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들려주는 성경(신약)』 개정판을 집필하면서 히브리서 5장의 한 구절을 마주했을 때, 문득 마음이 무거워졌다.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히 5:12)
약 2,000년 전 히브리서 기자가 믿는 이들에게 전한 이 말씀이 오늘날의 교회뿐 아니라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해온 나 자신을 향한 말씀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교회에 다닌 지 10년, 30년, 혹은 50년이 되었다고 말한다. 수많은 예배에 참석하고 설교를 들으며 신앙의 세월을 쌓아왔다. 그러나 그 세월만큼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얼마나 바르게 이해하고 있으며, 배운 말씀을 삶 속에서 얼마나 분별하고 실천하고 있는가? 혹시 목회자의 설교를 듣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스스로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며 깨닫는 일에는 소홀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다 보니 그 물음은 어느새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평생 의학을 배우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아왔지만, 정년퇴임 후 성경을 다시 깊이 살피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사람의 몸과 생명에 관해 배워야 할 것이 끝이 없듯, 하나님을 아는 일 역시 평생 배우고 익혀야 할 길이라는 사실이다.
나 역시 얼마나 많은 말씀을 들었으며, 또 얼마나 많은 말씀을 흘려보냈는가? 말씀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말씀 앞에서 내 생각과 삶을 바꾸는 데는 얼마나 더디었는가?
우리는 2,000년의 기독교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긴 역사가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영적 성숙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믿었느냐보다, 오늘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알아가며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고 있느냐가 아닐까?
히브리서 5장은 장성한 자들이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한다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성숙한 신앙은 단순히 성경 지식을 많이 아는 데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삶을 살피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데 있을 것이다.
신명기 6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먼저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하셨다. 이 말씀 앞에서 다시 다짐한다.
나부터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겠다.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더욱 깊이 알아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죄 사함의 은혜와 새 생명의 복음을 더욱 분명히 깨달아야겠다.
그리고 그 생명의 말씀을 먼저 내 삶에 새기고, 자녀들과 주변의 젊은이들, 아직 어둠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한 이들에게 사랑과 겸손으로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이 반드시 강단에 서거나 성경 지식을 많이 설명하는 일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삶의 태도로, 때로는 진실한 대화로, 때로는 아픔을 함께 나누는 사랑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돌아보면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 믿음의 세월은 길어졌지만, 아직 배워야 할 것이 참으로 많다.
그래서 오늘도 성령님께 구한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말씀으로 변화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오래 믿었다는 자부심보다 날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기쁨을 주소서.
그리고 남은 삶이 자녀와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빛과 생명을 전하는 작은 통로가 되게 하소서.
믿음의 연륜이 저절로 영적 성숙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오늘도 말씀 앞에서 배우고, 깨닫고, 순종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오랜 세월 믿음의 길을 걸어온 우리가 다시 붙들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신앙의 자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