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주의와 성혁명, 그리고 퀴어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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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혜원 박사(21세기교회와신학포럼 대표)가 25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젠더주의와 성혁명, 퀴어신학에 대한 신학적 고찰과 신학교육 개혁’이라는 주제의 학술포럼 및 ‘젠더주의기독교대책협의회’(가칭) 발족을 앞두고 그 취지를 설명하는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1. “젠더주의와 성혁명, 퀴어신학에 대한 신학적 고찰과 신학교육 개혁” 학술포럼을 개최하게 된 취지:

곽혜원 박사

먼저 말씀드릴 것은, 이번 학술포럼의 주제인 젠더주의와 성혁명, 퀴어신학에 대해 우리가 단지 비판만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문명이 올바른 정도(正道)를 걸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주권과 창조질서를 지켜내기 위해 우리 한국 신학계가 시대적 과제를 감당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을 굳건히 하는 것이 중대 관건이라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2020년 인류문명사는 대전환을 이루는 절체절명의 시점에 서 있다. 특별히 우리 한국교회는 인류문명과 서구세계를 대신하여 대리전(代理戰)을 치루는 역사적 사명을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위중한 때에 한국신학계는 이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자 한다. 최대 위기상황에 처한 한국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흔들리는 신학부터 바로 세우기 위해 작은 발걸음을 시작하고자 한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현재 한국교회에서 반(反)동성애 사역은 평신도들이 순교를 각오하고 헌신하고 목회자들이 사생결단으로 동역하지만, 신학계에서는 침묵·방관하거나 심지어 친(親)동성애적 행보를 보이는 현실이다. 신학자들은 동성애 옹호세력에 점령당한 교육현장에서 강자의 눈치를 보면서 포퓰리즘에 영합하거나, 신성모독 수준으로 음란하게 성경을 해석하면서 동성애를 미화하는 퀴어신학(queer theology)에 예언자적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평신도와 목회자는 신학자가 교리를 굳건히 세워 영적·사상적 전쟁을 견인해 주길 기대하지만, 현재 한국의 주류 신학계는 그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동성애와 퀴어신학을 비판하는 신학자들의 학술포럼을 개최하여 한국 신학계의 영적·사상적 분위기를 쇄신함으로써, 동료 신학자들이 소신있게 신학교육과 목회현장을 향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동기부여하고자 한다. 성경의 진리를 바른 신학으로 굳건히 세워 세계교회와 신학계를 회복시키고 인류문명을 사수하기 위해 결기있는 행보를 내딛고자 한다. 무엇보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든든히 세움으로써, 다음세대에게 인류가 반드시 전수해야 할 숭고한 가치체계와 건전한 문화유산, 그리고 신실한 신앙전통을 물려줄 수 있기 위해 우리 신학자들은 헌신을 결단하면서 학술포럼을 개최하게 되었다.

2. “젠더주의기독교대책협의회”(가칭)을 발족하게 된 동기:

특별히 금번 학술포럼에서는 젠더주의와 성혁명, 퀴어신학에 대안을 제시하는 목회자 및 신학자들의 모임인 “젠더주의기독교대책협의회”(가칭)를 발족하는 순서도 진행한다. 장차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를 이끌어나갈 우리의 미래 신학도들에게 대(代)를 이어 젠더주의와 성혁명, 퀴어신학을 막아낼 수 있는 견고한 지지기반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다.

우리세대가 연한이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난 연후에도 우리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진리에 굳건하게 서서 기독교 신앙과 가치체계를 후대에 전수해주어야, 후대 또한 이를 자자손손 대대로 전수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미래세대가 하나님의 주권과 창조질서를 지켜냄으로써 젠더주의와 성혁명, 퀴어신학의 폐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존경하는 김영한 박사님(숭실대 명예교수)의 권면으로 젠더주의를 연구하게 되었다. 그동안 신학자로서 젠더주의에 대항해야 할 사명감은 나날이 확고해져 갔지만, 사실 단체 설립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단체를 설립하도록 동기부여한 계기들이 몇 차례 있었는데, 작년 이맘때 존경하는 한 교수님이 "일반교수들 같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신학대 교수님들이 동성애를 찬성하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 같다"면서 깊이 한탄하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믿음이 귀한 평신도분들이 목사와 신학자들을 걱정하는 현실이 너무 부끄러웠고 계속해서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1년이 흘러 은사님이자 박사과정 선배님이신 김균진 박사님(연세대 명예교수)이 신학계 안에 젠더주의를 비판하는 기조가 대세가 되도록 조직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게 단체를 결성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나의 개인적 소견은 성경을 음란하게 해석하고 신성모독죄를 범하는 퀴어신학을 심도있게 연구하면서 퀴어신학자들의 논리가 외견상 현란하게 보이지만, 깊이 파고 들어가면 비논리적인 궤변과 억지주장에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특별히 퀴어신학의 폐해와 악영향으로부터 현 세대의 신학도들만이 아니라 후대의 신학도들도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나를 비롯한 퀴어신학 연구자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서도 계속해서 퀴어신학을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군들을 육성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용단을 내리게 되었다.

