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자이자 평론가인 브랜든 쇼월터 기자의 기고글인 ‘복음주의를 썩게 하는 부패는 내부에 있다. 회개가 필요하다’(Evangelicalism’s rancid rot is inside. It demands repentance)을 10월 20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다양한 성향의 진실한 복음주의자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두 가지 열망일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동참하려는 열망이다.
주님은 언제나 일하고 계신다. 그러나 성경은 시대를 분별하고 그에 합당하게 행동하라고 가르친다. 필자가 보기에, 혼란스러운 정치적 쟁점을 제외하더라도 오늘날 미국 복음주의 교회는 매우 엄중하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교리적 오류와 복음의 왜곡, 도덕적 추문은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고린도교회와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서신,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여러 교회를 향한 책망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 미국 교회가 처한 현실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불편하더라도 정직하게 직면해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넓은 의미의 복음주의 진영에서 상당수의 유명 변증가와 목회자, 사역자들의 심각한 비위가 드러났다.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묻고 사역에서 물러나게 해야 할 사안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둘러싼 사역 단체와 이사회는 적지 않은 경우 문제를 축소하거나 지도자를 방어하고, 잘못을 덮으려 했다.
독립적인 탐사보도와 피해자의 목소리를 전한 블로거들, 소셜미디어를 통한 정보 확산은 이러한 대응에 제동을 걸었다. 오랫동안 억눌렸던 학대와 비위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과거처럼 문제를 조용히 묻어두기는 어려워졌다. 교회를 향한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는 현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외부를 탓하기 전에 내부를 돌아봐야 한다
필자는 성경적 정통성을 지키려는 복음주의자이자, 교회와 사역 단체의 비위를 취재해 온 언론인이다. 이러한 사건들이 잇따라 드러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혼란스럽고 참담했으며, 때로는 깊은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
미국에서 기독교 신앙의 영향력이 약화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그러나 많은 신자가 이 현실을 방어적으로 받아들이며 세속적 좌파나 기독교에 적대적인 주류 언론 등 외부 세력에 책임을 돌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정작 교회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외면하면서 말이다. 문제가 발생한 곳이 신학적 보수성과 성경적 정통성을 강조해 온 교단이나 사역 기관일수록 이러한 반응은 더욱 두드러지기도 한다.
물론 기독교 신앙의 핵심 가치와 충돌하고 신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외부의 영향도 존재한다. 그러나 크리스천포스트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필자는 교회 안에 존재하는 도덕적·영적 부패의 심각성을 더욱 절실하게 깨달았다. 외부의 위협을 지적하는 것만으로 내부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예수님의 이름이 성적 학대나 영적 조종, 권력 남용과 연결될 때 피해자에게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물기 어려운 상처가 남는다.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신앙의 토대마저 흔들릴 수 있다. 교회는 신뢰를 잃고, 이미 분열된 사회에 더 큰 불신을 남기게 된다.
바른 가르침을 말했던 이들의 위선
라비 재커라이어스, 로버트 모리스, 숀 볼츠, 스티브 로슨, 빌 하이벨스, 제리 팔웰 주니어, 마이크 비클을 떠올려 보자. 이들은 서로 다른 신학적 배경과 사역 영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후 각기 다른 성격과 수위의 비위, 성적 부정행위나 학대 의혹, 기만과 책임 회피 문제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은사주의와 개혁주의, 상호보완주의와 평등주의, 구도자 중심 교회와 전통적인 교회 등 어느 흐름에 속해 있든, 미국 복음주의나 오순절 계열의 신자라면 이들 가운데 적어도 한 사람의 사역을 접했을 가능성이 있다. 직접적인 추종자가 아니었더라도 설교와 책, 집회 등을 통해 영적인 친밀감을 느꼈을 수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들이 성경에 근거한 성윤리와 정직한 삶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는 점이다. 그들이 전한 가르침과 드러난 삶의 간극은 교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보수적인 기독교 지도자들이 비판해 온 진보적 신학이나 세속 문화가 이들의 잘못을 대신 책임질 수는 없다. 자신이 가르친 기준을 스스로 저버린 책임은 당사자에게 있다. 이를 묵인하거나 은폐한 조직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다른 곳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이름들은 더 넓은 문제의 일부에 불과하다.
