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대립의 양극화를 넘어 서는 길" (롬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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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다문화센터 대표, 대림중국교포교회 이선규 목사

오늘날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 중 하나가 양극화 현상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산상 설교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라고 하셨다.

여기서 청결한 마음이란 두 마음이 아닌 단순한 마음을 가리킨다.

조국과 국민을 위해 보편타당한 진리를 위한 것만을 바라보는 단순한 마음을 가리킨다.

이 세상에는 어느 한극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좌가 있으면 우가 있으며 배운 사람이 있으면 못 배운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강자가 있으면 약자가 있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양극화가 해소되거나 좁혀지기 보다는 오히려 심화 되어가는 위급한 현실에 놓여 있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양극화 현상을 정리해 보자.

첫째는 이념의 양극화이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로 이념의 양극화로 인하여 이번에 불거진 공 수처 문제 등으로 심화되는 현상이다.

좌와 우를 아우를 수 있는 통합의 리더쉽이 요구되어진다.

또 하나는 경제 적인 양극화이다.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고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업률이 늘어나는 가운데 빈부 격차가 사회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 에서는 가진 사람 20%를 대상으로 해서 세금을 때리고 그들이 가진 것을 털어내면 불 평 등을 해소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주장하지만 얼마나 양극화 현상이 해소 될지는 의문이다,

지식의 양극화도 있다. 지식과 정보를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지배하고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지식의 양극화이다.

제러미 리프칸이 쓴 유명한 책 “노동의 종말”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다가 올 미래의 시대는 지식과 정보를 얼마만큼 능 수 능란하게 사용 할 줄 아는 사람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하나의 일감을 얻기 위하여 서로 경쟁하게 된다고 하였다. 지식과 정보의 사회에서는 아무래도 지식 있는 자에게 의존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식을 얻기 위해 치열한 투쟁이 일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육의 양극화도 있다. 좋은 학교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은 사람은 결국 좋은 기회를 얻어 여러모로 좋은 조건을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좋은 교육을 받으려면 한마디로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얼마 전 발표한 통계를 분석해보면 수험생들의 점수와 부모들의 재력이 어느 정도 비래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유전 유학’ ‘무전 무학’ 이다.

돈이 있으면 잘 배울 수 있고 없으면 배우는 것조차 요원 하다는 말이다.

이런 교육의 양극화 현실은 상대에게 대한 계층 간 불균형의 불씨가 되고 있다.

그런데 사회만 양극화현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현상이 교회 분쟁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교회의 힘을 약화 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양극을 치닫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그 해답을 본문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우리는 이 문제를 부정적인 시각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시각에서도 볼 수 있어야 한다. 부정적인 측면은 서로 한쪽을 제거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고.

긍정적인 면은 이 양극이 서로 힘을 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다. 양극화 현상이 가 져 오는 장점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다. “초인종을 한번 딩동댕 울리는 것 하고 두 번 울리는 것 하고 어느 쪽이 사람이 반응 하는가 한번 보다는 두 번 세 번 울리면 뭔가 급한 일이구나 빨리 나가 봐야지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서로 다른 초인종을 울릴 것이 아니라 둘이 동시에 딩동 댕을 울려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 세상이 조화를 이루면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가려면 반드시 양극의 공존이 필요 하다 는 것이다.

우리는 한 쪽에만 서지 않도록 해야 한다. 좌냐 우냐. 진보냐 보수냐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이 보시기에 어느 쪽이 바르냐? 어느 쪽이 옳으냐? 놓고 선택 할 수 지혜가 필요하다.

그 비결을 본문 (1절)을 보자 강한 자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 하라는 것이다. 약자는 강자에 비해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도움이나 협력이 없이는 결코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 설 수가 없을 것이다. 강자의 힘과 지혜와 능력과 믿음을 빌려 주는 것이다.

