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차별금지법에 중간, 회색지대는 없다

오피니언·칼럼
사설

교계가 국회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점점 결집해 가고 있다. 그런데 그 중심에 서 있는 예장 통합이 한교총을 통해서는 적극적인 반대의 목소리를 키워오면서도 다른 한축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적극적인 찬성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통합 측은 기장, 기감 등과 함께 NCCK 주축 교단으로 활동해 왔다. 그러다 지난 1989년 고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보수기독교 연합체인 한기총을 창립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지난 2011년경 한기총에 금권선거와 이단 시비가 일자 한기총을 탈퇴하고 한교연을 창립하는데 앞장서더니 3년 전에 다시 한교총을 창립, 지금은 두 연합기관에 공히 몸담고 있다.

그런데 통합이 한교총에서는 차별금지법을 적극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NCCK에서는 반대로 국회가 차별금지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는 180도 상반된 성명서가 나오면서 예장 통합 측의 정확한 입장이 무엇인지 교계 뿐 아니라 교단 내부에서까지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을 놓고 한 입에서 두 갈래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는 교단 산하 7개 노회가 9월 총회에 차별금지법 관련 교단의 결단을 촉구하는 헌의안을 다수 상정한 것만 봐도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산하 서울강북노회, 포항노회, 대구동노회, 천안아산노회, 부산노회, 부산동노회, 부산남노회는 교단 총회에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NCCK 탈퇴, 심지어 교단 소속의 이홍정 총무를 해임하라는 내용의 헌의안을 상정했다.

그런데 통합 측 소속의 온누리교회가 교단 총회에 NCCK 탈퇴를 공식 요청하기로 하는 등 차별금지법 반대를 위한 행동 대열에 가세함으로써 그 파장이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온누리교회 당회는 NCCK 정의평화위원회가 지난 4월 성명을 통해 국회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그 입장과 활동 방향이 교단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 교단의 NCCK 탈퇴를 공식 요구하기로 결의했다.

장로교 지교회가 어떤 정책이나 입장을 총회에 전달하려면 소속 노회 시찰회를 거쳐 노회에서 결의를 한 후 이를 총회에 상정해야 한다. 앞서 통합 측 소속의 7개 노회의 헌의는 이런 절차를 다 거쳐 정치부 안건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따라서 소속노회가 이 문제로 다시 긴급히 모이지 않는 한 온누리교회 당회가 결의한 내용이 총회에서 공식 안건으로 다뤄지기는 어렵다.

온누리교회가 이런 절차도 모르고 교단을 항해 입장을 표명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회가 운영위를 열고 총회에 결단을 촉구했다는 것은 앞으로 교단이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리 교회는 이것을 기준삼아 모종의 결단을 할 수도 있음을 사전에 암시해 주는 일종의 ‘시그널’로 보인다.

온누리교회 제2대 목사인 이재훈 목사는 전임 고 하용조 목사와 마찬가지로 교단 정치나 감투, 자리 등에 관심을 두는 목회자가 아니다. 그런 그가 최근 들어 유독 강하게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차별금지법이다. 이 목사는 얼마 전 교인들에게 “만일 차별금지법이 상정되면 국회 앞에서 시위하고 있는 이재훈 목사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며 비장한 심경을 밝힌 바 있다.

통합 측이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교단 안팎의 계속되는 파열음에도 NCCK와 결별하거나 이홍정 총무를 해임하는 등의 강경노선으로 해법을 찾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통합 측이 NCCK를 탈퇴한다는 의미는 밖으로는 WCC라는 세계기구와의 결별을, 안으로는 기독교방송, 대한성서공회, 대한기독교서회 등 연합사업체의 이사 파송을 비롯, 재산권 일체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교단 내부 사정에 밝은 인사들은 “통합 측이 홧김에 일을 저지르기에는 너무나 잃을 게 많기 때문에 당분간 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노회를 비롯해 교회들까지 들고 일어나는 마당에 언제까지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통합 측은 교단 헌법시행규정 제26조 12항에 “동성애자 및 동성애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자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명문화되어 있다. 따라서 차별금지법에 관해 두 가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안팎의 비판은 교단에 정치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차별금지법에 중간지대, 회색지대는 없다는 교단 안팎의 전방위적 압박에 통합측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