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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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회 기독교학술원 월례기도회 및 발표회 경건회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 설교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 ⓒ미주기독일보

사회에서는 어떤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잘할 수 있는 지 분석하여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일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면 어떤 일을 잘 할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통해서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럴 능력이 전혀 안된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통해 일이 이루어질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우리를 통해 이루실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되려면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이 두 가지 질문을 통해 분별해야 한다.

첫째는 이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인가? 아니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인가?를 분별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내가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다.

둘째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냐? 를 분별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아닌가만을 따지게 되면 나의 능력에 하나님의 일을 제한하는 잘못을 행하게 된다.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성전재건은 어느새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할 수 없는 일일 뿐 아니라 하기 싫은 일까지 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능력만으로 해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했을 때 중단했고 그 이후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조차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하나님께서는 다섯번째 환상을 통해서 그들의 지친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격려하신다. 특별히 당시 정치지도자인 총독 스룹바벨을 격려하신다.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성전재건의 명령을 주셨지만 그 일을 이루어야 하는 정치지도자는 스룹바벨이기 때문에 스룹바벨의 마음에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기 위해 이 환상에 스룹바벨의 이름을 등장시키신 것이다.

스가랴가 본 환상에는 순금등잔대가 등장한다. 등잔대 꼭대기에 일곱개의 대접이 달려있고, 대접마다 등잔불이 있으며 그 대접 아래로 일곱개의 대롱이 연결돼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 등잔대 좌우편에 두 그루의 올리브나무가 있었다.

스가랴가 본 등대와 옛 성전안에 있던 등대 사이에는 세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첫째, 옛 성전의 등대에는 기름 대접이 따로 있었는데 환상에 나오는 등대는 등대 꼭대기에 기름대접이 있어서 직접 기름을 공급 받을 수 있다.

둘째, 환상속의 등대는 대접이 꼭대기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대접과 등대를 연결하는 관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원어성경에는 관이 '일곱씩 일곱'이 있다고 했으니 49개의 관이 있는 것이다.

세째, 환상속의 등대 좌우편에 두 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있었다. 옛 등대는 제사장들이 매일 아침마다 기름을 가져다 보충하였지만 새로운 등대는 제사장이 필요없었다. 좌우편에 있는 두 그루의 올리브 나무로부터 직접 기름이 공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가랴가 천사에게 이것들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자 천사가 이 순금등잔대의 모습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해준다.

스가랴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시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왜 성전재건은 중단되었는가? 스룹바벨이 자신의 힘과 자신의 능력으로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성전재건은 가능하게 될 것인가?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스룹바벨은 바벨론에서 자신에게 부여해준 정치적인 힘으로 일하기 시작했지만 더 큰 정치적인 세력이 방해했을 때 자신의 정치력은 곧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바벨론에서 지원해준 물자를 가지고 일을 시작했지만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더욱 큰 헌신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곧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환상을 통해 스룹바벨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는가?

첫째는 현재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은 기름이 제공되지 않아 빛을 발하지 못하는 등대와 같다는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쓰임받지 못해 녹이 슬어버린 등대와 같다는 것이다. 이 등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온 세상에 빛을 발하도록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에게 성전을 재건하라는 것은 성전을 재건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회복하고 세상에 빛을 비추는 백성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장차 하나님의 백성들은 기름이 계속 공급되어 밝은 빛을 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등대가 빛을 계속 비추려면 기름이 계속 공급되어야 한다. 기름은 성령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성령님의 역할들을 가장 잘 상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이 낙심하여 자포자기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경험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에 이들에게 다시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공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세째, 이러한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기름부음받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공급하신다는 것이다. 스가랴가 본 환상에 나오는 등대에는 기름이 좌우편에 있는 두 그루의 올리브 나무로부터 계속적으로 공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두 나무는 당시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영의 기름부음이 하나님께서 세운 두 명의 지도자들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계속해서 공급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변화시켜서 세상을 변화시키신다.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사람이다. 성령님의 기름부음을 받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신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재능에 따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품(마음의 태도)에 따라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재능을 의지하는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재능이 아니라 순종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중에서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4)"는 말씀이 있다. 부유함에 만족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쉽게 멀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말씀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타고난 재능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재능이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이는 것보다 쉽다. 왜냐하면 재능이 많은 사람은 성령의 능력보다 자신의 능력을 쉽게 의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고난 재능과 성령의 은사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성령님의 은사는 타고난 재능을 통해서 나타날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의 강한 영역이 아니라 약한 영역에서 섬기도록 인도하실 수 있다. 재능이 없어 보여도 순종하면 놀라운 성령님의 은사가 나타난다. 세상은 자신의 능력을 알고 일하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자기를 부인하고 일하라고 말씀한다.

성령님의 능력이 역사하시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자기 자신이다.

다. 자신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수가 없다.

무디 선생님은 말하기를 "우리가 십자가에서 스스로에 대하여 죽는다면 성령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을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순금등대 옆에 있는 두 그루의 올리브 나무는 문자적으로는 당시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을 의미하지만 예언적으로는 장차 대제사장직과 왕직을 성취하시는 메시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공급하심이 없이는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나무에서 떨어져 죽은 가지와 같다. 성령님은 그리스도를 높이는 이와 함께 하시고 그리스도께 순종하여 거하는 자에게 충만하게 능력을 부어주신다.

따라서 내가 세상에 내어줄 것이 무엇인가를 바라보지 않고 성령님의 능력이 나를 통해 역사하시도록 내어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하고자 하는 일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들에 연연해하지 않고 이미 성령님께서 주신 은사들을 순종함으로 헌신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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