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예수 재림·천국 신앙 놓쳐버린 것 같아"

  •   
'길선주 목사'를 주제로 김명혁 목사, 이상규 교수 강변교회에서 대담
왼쪽은 김명혁 강변교회 원로 목사, 오른쪽은 이상규 고신대 교수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강변교회에서 25일 오전 10시부터 김명혁(강변교회 원로 목사), 이상규(고신대 교수)는 ‘길선주 목사’를 주제로 대담을 가졌다.

길선주 목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로, 이상규 교수가 전했다. 그에 의하면, 1869년에 태어난 길선주 목사는 도교, 불교 등 여러 종교를 전전하다, 1897년 28살에 이르러서야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다. 이후 1907년 평양신학교를 1기로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1920년 까지 평양 장대현 교회를 시무하게 된다. 동시에 1907년부터 장대현 교회에서 죄를 회개하는 기도를 시작하며, 끊임없는 회개를 강조했다. 하여 그는 “길선주 목사의 회개운동으로 평양 대부흥 운동은 촉발됐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길선주 목사는 요한계시록 1만 번, 요한일서 500번, 에스더 540번 등 성경 자체를 암송할 정도로 반복해 읽어, 성경을 펴지 않고 설교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울러 1906년 가을부터 우리나라 문화에 맞춘 새벽기도 문화를 정착시킴으로, 정오기도, 철야기도 등 기도의 사람이라 불릴 정도로 길선주 목사는 기도에 힘썼다. 후에 1920년 김익두, 1930년 김영도 목사와 함께 한국교회 부흥을 이끈 위대한 부흥사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이상규 교수는 “1921년에만 500회 집회, 1905-1935년 까지 17,000번 설교를 했고, 총 80,000 km 선교 활동 했다”며 “지구의 두 번 돌 정도로 선교에 열정적이었던, 그는 일제 치하 조선의 독립을 소망했던 ‘독립 운동가’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가령, 그는 “태극기를 교회 강단에 숨겨두고 자유롭게 게재 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이윽고 1919년 3.1운동 민족 대표 33인 중 한명 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김명혁 강변교회 원로 목사도 길선주 목사에 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정말 반 기독교적인 삶을 살던 길선주 목사는 마음의 만족 없이 다른 종교, 철학 등에 매달리며 진리를 추구했다”며 “그래서 그는 한국의 어거스틴이라 불린다”고 전했다. 이윽고 “길선주는 1890년 한 서양인 선교사가 평양에 복음을 전하는데, 당시 ‘서양교회에 빠지면 미친다는 얘기’가 돌았음에도 기꺼이 서양인 선교사(마포삼열)에게 찾아갔다”며 김명혁 목사는 진리에 대한 길선주의 갈급함을 밝혔다.

이어 그는 “길선주는 밤이 맟도록 기도를 했다”며 “‘길선주야, 길선주야’라는 하나님의 외침을 들으며 길선주는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고 전했다. 또 그는 “길선주는 이후 자신이 죄인임을 처절하게 깨달으며, 평생 기도에 헌신하게 된다”며 “말씀, 회개, 기도, 전도만 했으며, 총 380만 명에게 전도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아가 그는 “길선주는 회개에 힘을 쏟으며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을 이끌었다”며 “요한 계시록을 1만 번 읽고, 돈에 관심이 없어 오직 6원만 받으며 회개, 기도, 전도, 천국만 사람들에게 전했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그는 “어떤 신학자는 ‘길선주가 천국, 천국 하는 신앙은 잘못됐다’고 하는데, 나는 이를 잘못된 개념이라 생각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지금 한국 교회는 길선주 신앙을 본받아, 옅어진 예수 재림 신앙, 천국 신앙을 다시금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간략한 길선주 목사에 대한 소개가 끝나고, 대담시간이 이어졌다. 사회자로 김철용 목사는 “관선교라는 관우를 숭배하는 종교에 심취되고, 심지어 차력에 심취했던 그런 길선주 목사의 종교적 다양함이 그의 부흥 운동과 목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이상규 교수는 “도교, 불교에 심취했어도 여전히 진리에 목말랐던 그는 무엇이 참된 신앙과 만족인지 깨달았던 것 같다”며 “또한 1906년 새벽 기도를 시작했는데, 이는 조선 문화에 토착화 된 새벽기도”라고 강조했다. 어쩌면 그는 “다양한 종교적 경험은 그에게 한국의 정서를 무엇보다 깊이 깨닫게 해줬고, 나아가 한국적 정서와 상황에 맞는 기독교의 토착화에 기여했다”며 “1906년 처음 시작한 한국형 새벽기도가 그 일례”라고 밝혔다.

