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나비 고난주간 논평] 한국교회는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제사장적 기도와 행위로써 예수의 고난에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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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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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보수와 진보, 태극기와 촛불의 갈등의 골을 중재적 화해 행위로 채워야 한다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상임대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창립원장)

2017년 4월 두 번째 주는 사순설의 절정으로 고난주간이다. 고난주간은 인류와 세상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성금요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고난을 명상하고 참여하는 주간이다. 태초의 로고스로 하나님이시나(요 1:1) 인류와 세상의 죄를 사하기 위해 자기를 비우신 예수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복종하여(빌 2:4 이하) 인간의 죄와 죽음의 고난을 감당하셨다. 그가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고, 그가 비우시고 자신을 죽음에 내어주심으로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특별히 2017년은 한국사회에 큰 아픔과 새로운 변화가 공존하고 있는 때이다. 우리는 국정을 사유화한 통치자에 대한 탄핵과 파면, 구속수감과 3차례의 검찰조사를 보고 아파해야 했으며, 분노에 찬 적폐 청산의 소리, 3년 만에 지상에 진흙과 녹으로 뒤범벅 되어 드러낸 세월호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병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국가 개혁의 절실함을 통감하고 있다. 고난주간에 한국교회는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며 나라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 샬롬 나비는 고난주간의 의미를 개인 영성 차원에서 사회 영성 차원으로 확장시켜 신앙, 윤리, 경제, 정치, 국제관계, 남북관계에서의 복음적 실천사항을 천명하고자 한다.

1. 한국교회는 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고 따르는 "신앙" 안에서 국가 앞에 서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국가적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세상을 위하여 고난 받으신 예수의 십자가에 우리의 삶을 맞춰야만 한다. 세상은 어려운 상황 안에서 자신의 생존과 행복만을 추구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오히려 한국교회가 자신을 온전히 타인과 세상에 내어주는 사랑의 실천을 명령하고 있다. 십자가는 자신이 죽어 타인과 다른 생명체들을 살리는 참다운 기독교 신앙인의 삶을 살라고 우리들에게 명령하고 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본 받아 소외된 이웃에 대한 사랑의 "윤리"를 실천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소외된 이웃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픔과 고난에 함께 동참해야 한다. 한국사회는 타인과 다른 생명체들을 해치고 자신만 살겠다는 이기주의에 노출되어 인간조차 하나의 도구로 격하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한국교회는 대안적 실천을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이런 시대의 왜곡된 현상에 동조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 삶의 죄성과 윤리는 결단코 인간 스스로 이겨낼 수 없다. 오직 죄에 대해 분노하시면서도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의 대속만이 인간을 죄성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바로 이 사건의 유일한 해결이다.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만 이웃 사랑의 윤리는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 화해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 이웃의 고난을 함께 짊어져야 한다. 이웃의 고난에 동참하여 기독교인들은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베푼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이 시대에 소외되고 있는 어려운 이웃을 위한 섬김을 실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는 지금 시행하고 있는 여러 사회구제와 봉사활동을 더욱 확충하고, 이웃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놓아야 함을 선포함과 동시에 그것을 모범적으로 실천해 나아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는 개별적인 사회활동을 넘어 보다 강력한 시민복지정책 등 경제정책의 제안 및 도입을 국가에게 요구하고, 나아가 사회경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하게 제안해야 한다.

3. 한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억함으로써 '정치'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도록 힘써야 한다.

우리는 부패하여 신뢰를 잃어버린 국가의 모습에 많은 실망을 느끼면서 그 해법에 대한 의견차이로 말미암아 극단적인 분열의 상황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실망과 분열이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세상의 부정의한 현실을 비판함으로 받아야 했던 고난이다. 예수를 본받아 기독교인들은 불의에 맞서는데서 오는 고난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면서, 동시에 정치적 권력만을 탐했던 사실을 반성해야 한다. 권력의 탐닉은 보수와 진보 모두의 욕심이었으며, 우리는 탐심의 권력자들이 결코 진정한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한국사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수와 진보 사이의 갈등, 태극기와 촛불,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갈등을 타계할 방안 역시 모색해야 한다. 다름은 결코 갈등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지체이듯이 한 국가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국민은 함께 정의로운 합의를 이뤄나가는 공동체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수난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그리고 우리 안에 화평을 가져오시기 위한 희생임을 기억하고, 화평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름은 갈등만을 가져오는 부정적 요소가 아니라, 상호이해를 통해서 화평에 이를 수 있다.

4. 한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면서 어려움에 처한 한국의 "국제관계"회복에 함께 노력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국제관계 안에서 한국 국민은 한편으로는 중국의 사도 경제보복과 일본의 우경화와 더불어 미국의 신고립주의 정책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어려움 안에서 정부가 지혜로운 판단을 통해 파고가 높은 국제관계 속에서 소강국의 독자성을 개척해야 한다. 감정적 대응으로부터 나타나는 정책이나 단순한 경제적 이익만을 위한 관계가 아니라, 현실적 전쟁위협, 인권의 말살, 경제적 위기 등을 함께 타계할 수 있는 정의로운 국제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상호간 신뢰와 배려가 전제되어야 가능할 수 있다. 이러한 신뢰와 배려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른 국가들과의 지속적인 소통과 타협이 필요하다. 감정적 대응이나 이기주의적 이해타산도 아닌 국제사회의 정의실현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함께 가는 동반자적 관계모색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5. 한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기억하면서 특별히 북한에 대한 선교와 원조에 다시금 힘써야 한다.

북한은 여전히 핵전쟁 위협과 더불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선군정치와 정책만을 실행하고 있다. 이로 인한 국제사회의 봉쇄로 북한은 당장 식량과 연료의 결핍을 겪고 있으며, 이것은 결국 북한의 주민들의 굶주림과 생활의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판받아야 할 대상은 북한의 위정자들이며, 결코 북한의 어려운 주민들이 아니다. 따라서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한국교회는 북한에 대한 조건 없는 인도적 원조를 다시금 제안해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처럼, 한국교회 역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내어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해야 한다.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내어주는 삶은 모든 원한과 갈등을 넘어서 본래적인 하나님의 창조를 회복하는 사랑과 화평의 삶임을 우리는 고백한다. 고난주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는 촛불과 태극기,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있는 우리 사회를 통합하는 제사장적 마음을 갖고 기도하고 행동하며, 오늘날 이러한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스스로 권력 지향적 행위와 교권 욕에 마음을 빼앗겼던 행동을 뉘우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와야 한다. 고난과 대속의 험난한 길은 단순히 부정적인 어떤 것만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온 인류에 대한 구속을 완성하시고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셨기 때문이다.

2017년 4월 09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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