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신학칼럼] 이스라엘(야곱)과 그 후손을 향한 하나님 계시의 신비(창세기 32, 48-5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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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특한 민족 유대-이스라엘(창 32:28절)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유대인은 누구인가?

‘히브리’(유대)라는 이름의 원조는 어원적으로는 셈의 증손자 ‘에벨’(창 10:21-24)로부터 기인한다. 이 말의 원뜻은 “(유브라데강을) 건너온 자들”이다. 그렇다면 히브리민족은 그 폭이 대단히 넓어진다. 하지만 그 폭을 좁히면 히브리인으로 불렸던 첫 번째 주요 인물은 아브람(창 11: 26-17:5; 창 39:14)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하나님과의 계약에 따라 “열국의 아버지”라는 의미의 아브라함으로 개명하였다(창 17:5). 그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많았다. 아내 사라의 몸종이었던 애굽 출신의 첩 하갈에게서 낳은 이스마엘은 열두 아들을 낳았다(창 25:12-15). 그두라에게서 낳은 자녀는 여섯이었다(창 25: 1-6; 대상 1:32-33). 이들 여섯 아들은 최소 일곱 명의 자녀를 두었다. 하지만 오늘날 히브리인들의 범위는 더욱 좁혀지는 데 바로 사라가 낳은 아들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 중 주로 야곱의 후손들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어디서 왔는가?

오늘날 국가 이스라엘의 명칭은 바로 이 야곱의 다른 이름에게서 왔다. 입술이 부정한 죄악 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 인간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사 6:5). 그런데 이 야곱에게 놀랍고도 신비한 한 사건이 일어났다. 야곱은 요단강 동편 지류인 얍복강 나루 근처에서 날이 새도록 하나님과 겨룬 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하나님에게서 친히 받았던 것이다(창 32:28). 신학자 오토(Otto)가 “누미노제”(Numinose)라고 말한 바로 그런 인간이 보기에 비합리적 성스런 경험이었다. 성경도 내재(內在)의 죄악 된 세상 속 평범한 한 인간이었던 야곱이 초월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홀연히 만나 밤새도록 벌인 이 놀라운 신비 체험을 그저 야곱이 한 사람과 벌인 (특별한) “씨름”이었다고 표현할 뿐이다(창 32: 24). 그 신비한 씨름에서 야곱은 승리한 대신 엉덩이뼈가 위골(違骨)되었다(창 32: 25). 야곱은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그 분(사람)을 하나님이라고 간증하였다(창 32:30). 그는 그렇게 자신이 하나님을 대면하고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인물(창 32:30)이 되었음을 기억하고자 그 지역의 명칭을 ‘브니엘’(Peniel,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이라 불렀다. 이렇게 아브라함-이삭-야곱의 후손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독특하고 직접적인 언약의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생각이 다른 별난 민족, 유대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남에게 도움 받는 것을 대단히 부끄럽게 여긴다.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부잣집 아이들에게도 가난한 집 아이들과 동등하게 공짜로 학교 급식을 먹게 만들어버렸다. 참 미련하기 짝이 없는 방식이다. 겨우 가난한 집 아이들이 받을 자존심의 상처 때문에? 필자의 어릴 적에는 미국에서 원조한 밀가루와 옥수수 가루를 가지고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만 옥수수죽과 빵을 급식하였다. 주변에 학교에서 옥수수 죽 먹었다고 자존심에 큰 상처 받았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을 먹으며 무슨 문제가 되거나 상처를 받거나 자존심 상한 아이들은 전혀 없었다. 무상 급식 추진한 작자들은 분명 그 옥수수 죽을 먹어보지도 않은 부자였던지 입이 고급이라 먹지 않은 자들이었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지금 생각해도 그 옥수수죽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아마 대부분 그 죽들을 잘 먹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아이들 입이 고급이 되어버렸다.

무상 급식하는 그 돈이면 8만 명의 새로운 선생님 채용이 가능하다던데 선생님 되고 싶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안타까운 사범계 학생들과 그 부모님들 마음은 어떨까? 참 미련한 교육 기관들이다. 필자라면 괜찮은 집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급식비를 받고 어려운 집 아이들에게만 무상 급식하여 그 재정으로 취업 못해 눈물짓는 예비 선생님들 5만 명을 채용하겠다. 그런 사람들을 왜 선거로 뽑아주는 지 우리 국민들 수준도 참 한심하다.