덧붙여, 그는 “기독교 정신은 서양에서 왔지만, 신앙의 그릇은 우리 것으로 담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우리나라 초창기 예배당은 기억㈀자 형태였는데, 이는 남녀 칠세 부동석 문화에 깊이 영향 받은 결과”라며 “길선주 목사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남녀 칠세 부동석을 폐지했다”고 역설했다. 하여, 그는 “한국의 정서와 상황에 맞는 토착적 기독교를 정착시킨 첫 시도자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했다.

곧바로 “요한 일서 500독, 요한 계시록 1만 독 등 어떻게 보면 길선주 목사가 강조한 성령의 강력한 역사는 말씀 중심에서 나타난 것 아닌지”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이에 김명혁 강변교회 원로 목사는 “회개, 기도, 말씀 이 순서 인데, 길선주 목사는 무조건 회개를 처음부터 강조했다”며 “회개하면서, 기도가 되고 이후 말씀이 뒷받침 한다”고 전했다. 또 그는 길선주 목사의 일화를 빌려, “‘지존하신 하나님이시여, 예수교에 정말 진리가 있을까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며 길선주는 회개로 부르짖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는 “길선주 목사는 ‘길선주야, 길선주야’라는 하나님 음성을 들으며, 온몸이 뜨거워지는 성령 체험을 했다”고 덧붙이며, “회개는 기도와 말씀의 기초”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김명혁 목사에 의하면, “즉각 무릎 꿇고 회개한” 길선주와 달리, 제자들은 음악과 분위기로 성령 체험을 인위적으로 조장하려 했다고 한다.

이에 김명혁 목사는 “길선주는 제자들에게 ‘시끄러, 시끄러’라고 외치며 호되게 혼 내켰다”며 “오직 죄를 고백하는 데서부터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할 수 있으며, 길선주 목사는 진실된 회개를 강조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이러한 회개 운동은 1907년 평양 대부흥으로 이어졌다”고 그는 역설했다.

곧바로 이상규 교수는 평양 대부흥 사건에 덧붙여, “기도가 매우 중요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시 말해, 그는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시면 농부가 씨를 뿌려도 추수할 수 없지만, 농부가 씨를 뿌리지 않아도 추수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결국 기도로 준비하는 우리 노력에 더해, 하나님은 부흥을 일으키신다”고 밝혔다. 때문에, 그는 “기도로 도우심을 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사회자는 “현재 한국 교회는 재림 신앙이 옅어졌는데, 길선주 목사가 중시한 재림, 천국 신앙이 현재 한국 교회에 시사 하는 바”를 물었다.

