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예배를 강요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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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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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훈련소에서의 예배 추억

참빛순복음교회 김영태 목사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받을 때였다. 입소 후 처음 맞이한 주일이어서 교회 갈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훈련병들을 연병장에 집합시킨 후, 교회 갈 사람은 나오라고 했다. 15명 정도가 나갔는데 갑자기 조교가 ‘엎드려뻗쳐’를 시키더니 ‘구타’와 ‘얼차려’가 이어졌다. 잠시 후 기상하라고 하더니, 교회 갈 사람은 땅에 머리를 처박으라고 했다. 모두 들어가고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아픈 것과 수치심보다 외롭다는 생각이 더 컸는데 감사하게도 한 훈련병이 나와서 내 옆에서 머리를 처박았다. 이런 과정을 통과한 후에 교회 가는 것을 허락받았다.

교회에 도착해서 예배드리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사회에서 한 번도 예배 제재를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예배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되었다. 그날 퇴소식을 앞 둔 한 훈련병이 특송을 했다. “저 하늘나라 아기별님 예수님의 사랑 알까요? 저 넓은 바다 고기들은 예수님의 사랑 알까요?” 훈련소에서 가장 많이 부른 찬양은 ‘실로암’이지만, 내 추억 속엔 ‘저 하늘나라 아기별님’이 가장 아름다운 찬양으로 남아있다. 정부에서 비대면 예배만 허락한다고 하니 군대시절이 생각난다. 이번에는 몇 대 맞으면 될까?

2. 교회당 예배를 부끄러워하지 말라

코로나19로 인해서 한국교회가 사회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 주님 안에서 한 몸인 기독교인 중에도 교회당에서 예배드리는 교회를 비난하는 분도 있다. ‘비대면 예배는 이웃 사랑이고 교회당 예배는 돈 욕심, 이기심’이라는 등의 비난을 한다. 자신도 기독교인이라고 밝히면서 기독교인으로서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을 하는 분도 있다. 가짜일 것이다. 그런 분들을 위해 부득불 설명한다. 확진자가 1명이라도 발생하면 폐쇄당하고 타격을 입기 때문에 헌금을 생각한다면 안전한 온라인 예배를 선택한다. 대형교회는 재정이 넉넉해서 헌금 문제없다. 소형교회는 개척 비용이 10년 사례비보다 많기 때문에 돈을 생각했다면 개척하지 않았을 것이고, 교회 운영을 위해 세상일을 하는 목회자도 있다. 돈 욕심이라면 목회를 그만두지 고생을 사서할 이유가 없다. 즉 교회당에서 예배드리는 이유는 영혼구원 때문이다.

교회당에서 예배드리는 교회를 부끄러워하는 기독교인은 예수님까지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 보낼 때, 당시 사람들이 전염 위험으로 기피하던 나병환자들에게도 가라고 하셨다(마10:8). 그 뜻에 순종하여 손양원 목사님, 문준경 전도사님은 전염병 환자들도 섬겼다. 두 분의 섬김은 지금도 한국교회 강단에서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는 살아있는 역사다. 그분들이 과연 코로나19를 이유로 비대면 예배를 지지할까? 나병환자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셨던 손양원 목사님,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의 가족을 대신해서 장례를 치러준 문준경 전도사님이? 그리스도의 양심을 가진 자는 정답을 알 것이다. 그 정도까진 못하더라도 안전한 교회당에서 예배라도 드려야 맞다.

3. 리처드 백스터와 마틴 루터의 전염병에 대한 입장

‘리처드 백스터’와 ‘마틴 루터’가 한 말을 근거로 비대면 예배를 정당화하고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을 비이성적 집단으로 매도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런 행위는 사실과 상황을 왜곡하여 성도들의 믿음을 떨어뜨리는 범죄다. 먼저, ‘리처드 백스터’가 전염병이나 화재나 전쟁의 경우, “어느 한 주일이나 하나의 모임을 생략해서 더 많은 모임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중요한 일입니다.”라고 말한 것을 근거로 비대면 예배를 주장하는 분들은 양심적으로 생각해보라. 정말 지금이 그 시대처럼 위험한가? 그렇다면 현재, 시민들이 매일 버스나 전철, 식당, 쇼핑센터 등을 이용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런 곳들이 일주일에 몇 차례, 그것도 단 몇 시간만 사용하는 교회보다 더 안전하고, 교회는 그런 곳보다 더 위험한가? 너무 지나치게 과장하지 말라. 본인이 세상 사람보다 더 겁이 많은 것을 인지하라.

