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었던 마르크스의 타락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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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호 목사

상당수의 사람들은 공산주의의 사상적 체계를 세운 마르크스가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뿐만 아니다. 마르크스가 이런 사상 체계를 만든 목적이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도 잘 알지 못한다. 그는 “나는 모든 신을 증오한다”고 했고,1) “나는 위에서 다스리는 그 존재(하나님)에게 직접 복수하고 싶다”고 했다.2) 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가장 부도덕한 종교라고 혐오했다.3) 이처럼 마르크스는 하나님과 기독교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했다. 그의 이런 증오심의 결과가 변증법적 유물론과 자본론을 집필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사실 그는 본래부터 인류나 프로레타리아 계급, 혹은 사회주의에 공헌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에겐 애초부터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 대한 의로운 울분도 없었다. 도리어 그가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정의롭지 못한 삶을 일관했다. 그는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부르주아였다. 그의 부르주아적 성향은 철저히 자신만의 것이었다. 사치와 낭비가 심해서 아내는 극심한 궁핍으로 고통을 당해야 했고 일곱 명의 자녀들 가운데 넷은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야 했다.4) 자신은 호화롭게 살면서 아내와 자녀는 굶주림에 목 놓아 울게 했다. 그러나 나상민이 편역한 「칼 막스」에 의하면 자녀들의 죽음 책임을 냉혹한 부르주아에게 돌린다. 마르크스의 전기 작가 메링은 다음과 같은 말로 마르크스의 자녀가 죽은 문제를 사회 탓으로 돌린다.

“(맑스에게) 부루주아 사회가 베푼 것은 혹독한 고난과 시련뿐입니다. 이 고난과 시련은 고대사회의 십자가형이나 중세사회의 화형보다 덜 야만적이라 할지라도 실제로는 훨씬 더 잔인하다”5)

그러나 진실은 마르크스의 사치와 방탕함에 있었다.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노동을 하지 않았으며, 가족의 유산과 엥겔스의 경제적 지원에만 의존했다. 마르크스 연구소에 의하면 마르크스는 생전에 엥겔스로부터 600만 프랑(한화 8억원)을 받았다고 한다.6) 그가 엥겔스에게 받은 이런 엄청난 돈은 죽기 전 15년 동안 연소득 500파운드의 상류층의 삶을 살 수 있게 했다.7) 이런 호화로운 생활 속에서도 그는 가족을 돌보지 않은 냉혈한이었다. 마르크스의 믿을 수 없는 이런 사치 생활에 대한 증거는 마르크스 연구소 주장이니 인정 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마르크스가 어떻게 이런 냉혈한이 된 것일까? 이 문제의 핵심은 바로 가정교육에 있었다. 그의 가정생활에 대하여 세밀하고 구체적인 자료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부모가 마르크스를 너무 고분고분 키웠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의 가정환경은 유복하고, 어린 시절 배를 곯지 않았으며, 다른 친구들에 비해 형편이 훨씬 좋았다.8) 그의 인생 배경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공산주의 사상을 출산할 정도의 절망과 비관적 산고는 없다. 문제는 부모가 마르크스로 하여금 너무 호화롭게 키웠다는 데 있다. 너무 호화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에 자족할 줄 몰랐고, 아무리 좋고 넉넉한 환경 속에서도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해석하게 만들었다. 이런 사실을 추정할 수 있는 몇 개의 예를 보자.

1837년 청년 마르크스는 아버지에게 배도를 의미하는 편지를 썼다.

“막이 내렸습니다. 저의 지성소가 산산이 조각나 새로운 신들을 자실에 앉혀야 했습니다.”

아들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은 독실한 그리스도인 아버지라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이 정당할지 생각해 보자. 아마도 크게 분노하며 어떻게 하든지 아들을 설득하며 몸이 부서져라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응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미온적이었다.

“네 말을 도통 이해할 수 없지만, 수수께끼 같은 그 문제를 설명해달라고 고집부리진 않으마”

이것이 마르크스 기독교인이라는 아버지의 반응이었다. 이 편지에서 우리는 마르크스의 아버지가 어느 정도로 자녀 신앙에 방임적이었는지 감지 할 수 있다.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마르크스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절제를 가르치지 않았다. 마르크스가 베를린에서 학생으로 있을 때, 마르크스의 아버지는 연간 700탈레르를 용돈으로 주었다.9) 이 정도의 금액을 용돈으로 줬다는 사실은 상식적이지 않다. 당시 독일에서 연간 소득이 300탈레르 이상인 사람이 총인구의 5%밖에 안 됐기 때문이다.10) 이 점은 마르크스가 가정에서 돈을 절제하는 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렇게 잘못된 소비습관은 마르크스로 하여금 사치욕을 채워줄 만큼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을 때, 환경과 사회 구조를 탓하는 모습을 형성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자신의 사치욕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게 했다. 한 마디로 마르크스의 부모는 마르크스로 하여금 타락한 본성에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양육한 것이다.

성경은 자녀를 어렸을 때부터 엄격하게 키워야 할 것을 명령한다. 타락한 본성은 채워주는 것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절제시키고 길들여야 한다. 어렸을 때 본성을 억압하면 성인이 돼서 정신질병의 요인이 된다는 심리학의 가르침은 성경적 근거가 없다. 잠언은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잠 23:13-14)고 했다.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엄격하게 양육하지 않으면 비록 기독교 가정에서 자랄지라도 스올에서 구원할 수 없다.

사무엘상에 언급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을 보자. 두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서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건하지 않았다. 제사장이었지만 행실이 나쁘고 제사를 모독하며, 간음을 일삼았다. 비록 제사장의 자녀였지만 이런 불경건이 나온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은 엘리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라”(삿 3:13)고 가르친다. 성경말씀으로 엄격하게 가르치지 않은 결과였다. 그 결과 두 아들은 스올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와 흡사한 예가 또 있다. 바로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다. 아도니야는 솔로몬이 왕이 된 이후에 솔로몬의 왕위를 빼앗으려 하다가 결국 비참하게 죽는다. 스올로 떨어진 것이다. 놀랍게도 성경은 그의 문제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왕상 1:6)고 한다. 엄격하게 교육하지 않은 데 있다는 말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녀를 주신 이유를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말 2:15)고 한다. 단순히 세상에서 형통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을 경외하고(신 6:13), 선한 일에 열심히 하는 백성(딛 2:14) 되도록 하나님께서 위탁하신 영혼이다.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다. 기독교 가정에서 나온 사람들 속에서 영적 거인들도 많이 나왔지만, 마르크스 같이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대적하는 인물들이 나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심판이다. 물론 자녀를 철저하게 양육을 하더라도 탈선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가정에서 경건하게 양육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 없다. 성경에서 볼 때, 자녀 교육은 학교나 교회의 위탁이 아니다. 자녀는 부모의 기도와 피와 땀을 먹으며 자란다.

※미주

1) 리처드 웜브란트,「마르크스와 사탄」,(순교자의소리,2019),p.36.
2) Ibid.,p.22.
3) Ibid.,p.38.
4) 박광서,「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라」,(출판사누가,2013),p.101.
5) 나상민 편역,「칼 맑스」,(도서출판 새날,1990),p.15.
6) 리처드 웜브란트,op.cit.,p.51.
7) 박광서,op.cit.,p.100.
8) 리처드 웜브란트,op.cit.,p.22.
9) Ibid.,p.51.
10) Ibid.

김민호 목사(회복의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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