길선주 목사 ©자료사진

이에 김명혁 목사는 “현재 한국교회는 현실 문제의 개혁에만 매몰돼 있는 것 같다”며 “재림·천국 신앙이 옅어진 건 분명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예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말했다”며 “이처럼 회개가 첫째고, 그 다음 예수 재림, 천국 소망을 가지며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그는 “회개와 예수 재림 사이, 말씀·기도·전도가 있다”고 덧붙이며, “5 가지가 천국 신앙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때문에 그는 “길선주 목사처럼 우리 한국교회도 예수 재림·천국 소망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사회자는 “길선주 목사는 요한계시록을 연구하다보니까 가설로 1974년 예수가 재림하실 것이며, 2002년 천년 왕국이 올 것이라 했다”며 “이처럼 길선주 목사는 후 천년설을 주장한 것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에 이상규 교수는 “길선주 목사는 재림, 천국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컸다”며 “ 어쩌면 민족의 독립 운동보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컸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일제 치하 조선에 소망을 주고 싶었는데, 이 부분에서 길선주 목사는 바로 천국 소망을 강조한 셈”이라 밝혔다. 다만 그는 “예수 재림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이용해 다른 이득을 누린다면, 이는 분명 이단이란 소리를 듣겠지”만 “길선주 목사는 순수한 재림소망으로 탄압받던 조선 민중에 소망을 주고 싶어 했다”고 역설했다.

또 질문이 던져졌다. 사회자는 “올해가 3.1 운동 100주년인데, 길선주 목사는 33인 중 한사람으로 2009년 정부로부터 건국 훈장을 수여받았다”며 “정부 추서가 늦춰진 이유로, 3.1운동 현장에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재림신앙을 강조한 길선주 신학이 진보 사관 신학자들에게는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억압된 일제 치하로부터 독립 의지를 무감각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비판”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김명혁 목사는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이어 그는 “민족대표 33인이 같이 모인 적은 거의 없다”며 “그 후에도 길선주 목사는 민족을 위해 많은 수고를 했고, 특히 영적,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 많은 수고를 했다”고 밝혔다. 때문에 그는 “이를 무시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상규 교수는 “보수 신앙 일수록 사회 참여에 무관심하다는 게 일반적 해석”이라며 “길선주 목사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길선주는 예수 재림, 천국 소망을 강조한 보수적 신앙색채를 가졌어도, 민족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길선주 목사는 33인 민족대표 회의에 동참하지 못했는데, 평소 시력 등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다”며 “또 3.1운동 전 1월, 미리 예정된 평양 장대현 교회 부흥 집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전했다. 더불어 그는 “1907-1920년 까지 많은 부흥 집회를 인도하면서, 건강을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했다”며 “그 와중 일본 경찰에게 체포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독립 운동을 위해서 서울까지 가려는 의지를 불태웠다”고 밝혔다. 때문에, 그는 “길선주 목사가 민족의 형세를 무시했다는 건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사회자는 “현재 한국 교회는 남·북 교류 등 현실 문제 해결에 매몰된 측면이 강하다”며 “이 와중에 길선주 목사의 재림 신앙이 한국 교회에 던져주는 시사점”에 대해 물었다.

이에 김명혁 목사는 “요한계시록은 내내 천국을 지향하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어거스틴의 말을 빌려, “행복과 기쁨이 이 세상에 완전히 이뤄진다 생각한다면, 이는 정신 나간 얘기”라고 지적했다. 하여, 그는 “현세는 나그네, 그림자 같고 모세와 다윗 등 많은 성경 인물들이 천국을 지향하며 살았다”며 “현세를 무시하는 신앙이 뭔가 이상하다고 비판하는 신학자들도 있겠지만, 현세는 어쨌거나 잠깐 있다 사라지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때문에 그는 “한국 교회는 현세 보다 천국을 지향하는 신앙으로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럼에도 그는 “길선주 목사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셨다”며 “그래서 암울한 조선 민족에게 천국 재림 신앙으로 소망을 밝힌 것”이라 밝혔다.

덧붙여 이상규 교수는 “보수적 색채를 지니면서, 현실 문제에 참여한 길선주 목사”라며 “우선 자기 신앙을 굳건히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그는 “현실 문제와 적절히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다”며 “다만 필요하다면 한국교회는 3.1운동 100주년을 기점으로 종교 간 연합으로 한국 사회 분열을 어느 정도 극복하려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했다.

#길선주 #김명혁 #이상규 #강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