다 얻었다 해도 이미 실패이다.

국민은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보며 비로소 묻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가.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고 했다. 심지어 청와대가 아닌 광화문에 집무실을 만들어 국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대국민 약속까지 하지 않았나.

전 세계 민주국가 어디든 시위가 벌어지지 않는 나라는 없다. 민주주의는 반대를 주장하고 표현할 자유 뿐 아니라 그것을 경청하고 수용함으로써 발전한다. 무슨 이유로든 무조건 반대의 목소리를 막겠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