‘마틴 루터’가 “내가 꼭 가야 할 장소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라면 피하여 나와 이웃 간의 감염을 예방할 것이다. 혹시라도 나의 무지와 태만으로 이웃이 죽임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라고 한 말을 현 상황에 적용하는 게 맞나? 그렇다면 1527년 페스트가 독일의 비텐베르크를 강타했을 때 마틴 루터가 도시를 탈출하라는 요청을 거부하고 병자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다가, 그의 사랑하는 딸 엘리자베스를 전염병으로 잃게 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루터’는 기독교인들이 전염병을 피해 도망가는 것을 허락했지만 공직의 의무가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예외로 했다. “기독교인 의사들은 자신이 속한 병원을 버릴 수 없고, 기독교인 정치가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구를 버리고 도망갈 수 없고, 목회자들은 자신의 공동체를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전염병은 우리의 의무를 해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이 우리의 십자가가 되고 그 위에서 우리는 죽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크리스천투데이). 또한 임종을 앞둔 성도들이 신앙으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말씀과 성례로 위로하라고 했다.

‘루터’를 따르겠다면 심각한 전염병이 발생해서 성도들이 오지 않아도, 만약 단 1명이라도 예배드리러 오는 성도가 있다면, 목회자는 목숨을 걸고 그 예배자를 섬겨야 한다. 사실, 목회자는 성도에게 교회에 오지 말라고 할 권한이 없다. 세상적으로 비유하면 목회자는 성도의 예배를 돕기 위해 고용된 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일 운영하는 식당, 커피숍, 회사, 쇼핑센터 등은 코로나19 감염위험이 훨씬 높지만 직원들은 가족을 위해 또는 서비스 정신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용감하게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주일에 몇 번 밖에 사용 안 해서, 훨씬 안전한 교회의 목회자는 더 용감해야 한다. 코로나가 두렵다거나 세상의 비난이 두렵다고 교회 문을 닫고, 하나님을 사랑해서 자발적으로 교회에 예배드리러 오는 성도를 되돌려보내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배자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

4. 비대면(온라인) 예배는 근본이 없다

온라인 비대면 예배 정당론자들은 교회당에서 예배드리는 교회를 비난하는 죄를 멈춰라. 손봉호 교수가 “대면예배만 예배란 주장은 성경적 근거도 없고 그런 전통도 없다.”는 망언을 했다. 예수님이 성전을 청소하신 것은 예배 폐지가 아니라 올바른 예배를 드리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오순절 이후에도 성전에서 예배드렸다. 또한 성경은 “어떤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교회의 모임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히10:25/쉬운성경)라고 분명히 기록했다. 그래서 2천년 동안 교회는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려오고 있다. ‘카타콤’과 ‘갑바도기아’는 교회의 순교적 예배 역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지다. 신학 교수가 이런 예배 전통을 모르는가? 역사적으로 교회 모임을 폐한 자들은 이단과 핍박자들이었다. 무슨 의도로 손 교수가 궤변을 늘어놓았는지는 모르지만 근본도 없는 비대면 예배를 주장하고 정당화하기 위해서 성경과 교회역사를 왜곡한 것은 그의 신학과 윤리의식을 의심하게 만든다.

비대면 예배 정당론자들의 주장대로 한다면, 비대면 예배는 성경이 기록된 모세시대 때부터 가능했다. 성경을 보고 혼자서 예배드리면 되기 때문이다. 특히 루터가 성경을 번역하고 인쇄한 후부터는 비대면 예배는 폭발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었고, 수많은 설교책과 컴퓨터 온라인이 보급된 현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왜 그동안 비대면 예배를 안 드리다가 이제야 와서 성경적 근거가 없는, 근본도 없는 비대면 예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가? 정부에서 비대면 예배를 명령했기 때문이 아닌가? 분명한 것은 교회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명령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점은 비대면 예배 정당론자들이 겁쟁이 또는 기회주의자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비대면 예배자들은 교회당(예배당)에 안가도 되므로 비대면 예배가 지속되어도 문제될 것도 없고 오히려 사회에서 칭찬받을 것이니 가만히 있길 부탁한다. 그러나 교회 예배당에서 현장 예배를 드리는 목회자들은 비난받는 것보다 성도들을 돌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지 못하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 고통스럽다. 하지만 절망 대신에 소망을 갖고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자 한다.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결의한 목회자들이 국민의례일 뿐, 교회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정당화 했지만 지금은 부끄러운 역사로 남은 것처럼, 정부의 명령에 맹신적으로 순종하고 온라인(비대면) 예배를 결정한 것은 분명히 하나님 앞과 기독교사에 부끄러운 흑역사로 남게 될 것이다.

