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청각장애인)과 함께 걷는 ‘수어 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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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샛별(경기도농아인협회 미디어접근지원센터)

우리나라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가장 바쁜 곳은 어디일까?

필자는 질병관리본부와 보건복지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질병관리본부장과 관계자들이 매일 브리핑 현장에 나서 감염의 위험을 무릅쓴 채 주요 상황을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들 옆에 늘 함께 서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수어 통역사다.

수어 통역사들은 정보의 사각지대에 놓인 농인들이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전달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수어 통역사는 한 팀을 이뤄 브리핑 일정이 잡힐 때마다 동분서주하고 있다. 농인, 즉 청각장애인을 위해 애쓰고 있는 화면 속의 수어 통역사의 노고에 참 감사함을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은 농인(청각장애인)이 청력의 문제로 인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청각장애인과 농인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청각장애인은 병리적 관점에서 만든 용어고, 농인은 문화적 관점에서 만든 용어다. 그래서 필자는 청각장애인보다 농인으로 불리는 것이 더 좋다. 농인이라는 단어에는 농인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가 담겨 있어 의미가 더 강하게 와 닿기 때문이다.

2016년에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에 의해 우리에게 익숙했던 '수화'가 '수어'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수어가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이 생겨 영어, 일어, 프랑스어처럼 언어로의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다. 수어가 하나의 언어가 된 것처럼 익숙해져 버린 청각장애라는 말 대신 농인으로 바라보고 사용해주면 좋겠다.

감사하게도 코로나19의 현장에서 수어 통역사들의 활약으로 농인과 수어를 향한 관심이 증가했다.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수어 통역사를 장애인을 돕는 봉사활동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수어가 하나의 언어이듯 수어 통역사도 누굴 돕는 직업이 아닌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통역하는 전문 직업이다. 수어 통역사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직업의식을 잘 발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본다. 그리고 수어 통역사 옆에는 언제나 함께 걷는 농인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아주었으면 한다.

농인이 있기에 수어 통역사가 있고, 농인의 언어인 수어를 인정하며 이해하는 수어 통역사가 있기에 농인의 삶이 오늘보다 더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을 품어 본다.

이샛별(경기도농아인협회 미디어접근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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