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준경·토마스 순교 재조명… 순교 기억의 공간적 전승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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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기자
jykim@cdaily.co.kr
제2회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학술세미나 개최

제2회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학술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제2회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학술세미나가 10월 31일 서울 마포구 홀트아동복지회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논문공모전 수상자 3명의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최우수상을 받은 김지은 씨(성결대 구약학 박사 수료)는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와 한국전쟁기 농어촌 교회 형성 연구: 여성 전도사의 사역과 공동체 회복의 교회사적 재해석’을 발표했다. 우수상 수상자인 윤은석 교수(호서대 기독교 교양 담당)는 ‘로버트 토마스의 죽음에 대한 다각적 재조명: 역사비평, 순교담론, 순교논쟁’을, 같은 우수상을 받은 문예찬 씨(연세대 정치학 박사 수료)는 ‘기념된 순교의 공간적 유산: 한국 개신교 순교 명부의 지리적 분포와 역사적 지속성’을 각각 발표했다.

김지은 씨는 문준경 전도사의 삶과 순교를 개인의 신앙적 결단과 희생이라는 영웅적 서사에서 벗어나 1930~1950년대 농어촌 도서 지역의 사회사적 맥락에서 재조명했다. 김 씨는 “문준경이라는 인물을 ‘하늘에서 떨어진 성자’가 아니라 시대의 한계와 치열하게 교섭하며 목회적 주체성을 구축해 간 역사적 행위자로 복원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어 “제도적으로 배제됐던 여성 전도사가 가부장적 질서의 문법을 거쳐 오히려 실질적인 목회 권위를 확보해 나간 역설적 경로를 밝힘으로써 한국 교회사에서 저평가되어 온 여성 지도력의 역사적 정당성을 복원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문 전도사의 순교를 이념 갈등과 지역사, 여성, 신학이 중첩된 복합적 사건으로 분석하며 “순교 담론을 개인적 영웅 서사에서 공동체적 유산의 차원으로 확장했다”고 했다.

윤은석 교수는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의 죽음을 둘러싼 역사적 기록과 순교의 개념, 선교 방식에 대한 논쟁을 검토했다. 오문환의 기록과 『일성록』 등을 비교해 토마스의 평양 방문과 성경 배포 행적을 재검토하고, 기록에 나타난 서술의 차이가 외교적 분쟁이나 종교적 박해 동기를 배제하려는 의도와 관련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윤 교수는 순교를 신앙을 고수하다 죽는 ‘협의의 순교’와 선교·전도 등 기독교 활동 현장에서 맞이한 죽음을 후대에 순교로 해석하는 ‘광의의 순교’로 구분했다. 그는 “기독교 활동의 현장에서 죽임을 당한 그의 죽음은 학계와 목회 현장에서 여러 사람 및 집단에서 순교로 이해되고 있다”며 토마스의 죽음이 광의의 순교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조선 정부가 천주교 박해를 지적한 토마스의 발언과 개신교 전파 의지를 경계했을 가능성을 들어 협의의 순교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고 봤다.

토마스의 선교를 공격적 선교나 제국주의 선교로 규정하는 학계의 비판에 대해서는 제너럴셔먼호가 민간 상선이었으며 당시 미국이 조선에 대한 별도의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 등을 들어 신중한 평가를 요구했다. 다만 자신의 연구가 확정적인 역사적 사실을 밝히기보다 사료에 근거한 합리적 추정을 제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논문공모전 수상자들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문예찬 씨는 한국 개신교 순교 명부의 지리적 분포를 재구성하고, 지역별 순교 기념규모와 현대 개신교 인구 비율의 관계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순교 기록은 평안·황해를 중심으로 한 서북권과 전라를 중심으로 한 서남권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였다. 6·25전쟁기 순교는 전체 명부의 약 70%를 차지했으며, 일제강점기 순교 26명 가운데 15명은 신사참배 강요기에 집중됐다.

문 씨는 “순교의 역사적 유산은 사건이 발생한 장소에만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실제 남한 17개 시·도를 비교한 결과 순교 기념규모가 큰 지역일수록 2015년 개신교 인구 비율이 높은 경향이 나타났다. 인천·대전·광주·세종 등 현지 순교 기록이 거의 없는 일부 도시에서도 비교적 높은 개신교 비율이 확인됐다.

문 씨는 “서북 출신 월남 기독교인들이 남한의 도시에서 교회와 교육·구제 조직을 재구성한 과정은 이북의 교회조직과 박해의 기억이 인구이동을 통해 새로운 정착지로 이전될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순교를 개인의 죽음뿐 아니라 명부와 기념시설, 추모의례 등을 통해 공동체의 기억으로 보존하고 전승하는 역사적 과정으로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