5. 대형교회와 교단, 연합기관의 의무

대형교회들이 은혜로운 온라인 비대면 예배를 위해 20명 이내 참석 허락을 받아냈다. 그것이 최선일까? 스태프 없이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하는 소형교회들의 사정도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일부 교회들은 유튜브를 통해 최첨단 방역시스템을 광고하고 있다. 혹시 수평이동을 기대하는가? 왜 부끄러운 줄 모를까? 정말 민망스러운 것은 비대면 예배는 신학적으로 충분히 논의하지도 않은 근본이 없는 예배인데 한국교회의 대표 또는 선구자 역할을 자처했던 대형교회(목사)들과 교단들, 연합기관들이 앞장서서 비대면 예배로 전환한 사건이다. 이번 사건 전까지는 한국교회의 신앙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세속화된 것으로 알려진 미국에서 그레이스교회(존 맥아더 목사)가 예배중지 명령에 소송하여 승리하고 예배권을 지켰다. 참으로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부럽다.

한국교회에는 세계적인 대형교회들이 많이 있다. 그 대형교회들은 돈도 많고 성도들 중에는 변호사들도 많다. 그러면 소송이라도 해봐야하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대형교회들이 소속된 교단과 초교파 연합기관들은 조직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데 왜 종이호랑이처럼 아무런 역할도 못하는가? 그리고 교회가 정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곳인가? 초대교회가 허락을 받고 예배드리고 전도했는가? 이제라도 교단과 초교파 연합기관은 한국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앞장서라. 그러면 소형교회들은 기도하며 따라갈 것이다. 감사하게도 한교연, 부기총, 충기연 등에서 현장예배 고수를 천명해준 것에 감사드린다.

정부의 겁박과 비대면 예배주의자들의 교회당 예배 왜곡과 비판이 도를 넘었다. 한국교회가 무너지면 세계교회도 흔들린다. 한국교회는 성경 진리와 교회당 예배의 전통을 수호하기 위해서 신학적, 법적인 공동대처를 위한 모임을 구성해야 한다. 초교파 연합기관에서 모임을 주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지역연합회 별로 모이는 것도 좋다. 시간이 촉박하므로 빨리 시작해주기를 바란다. 더불어 필자는 네이버 밴드 ‘목회와 세상’을 만들었는데 이곳에 와서 좋은 의견과 대책을 올려주면 감사하겠다. 대형교회들이 두려워한다면 소형교회들 만이라도 힘을 모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작은 첫발을 내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작은 출발이라도 분명히 한국과 세계 교회사에 의미 있는 역사를 이루는 시작이 될 것이다.

6. 하나님과 한국교회를 모독하지 말라

총리가 확진자의 절반이 교회발이라고 발표했고, 대통령도 “8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재확산의 절반이 교회에서 일어났다..... 예배나 기도가 그 마음에 평화를 줄 수는 있겠지만 바이러스로부터 지켜주지는 못한다. 방역은 신앙의 영역이 아니고, 과학과 의학의 영역이라는 것을 모든 종교가 받아들여야만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런 말을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기독교의 대표들-교단장들과 초교파 연합기관장들에게 했다니..... 성경은 하나님이 자연만물의 창조주이시며 통치자이시며 전염병까지도 주관하시는 것을 증언한다. 그런데 하나님과 성경을 믿는 기독교 대표자들 앞에서 신앙을 무시하는 말을 한 것은 하나님과 기독교인 전체를 모독한 것이다. 실수였다면 사과와 회개로 진노를 피하길 바란다.

이에 대해 한교총 대표(김태영 목사)가 “종교의 자유는 목숨과 바꿀 수 없는 가치.... (문 대통령이 지난 2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어떤 종교적 자유도, 집회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도 국민들에게 그와 같은 엄청난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한 데 대해-편집자 주) 종교의 자유를 너무 쉽게 공권력으로 제한할 수 있고 중단을 명령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려 크게 놀랐다”라고 한국교회를 대변한 것에 감사드린다. 다른 분들의 발언은 보도되지 않아서 모른다. 그러나 혹시라도 하나님과 한국교회를 모독하는 말을 듣고도 권력에 잘 보이려고 아첨하거나 침묵한 분이 있었다면, 자신이 한국교회의 수치임을 자각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대표를 사퇴하고 다시는 출마하지 말라. 기독교 대표의 자리는 명예직 또는 권력자와의 만남을 영광으로 아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기독교 신앙을 대변하고 수호하는 일에 앞장서는 자리이다. 약점이 없고 진짜로 하나님을 믿어서 용감하게 할 말을 할 수 있는 분들이 교단과 초교파 연합기과의 대표가 되어야 한국교회가 살 수 있다.