젊은 세대의 신앙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고 해도, 교회 내부의 도덕적 타협과 심각한 비위를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이러한 현실을 지켜본 사람들이 환멸을 느끼고 교회를 떠나거나 신앙까지 포기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크리스천포스트 역시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취재하고 보도해 왔다.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지도자의 잘못을 지우지는 않는다
주님을 사랑하는 신자들이 이러한 사건 앞에서 느끼는 상실감은 크다. 존경하던 지도자의 실체를 마주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그들이 정말 복음을 이해했다면 왜 그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는가. 자신이 믿는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에게 요구했던 삶을 정작 자신은 살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받은 것인가.”
여기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부패가 드러난 지도자의 사역을 통해서도 누군가는 성경의 진리를 배우고, 예수님을 알게 되며, 삶의 변화를 경험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경험까지 모두 거짓이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전하는 사람의 잘못이 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무효로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 사역을 통해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지도자의 삶과 행동을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사역의 열매를 내세워 비위를 덮거나 책임을 면하게 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이러한 지도자들에게 실제적인 은사와 부르심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로마서 11장 29절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 후회하심이 없다고 말한다. 다만 이 말씀을 개인의 죄를 가볍게 여기거나 지도자의 자격을 보장하는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시기와 경쟁심 등 그릇된 동기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있었음에도, 그리스도가 전파된다는 사실을 기뻐했다(빌 1:15–18). 이 역시 잘못된 동기를 승인한 말씀이 아니다. 전하는 사람의 결함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은 함께 인정해야 한다.
필자 역시 지금은 더 이상 존경할 수 없게 된 목회자와 지도자의 설교를 통해 깊은 감동을 받고 삶의 변화를 경험한 적이 있다. 은혜를 받았다는 기억과 그들의 부패를 알게 된 현실을 함께 받아들이는 일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어느 한쪽을 지운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받은 은혜는 감사하되, 드러난 잘못은 분명하게 다뤄야 한다.
회개에는 구체적인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지금의 현실을 듣기 좋게 포장해서는 안 된다. 복음주의 교회 곳곳에 드러난 부패는 그 실체를 밝히고 바로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철저하고 구체적이며 공개적인 회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회개에는 실질적인 구조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잘못을 인정하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도자의 비위를 방치하거나 은폐했던 조직의 운영 방식과 책임 구조도 돌아봐야 한다. 개인의 실패로만 설명하며 공동체와 기관의 책임을 피한다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필자는 이러한 폭로와 책임 추궁의 과정을 하나님께서 교회를 정결하게 하시는 섭리 가운데서 바라본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주님은 누구보다 자신의 교회를 사랑하시며, 그 교회가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신다(엡 5:25–27).
이 과정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이들이 있다. 문제가 드러난 교회와 사역 단체 안에서 상처받은 피해자들과 신실하게 신앙을 지켜온 성도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일으키지 않은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 기관의 명예나 지도자의 복귀보다 이들의 목소리와 회복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교회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이 사건들이 교회의 마지막 이야기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회복은 잘못을 덮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실을 드러내고 책임을 묻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어떤 정치인이나 정당도 교회를 이러한 책임에서 면제해 줄 수 없다. 교회 역시 정치적 영향력이나 외부의 지지를 내부의 죄를 덮는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죄를 밝히고 정직하게 다시 세워야 한다
히브리서는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고 경고한다(히 12:14). 교회는 이 말씀을 외부를 향한 비판에만 적용하지 말고 자신에게 먼저 적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드러내시는 잘못을 감추거나, 책임을 져야 할 지도자를 지키기 위해 피해자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일을 멈춰야 한다. 회개와 개혁이 고통스럽고 수치스럽더라도 이를 피해서는 안 된다. 교회의 회복은 그 과정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죄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공개적으로 회개하며, 진실 위에 공동체를 다시 세워야 한다. 만물을 새롭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은 자신의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셨다(계 21:5). 그 소망을 믿는다면, 교회는 드러난 부패를 방어하는 대신 회개와 개혁으로 응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