나누어 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혼자 힘으로 일어 설 수 없으나 강한 부모의 힘에 의해서 벌떡 일어 설 수 있는 것처럼 약자라도 강자의 도움을 받으면 강자로 설 수 있는 것이다. 여기 담 당 한다는 말은 그의 짐을 나눈다는 말이다. 무거운 짐을 덜어 주기 위해 같이 져 준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힘을 주신 것일까? 왜 그런 위치에 있도록 해 주신 것일까? 왜 믿 도록 은혜를 주신 것일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약자를 위하여 그 힘과 지혜와 믿음을 사용 하라고 나누어 주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덕목이 무엇인가?

나눔 베픔, 돌봄 이다. 이를 위해 우리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나누어 주셨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영원히 약자로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다시 강한 자로 세우기 위해서 그렇게 해 주신 것이다.

바울 사도는 고후 8:9절에서 이렇게 증거하고 잇다.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 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

주님은 우리를 강자로 만들어 주시기 위하여 자기의 몸도 찢어 주시고 보혈을 흘려주셨다.

그가 돌아 가셨을 때 남아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나눔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도록 되어있다.

주님은 우리를 받으시려고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 모든 인간을 받으시기 위해서 강하 신분이 약한 자의 모습으로 오셨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주님께서 그 부분을 채워 주시려고 오신 것이다.

강자가 약자의 약점을 담당 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는 섬긴다는 말이다. 우리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철저히 섬기는 삶을 사셨다. 그분이 섬겨 주셨기에 우리가 높아졌고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분이 섬겨 주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영원히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는가? 남보다 돈이 좀 많다고 생각 하는 자가 있는가? 그것을 가지고 남을 얕잡아 보거나 무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강자가 약자를 섬기면 약자는 오히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과 사랑과 신뢰를 보내게 될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 되어 갈 것이다.

옛날 어느 임금이 말을 타고 가다가 길옆 과수원에서 나무를 심고 있는 허리가 굽은 노인을 보았다. 왕이 노인에게 이르되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과수원에서 일하고 계십니까? 하고 물 으니 예 네 살이올시다. 라고 대답 했다. 왕이 어이가 없어 웃으니 노인은 대답하기를 의미 없이 산 것이 100년이면 무엇합니까? 나는 의미 있게 산 것이 겨우 43년이요 라고 대답 했다. 왕이 지금 나무를 심어 언제 그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느냐고 물으니 노인은 대답하기를 “부 모가 심은 것은 내가 따먹었으니 내가심은 것은 내 자손이 따겠지요? 라고 대답 했다고 한다. 왕은 크게 감탄하여 후한 상을 주었다고 한다.

우리도 주님의 큰 사랑으로 거저 받았으니 이제 약한 자와 소외된 자를 도울 사명이 있는 것 이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말씀을 기억하자.

요한복음 19장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라는 말이 나오는데 담당 한다는 말은 결국 십자가를 진다는 말이다.

양극화를 해결 하려면 누군가가 희생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양극화를 말하지만 하나님과 인간 사이만큼의 거리는 측량 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멀고 아득하다.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겠는가?

뭣도 모르고 하나님 앞에 나가다가는 그 영광의 빛을 보고 고꾸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죄 성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이일을 위하여 예수님이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벌어졌던 양극이 해소 되었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친히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하나로 이어 주신 것이다.

그 하나 됨을 통하여 우리가 죄인에서 의인으로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이런 양극화를 해결해 주신 주님의 십자가를 우리가 본받아 우리가 다리 역할을 감당한다면 서로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장애인에게 식사를 대접하기 위하여 휠체어를 밀고 소문난 음식점에 갔다고 한다. 그런데 음식점 입구가 계단이어서 들어 갈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접대하는 사람이 장애인을 업고 식당에 들어갔다.

대접을 잘 받은 장애인은 이렇게 좋은 음식은 처음 먹어 본다면서 무척 고마워하면서 하는 말 그러나 이렇게 음식을 먹기 위해 몸을 남에게 업히면 마음이 무겁다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이동이 불편하여 교회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더구나 장애인에 대한 편견 때문에 교회에 와도 편안하지 못하다는 말도 들린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감당 하는 교회가 많아져야 한다.

주님은 막14:42절에서 일어나라 “함께 가자”라고 말씀 하신다. 연약한 자와 약점을 담당 하고 함께 가는 한국 교회가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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