코로나19 확진자의 절반이 교회발이라는 주장은, 물론 대통령은 8월로 한정시켰지만 이렇게 한정시키는 것도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전체기간으로 얘기해야 공정한 것이다. 총리와 대통령의 주장은 방역 실패의 책임을 한국교회에 떠넘기려는 의도가 아닐까? 우리나라의 기독교 인구는 20%정도다. 확률적으로 볼 때 교회가 일부러 코로나19를 감염시키는 행위를 하지 않는 한 교회발 확진자가 50%가 될 가능성은 절대 없다. 그동안 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온 원인은 마스크 쓰지 않고 음식을 나눠먹은 경우인데, 그런 교회는 6만 교회 중에서 극히 일부다. 그리고 사회에서 시민들은 매일 식당, 커피숍 등에서 음식을 먹지만, 교회에서는 1주일에 1번 음식을 먹고, 요즘은 식사하는 교회도 없을텐데 어떻게 50%가 교회발이 될 수 있겠는가?

정말 과학적으로 접근해보자.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의 원인이 8·15 광화문 집회 때문이라며 강제 검사와 처벌로 겁박하고 있지만, 전문가인 의사들은 8·15전부터 확산된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맞을까? 정부의 기준대로 한다면 8월 15일 민노총 집회자들, 진압 경찰들, 그리고 8월 14일 1-3만 명 모여서 시위한 의사들에 대해서는 왜 강제 검사나 처벌 등의 명령을 내리지 않는가? 또한 2만 명 이상 모인 서울시장의 장례는 왜 허락했으며, 100만 명이 모인 해수욕장에서는 왜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매일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집합하는 버스나 전철의 운영을 중단하지 않는가? 이런 조치가 과학적인가? 감정적인가?

특히 성도들이 커피숍에서 모이는 것은 괜찮지만 신앙 모임은 안 된다고 하니, 교회 모임을 갖는 순간 코로나19가 생성되기 시작한다는 말인가? 이런 모독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이태원 게이클럽의 업체명은 인권이라는 명분으로 숨겨주고, 교회는 주소와 사진까지 공개하는 것은 무슨 차별인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객관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고 과학적이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 그래서 한국교회와 하나님을 모독하기 위한 탄압, 한 여당 의원이 말했던 ‘종교 재편’을 위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탄압으로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과 총리가 언론에 좁은 속내와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장면이다.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도 부끄러워하게 되지 않을까?

7. 거짓말로 국민의 불만을 막을 수는 없다

교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절반이 나왔다고 주장한 근거는 잘못된 분류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단, 사이비까지 교회발로 분류하고, 기독교인은 무조건 교회발로 분류하는 것이다. 한 예로,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가 감염되었을 때, 교회에서 예배드리지도 않았는데 교회발로 분류했다. 혹시 8·15 광화문 집회를 교회발로 계산한 것 아닌가? 그러면 정말 잘못된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참여했어도 그것은 한국교회가 인정하거나 지원한 기독교 집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독교 인구가 20%이므로 이런 방식으로 분류하면 교회발 확진자를 90%이상으로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분류 방식 때문에 괴벨스의 거짓말 원리를 이용하여 한국교회를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소수의 사람을 잠깐 속일 수는 있어도,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1923년 일본 관동 대지진 때에 일본 정부는 비난과 책임을 피하기 위해 야비하게 조선인이 일본인을 죽이려고 우물에 독을 넣었다고 거짓말을 퍼뜨렸다. 그 결과 6천여 명의 조선인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고 이와 같은 과거역사는 현재도 일본을 원수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거짓말로 희생양을 만드는 것은 쉽지만 그 대가는 오랫동안 치러야 한다.

