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쉐인 아이들먼 목사의 기고글인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은가? 하나님과 흥정하기를 멈추라"(Want to know God’s will? Stop negotiating with Him)를 10월 20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아이들먼 목사는 캘리포니아주 랭커스터에 있는 로스앤젤레스 북쪽 웨스트사이드 크리스천 펠로우십의 창립자이자 수석 목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언젠가 한 남성이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특정 지역으로 보내시거나 직업을 바꾸라고만 하지 않으신다면, 그분의 뜻에 온전히 순종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며 이사하거나 직업을 바꾸고 새로운 관계를 맺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기꺼이 따르려는 마음이다. 부모라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쁜 마음으로 손을 잡고 따라오는 아이와 제자리에 버티며 움직이지 않으려는 아이를 이끄는 일은 다르다. 하나님께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길만 고집한다면,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보다 앞세우고 있는 셈이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중요한 것은 그분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태도다. 누구도 완벽하게 순종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부족하더라도 전심으로 따르려는 사람과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에서만 따르려는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찰스 스윈돌은 주님께서 새로운 방향으로 이끄실 때 다른 사람과 비교하느라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주님께 온전히 집중하라고 권면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도 이러한 집중과 신뢰다.
순종에서 다음 걸음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은 그분의 인도하심과 공급하심을 신뢰하는 자리로 우리를 이끈다. 다음과 같은 기도로 시작할 수 있다.
“주님, 어디로 이끄시든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다음 걸음을 보여주옵소서. 조급해하지 않고 주님을 기다리겠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갈 때 인도하시고, 길을 벗어나면 바로잡아 주옵소서. 이 여정에서 주님의 뜻을 배우며 제 성품이 빚어지는 과정도 소중히 여기게 하옵소서.”
이러한 기도는 원하는 답을 얻으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이게 한다. 초대교회부터 오늘날까지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며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가운데 삶의 방향을 분별해 왔다.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했고, 간절히 기도했으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그분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났다. 오늘날에도 말씀을 가까이하고 기도하며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삶은 그분의 뜻을 분별하는 중요한 바탕이 된다. 반대로 배우려는 마음과 겸손이 없다면 자신의 바람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오해하기 쉽다.
필요하다면 지난 불순종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용서와 새 힘을 구해야 한다. 이미 분명히 깨달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채 다음 지시만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우리가 찾는 다음 걸음은 새로운 표적이나 특별한 확신보다, 이미 알고 있는 말씀에 순종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여호수아 시대의 아이성 패배와 아브람이 사래의 여종 하갈을 통해 자녀를 얻으려 했던 일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돌아보게 한다. 조급하게 결과를 만들어내려 하기보다 먼저 하나님을 구해야 한다. 성령을 자신의 계획에 이용하려는 태도를 내려놓고, 그분께서 이끄시는 길을 따라야 한다.
기다림도 믿음의 행동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때 기억해야 할 태도가 있다. 바로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것이다. 서둘러 결론을 내리려 하면 자신의 충동과 하나님의 뜻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기다림은 조급한 판단에서 한 걸음 물러나 마음의 동기를 살피게 한다.
시편 130편은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시 130:5)라고 고백한다. 성경이 말하는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분을 의지하며, 인도하심을 기대하는 적극적인 믿음의 행동이다.
때로는 마음을 충분히 고요하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엘리야가 경험한 세미한 소리를 떠올릴 수 있다. 크고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이 지나간 뒤 세미한 소리가 들렸다. 우리 역시 끊임없는 소음과 분주함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 머물 필요가 있다.
시간을 내어 기도하고, 금식하며, 기다려야 한다. 당장의 충동이 가라앉고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살필 수 있도록 여유를 가져야 한다.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지뿐 아니라 왜 그것을 원하는지도 하나님 앞에서 돌아봐야 한다. 이러한 기다림 속에서 자신의 욕심과 두려움을 더 분명히 알아차릴 수 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내어드리라
필자는 2024년 9월부터 성도들과 함께 사도행전을 강해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과 충만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달았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성령 충만’, ‘성령 세례’, ‘성령의 기름 부으심’, ‘성령의 능력’ 등 다양한 표현을 접한다.
이 표현들의 의미와 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이 글에서 강조하려는 핵심은 분명하다. 자신의 고집과 교만을 내려놓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계획을 승인받으려 한다면, 그분의 뜻을 구하는 기도도 흥정으로 변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하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고백과 함께, 삶의 각 영역에서 그분의 다스리심을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물어야 한다. 계획과 관계, 일과 미래를 결정할 때 그분께 귀 기울이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내린 결정을 정당화할 근거만 찾고 있는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삶은 그분께 순종하는 삶과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면 먼저 그 뜻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저도 원한다”
하나님께 자신을 맡긴다는 것은 자신의 뜻대로만 하려는 고집과 결과를 통제하려는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다. 바라는 것을 솔직하게 아뢰되, 그 바람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특정한 장소나 직업, 관계만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조건을 붙이고 있지는 않은가. 순종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정한 범위 안에서만 따르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는 결국 이러한 고백으로 이어져야 한다: “주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저도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