필자가 이 말을 하는 이유가 있다. 여기 우리 민족과는 정반대로 구제 받는 것 자체를 아주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별난 민족이 있다. 바로 기독교인들보다 더 성경적 율법에 밝은 유대인이야기다. 유대인들은 구제금을 내는 사람보다 구제금을 걷는 사람을 더 귀하게 여긴다. 또한 구제금을 걷는 사람보다 구제 받는 사람들이 더 떳떳하다. 왜냐구? 구제를 해야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는데 구제 받을 사람이 없으면 구제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구제 받는 나 때문에 하나님께 복 받는 줄 알아라!' 바로 이런 의미다. 구제하여 하나님께 복 받고 싶은 자들이 많으니 당연히 유대인들의 구제 기금은 언제나 넘쳐난다(레 19: 10; 신 14: 28; 마 6:2-4; 고후 9:7; 행 24:17; 행 10:12). 유대인들이 구호 기금이 많으니 당연히 암 연구, 기아 구조 운동, 환경 운동, 약자 보호(여성, 소비자, 고아) 등에 강하고 구제 기금이 충분하여 공부하고 싶으면 마음껏 별다른 걱정 없이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으니 당연히 탁월한 인물들이 배출되는 것이다. 필자 장녀의 유대인 친구 안나가 있다. 안나는 서류상으로만 유대인 일뿐 유대교도 이스라엘도 신앙도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고, 자신이 몇% 유대 피가 섞인 유대인인지도 모르면서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독일의 유대인 배려정책 덕으로) 러시아에서 독일로 이주한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후손일 뿐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유난히 관심이 많은 필자 딸의 안내로 유대인들을 위한 무료 유대청년 이스라엘 관광 연수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소개 받고 공짜 이스라엘 여행을 신나게 즐겼다. 독특한 이스라엘의 민족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요즘 온 세상 사람들이 컴퓨터에서 늘 사용하는 USB도 바로 이스라엘 사람 작품인 것을 아는가? 이스라엘 장교 출신으로 USB 메모리를 창안하여 ‘모두’(Modu)를 설립한 도브 모란(Dov Moran)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유에스비 특허와 주식을 팔아 자기 벤처회사 모든 직원들을 갑부로 만들어 주었다. 함께 고생한 직원들을 (일종의) 구제한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 인구는 많지 않다. 하지만 대략 노벨상 수상자들의 3분지 1이 유대인이다. 노벨 평화상을 제외해도 200명에 육박한다(생리 의학 48명, 물리학 44명, 화학상 28명, 경제학상 20명, 문학상 12명- 2007년 현재).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대인보다 인구가 훨씬 많으면서도 여태껏 노벨 과학상, 문학상 한명 배출하지 못한 우리 민족을 부끄럽게 한다. '우리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머리 좋은 민족'이라고 늘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있던데 참 한심하다. 유대인들을 보면 정말 우리나라 교육이 부끄럽다. 강남 교육으로 대별되는 주입식 점수병, 일류병, 줄 세우기 교육, 꼼수 입학 등이 치유되지 않고서는 비정상의 정상화는 요원하다. 한국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늘 학교서 몇점 맞았고 무얼 배웠느냐고 묻는다. 유대인 엄마들은 선생님께 무엇을 질문(ask why?)했냐고 묻는다. 세상에 바보 같은 질문이란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남보다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잘 활용하는 이 세상 단 하나뿐인 남과 다른 특별한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 참으로 독특한 민족이 아닐 수 없다.

야곱 후손들을 향한 야곱의 계시

필자가 소개한 이스라엘 민족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가 물론 야곱(이스라엘) 민족의 전부는 아니다. 진정한 계시는 역사와 문화(일반 계시)를 넘어 성경(특별 계시) 속에서 그 영원한 참 빛을 발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시 20:1)이요 “야곱의 왕”(사 41:21)이라고 불려졌다. 성경은 야곱(이스라엘)의 입을 통해 이스라엘 후손들을 향한 역사 속 계시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야곱 계시를 곧 하나님 계시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일까? 그 계시는 어떤 성취를 이루었나? 모두 성취는 제대로 이루어진 것일까? 믿음의 역사 속에서 그 야곱은 어떤 존재일까? 창세기 후반부(창 48-50장)를 중심으로 야곱 계시에 담긴 신앙적 진리를 추적해 보고자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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