정부에 대한 불만은 한국교회만이 아니다. 사회 전역에서 정부를 향한 불만이 쌓여있다. 인국공 사태, 청년 일자리, 부동산 폭등, 여당의 내로남불, 세금 증액, 중국 사대주의, 탈원전 정책, 전기료 인상, 조국 사태,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넘어선 유권무죄 무권유죄, 의사들의 분노, 태아 및 생명경시, 선거 의혹, 탈북자 푸대접 등등. 이런 불만들을 코로나19를 이용하여 한국교회에 떠넘기려는 생각을 갖고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두더지게임처럼 국민의 분노를 막을 수 없다. 곧 화산처럼 대폭발할 것이다. 최근 이슈가 된 ‘시무 7조 상소문’ 청원을 공개하자마자 청원자가 20만 명이 넘은 것은 사회 전역에서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불만이 폭발직전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8. 특이한 전광훈 목사 현상의 원인

전광훈 목사 현상은 특이하다. 먼저, 필자는 전 목사의 신앙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었다. 편들거나 비판하려는 것이 아닌 객관적 평가임을 밝힌다. 보통 시위는 시민들의 분노로 발생하고, 야당이 시민들의 대변인을 자처하여 확대된다. 즉 시민 또는 야당이 주도한다. 그런데 8·15 광화문 집회는 전 목사가 중심인 것으로 보인다. 2019년의 100만 명의 집회 때도 전 목사가 주연, 야당이 조연 역할을 했다. 전 목사의 교회 성도 수는 4천 명 정도에 불과한데 100만 명이 집결했다는 것은 종교와 상관없이 시민들이 동참했다는 것이므로 정말 특이하다. 이런 특이한 현상의 원인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폭주하는 정부와 여당, 불구경하며 눈치만 보고 있는 야당의 무능, 그리고 기독교신앙이 모독당하는데도 제 역할을 못하는 한국회의 연약함에 있을 것이다. 아무도 국민들의 불만을 대변하지 못하니까 사이다 발언을 토해내고 용감하게 앞장서는 전 목사가 주도하는 집회에 국민이 집결하는 것이다. 즉 전 목사가 국민들이 불만을 토해내는 통로가 된 것이다.

한국교회가 예배 금지와 반 성경적인 법들을 추구하는 것에 용감하게 강력하게 대처한다면 전 목사 집회에 참여할 기독교인들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야당이 전 목사 현상을 통해 어부지리로 이익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용기를 내고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국민들의 불만을 진심으로 아파하며 국민을 대변하고 용감하게 집회를 주도한다면 종교인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대통령과 여당이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자기편에게만 관대하지 말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결과를 보여준다면, 즉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기회를 주고 투명한 과정을 보여주고 공정한 결과를 보여준다면 국민들은 시위할 일이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종교인도 등장할 수 있다.

9. 정부는 먼저 사과하고 철저한 방역을 하라

정부가 코로나19를 종식시키려면 먼저 정부의 잘못된 방역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국민과 한국교회에 사과하고 방역체계와 방식을 바꿔야 한다. 2020년 1월 우리나라의 처음 확진자는 중국에서 입국한 중국인 1명뿐이었다. 그때 대한의사협회와 76만 명의 국민이 청원을 통해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K방역을 자화자찬하며 휴일 지정, 소비 쿠폰을 발행하는 오기까지 부렸다. 그런 안일함과 고집이 현재, 확진자 19,077명 사망 316명의 불행한 사태를 만든 것이다. 그래서 국민과 한국교회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인 것이다.

그런데도 사과 한 마디 안하고 적반하장으로 국민을 통제하고 교회예배를 금지하고 처벌한다고 겁박한다. 그러면서 외국인 입국은 큰 문제가 안 된다고 주장하고 또 중국 문을 활짝 열었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위에서 오염된 물이 내려오는데 밑에서 오염된 물고기만 잡는다고 해결되겠는가?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다른 소들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국내 확진자가 0명이 된다 해도, 외국에서 단 1명의 확진자라도 입국하면 또 다시 현재와 같은 대 확산 상황이 재연될 것을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 현재 ‘깜깜이 환자’가 30%가 넘는다고 하는데, 외국인에 의한 것은 아닐까? 정부는 지금 당장 중국 및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시켜야 한다. 최소한 2주간의 엄격한 격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쳐라. 통제하고 억압하지 말고 겸손하게 섬기는 자세로 일하라, 권불십년이다.

코로나19를 핑계 삼아 모든 불만과 책임을 한국교회로 떠넘기려고 하는 자들은 명심하라. 하나님과 성경보다 피조물을 신앙의 대상처럼 맹신적으로 지지하며 근본도 없는 비대면 예배를 강요하고, 교회당 예배를 비판하는 자들도 명심하라. 하나님은 공의로운 심판자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4)

김영태 목사(참빛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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