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칼럼] 가족의 의미

오피니언·칼럼
칼럼
강지윤 박사

가족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긴긴 시간 상담실에서 가족 때문에 골병 든 사람들을 만나왔다. 가족이라는 관계로 얽혀 있는 수없이 많은 무서운 상처의 단편들이,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절박한 이야기에 폭설처럼 묻혀 있었다.

누가 가족이란 말인가.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작은 아이가 죽을 때까지 몽둥이로 때리는 아빠가 가족인가. 작은 가방 속에 가두고 그것도 모자라 숨을 못 쉬는 아이가 죽으라는 듯 가방 위에 올라가 육중한 발로 내리 누르고 마침내 죽게 만든 엄마가 가족인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성추행과 성폭행을 일삼고 수치스러운 가족비밀로 안고가게 만든 인면수심의 부모가 가족인가. 수년간 동생을 괴롭히고 폭력을 가한 형이 가족인가. 작은 실수를 조금도 용납해 주지 않고 어린 딸을 벌가벗겨 온 몸에 피멍이 들도록 때린 엄마가 가족인가.

성적이 떨어졌다며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아빠가 아들의 다리에 피가 철철 흐르는 데도 분을 못 이겨 때렸다면 그가 가족이 될 수 있는가. 쇠사슬에 묶어 놓고 하루에 한 끼 먹이고 개처럼 끌고 다니며 학대한 부모가 가족인가.

살기 힘들다며 아이들과 함께 불을 질러 죽거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죽거나, 물로 뛰어들어 죽은 부모가 가족인가. 아이는 살고 싶어 발버둥 치는데 그 아이를 십층 높이에서 밀어서 떨어뜨리고 자기도 뛰어내린 비정한 엄마가 가족인가.

너무 극단적인 예를 든 것일까.

그러나 자주 뉴스에 오르내리는 비극적 이야기 아닌가. 잠시 끔찍하게 생각하다 금방 잊어버리는 익숙한 ‘가족잔혹사’는 그들의 이야기로 너무 쉽게 묻혀버리고 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무서운 가족의 비극은 ‘아이는 때려서 키워야 한다’는 의식이 오랫동안 부모들의 머릿속을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가 범죄행위로 처벌받아야 하는 잘못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제대로 모르고 있다.

게다가 나라의 법 마저도 강화되지 못해서 가족 비극을 막아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굴레 속에서 심한 상처를 입고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그냥 견디며 살고 있다.

다행히 훌륭한 부모님이 잘 길러주셨다면 상처가 덜 하겠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그 윗대의 부모로부터 배우고 습득하며 살아오다보니 자신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또 다시 가족에게 상처를 입히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잔잔한 울림을 전하는 드라마 한 편이 있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수많은 가족비밀과 상처로 얼룩진 가족이 차츰 서로를 알아가며 응어리를 풀고 가족의 사랑을 찾아가는 가족성장 드라마다. 이 드라마처럼 모든 가족이 서로의 마음을 풀어내고 이야기하며, 오해를 푸는 과정을 거쳐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안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할 수 없이 치유적이며 모범적인 가족이다. 현실에서도 이런 가족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내 어머니요 내 누이다.”

상처를 주는 악행을 하지 않고 선을 행하는 자가 나의 가족이다, 라고 선언하셨다. 이 선언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위로가 되었다. 사전적 의미에 묶여 혈연이나 호적에 있는 사람들만이 가족이 아니라는 말이다. 서로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가족이 될 수 있다. 혈연만이 가족은 아니다.

모르고 상처를 줄 수는 있다. 실수로 아프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일부러 상처주고 상처받아 아파하는 줄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면 가족이기를 포기하는 악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외롭기 때문에 가족을 만들고 가족의 사랑을 느끼길 원한다. 가족을 만들기 위하여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는다. 부모와 자녀가 만들어졌다고 저절로 가족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분노를 다스려야 하고 부모로서의 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진정한 가족이 되기 위하여 애를 써야 한다. 사랑으로 따뜻하게 서로를 보듬어야 가족이다. 그래야 상처가 아문다.

코로나 블루가 깊어지고 모두가 힘든 이 시기에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길 바란다. 멀어진 가족이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고 위로와 사랑이 흐르는, 전화위복의 시기가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강지윤 박사(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심리상담학 박사)

#강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