3. 맑시즘과 동성애 옹호활동 사이의 상관성과 ‘인권’의 진정한 의미:

그동안 젠더주의를 비판하는 학술포럼이 몇차례 열렸었다. 이번에 개최되는 학술포럼에서는 젠더주의를 옹호하는 진영이 주장하는 논리의 핵심을 간파하는 포럼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년 반 남짓 젠더주의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문제 중 하나가 동성애자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현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동성애 옹호진영이 주장하는 ‘인권’의 진정한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의구심이 계속해서 뇌리를 스쳤다.

그동안 일반인들은 동성애 문제를 단순히 동성 간의 애정행각이나 성도덕의 측면에서만 생각해 왔다. 그러나 맑시즘(Marxism)과 성소수자(LGBTQIA) 해방운동이 동일한 사상적 맥락에서 다뤄진다는 사실은 이 분야 연구자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나 또한 이 사실을 젠더주의와 성혁명을 심도있게 연구하면서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맑시즘과 성소수자 정치투쟁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은 이미 입증된 연구결과다.

여기서 우리는 맑시즘이 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해 과거엔 노동자를 이용했듯이, 오늘날엔 여성과 성소수자를 이용하는 현실을 간파할 필요성이 있다. 즉 맑시즘이 한때 노동자를 선동해서 노동자 vs. 자본가 대립구도의 계급투쟁을 부르짖었다면, 이제는 여성을 충동해서 남성 vs. 여성의 극심한 남녀갈등으로 몰고가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차별받아왔던 서구세계의 동성애 역사를 모든 동성애자들에게 일반화시킴으로써 이들로 하여금 성혁명을 일으키도록 충동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맑시즘의 구심점이 ‘노동’에서 ‘성’(性)의 문제로 이동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동성애 옹호진영에게 있어서 과연 ‘인권’이란 무슨 의미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동성애 옹호세력, 곧 유물론 사상을 가진 맑시스트들에게 있어서 인권은 이론적으로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물론을 주창한 칼 맑스(K. Marx) 자신은 당대에 무산자(프롤레타리아)계급에게 인권을 부여해주면 혁명의 동력이 사라진다면서 인권을 경시했었다.

유물론을 확고하게 견지하는 맑스 계열에선 결단코 인간의 존엄성의 근거를 찾을 수 없으므로, 인권이 이론상 불가능한 것이다. 인권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창 1:27)으로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온전히 성립될 수 있다. 인간이 존엄한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이고, 이것을 사회 전반에 제도적으로 확고하게 정착시킨 것이 바로 종교개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 옹호진영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바로 ‘인권’이다. 이들은 성소수자들을 차별하거나 혐오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이유가 다름 아닌 인권이라고 말하면서 일반인들을 세뇌시키고 있다. 이러한 프레임이 우리 사회에서 강력하게 작동됨으로써, 동성애를 비판하면 반인권적·비인간적 비지성인으로 낙인찍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유물론자들에게 있어서 인간은 ‘영혼이 없는 물질’에 불과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인권이란 명목으로 동성애 옹호활동을 하는 것은 인간을 기만하는 일이라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특별히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제도적으로 굳건히 세운 종교개혁의 위대한 역사적 전통 위에 세워졌는데, 유물론자들은 이를 전복/해체시키려고 획책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종’을 양성하는 신학교 안에서도 이들을 동조하는 신학자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지 우리는 문제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회양극화의 심화를 틈타 21세기 대한민국에 맑시즘이 재논의되고 있는데, 맑시즘과 함께 주체사상 세력이 한국교회 안에 전방위적으로 침투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동성애 옹호진영이 동성애자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현실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엄밀히 말해, 동성애자들은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젠더주의의 최대 희생양이다. 젠더주의의 법제화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존재는 치료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동성애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동성애의 폐해와 위험성을 듣지 못함으로 인해 자신의 몸으로 실험하다가 비참한 인생말로를 맞이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일반인들은 정치인들이 차별을 금지하자는데 왜 교회가 반대를 하느냐고 그리스도인들을 비판하고 있다. 동성애 옹호진영은 기독교가 동성애를 정죄한다고 비판하지만, 실제로 동성애로 인한 HIV/AIDS 감염자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이들은 상당수가 그리스도인들이다. 동성애자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이 에이즈 환자들을 돌보는 사례는 흔치 않다.

연구자들의 연구결과, 치료를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동성애의 폐해를 알리지 못하게 된 동성결혼 합법화 국가들에서 동성애자들의 삶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동성애 및 동성혼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동성애 및 동성혼 및 자살률 사이의 강한 연관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차별 때문에 동성애자들이 더 우울하거나 자살률이 높은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인권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치료의 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누가 더 사랑하는지가 상대진영을 설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누가 더 동성애자들의 삶과 인권을 생각하는지, 양 진영이 서로 자유롭게 입장을 표명하고 인격적으로 대화하면서 사회적 공론화를 이뤄나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동성애가 허용되는 사회는 이미 이성애자들도 엄청나게 타락한 사회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성애자들도 회개하고 겸허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만일 성관계가 결혼관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건전한 성윤리가 건재하다면, 동성애는 거론조차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곽혜원 박사(21세기교회와신학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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