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마크 크리치 목사의 기고글인 "목회자 감사의 달: ‘목사’라는 호칭을 지켜야 할 세 가지 이유"(Pastor Appreciation Month: 3 reasons not to drop the title ‘reverend') 10월 17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마크 H. 크리치 목사(Rev. Mark H. Creech)는 노스캐롤라이나 기독교행동연맹(Christian Action League of North Carolina, Inc.)의 사무총장이다. 그는 이 직책을 맡기 전에 20년 동안 목회자로 사역했으며,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다섯 곳의 남침례교회와 뉴욕주 북부에서 한 곳의 독립침례교회를 섬겼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10월은 ‘목회자 감사의 달’이다. 목회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동시에, 그들이 감당하는 거룩한 직분의 의미를 되새기기에 좋은 때다.
필자는 목회하는 동안 ‘레버런드’(Reverend)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말라는 권유를 여러 차례 받았다. 영어권에서 목회자를 존칭하는 이 표현에는 ‘공경할 만한’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필자의 신앙적 배경인 침례교 안에서는 이 호칭을 부적절하거나 지나치게 자신을 높이는 표현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었다.
이러한 반대는 주로 시편 111편 9절에 근거한다. 킹제임스역은 하나님을 가리켜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라고 선포하면서 ‘지존하시도다’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reverend’를 사용한다.
필자도 그 우려를 이해한다. 어떤 사역자도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경외를 자신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거룩한 사역에 부름받은 사람에게 표하는 존중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호칭을 받아들였으며, 수십 년간 목회하면서 이를 사용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사람의 우월함이 아니라 직분의 무게를 인정한다
‘목사’라는 호칭은 사역자가 다른 신자보다 본질적으로 더 거룩하거나 영적으로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다. 목회자 역시 연약함을 지닌 사람이며,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이다. 그러나 그에게 맡겨진 직분과 책임까지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성도들을 양육하며, 그들의 영혼을 돌보도록 부름받았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고 권면했다.
교회는 하나님께 속해 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며, 성령께서는 그들을 돌보도록 감독자들을 세우셨다. 이처럼 귀한 책임을 맡은 직분에는 그에 합당한 존중이 필요하다. 호칭은 개인을 높이기보다 그가 받은 부르심의 무게를 인정하는 표현이 될 수 있다.
목회자에게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요구한다
이 호칭은 목회자 자신에게도 엄숙한 책임을 일깨운다. 직분이 존중받는다면, 그 직분을 맡은 사람은 더욱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 호칭은 교만을 키우는 수단이 아니라 겸손을 배우게 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엡 4:1)고 권면했다. 디모데전서 3장에 제시된 감독자의 자격 역시 지도자의 삶과 성품에 따르는 책임을 강조한다.
필자는 ‘목사’라는 호칭을 자신을 높이 평가해 달라는 요구로 여긴 적이 없다. 오히려 맡겨진 소명을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이라는 요청으로 이해했다. 그 호칭을 들을 때마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과 사역에 대해 답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직분의 명예는 책임과 분리될 수 없다. 존중받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은 더 큰 특권을 누릴 근거가 아니라, 더욱 신중하게 섬겨야 할 이유가 된다.
교회가 신실한 영적 지도력을 존중하도록 돕는다
필자는 오늘날 목회자의 직분이 지나치게 가볍게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는 사실이 교회 안의 서로 다른 역할과 책임까지 없애는 것은 아니다. 목회자는 동료 신자인 동시에 공동체를 돌보는 감독자이며, 섬기는 종인 동시에 지도자다.
바울은 신자들에게 영적 지도자들을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라”(살전 5:13)고 권면했다. 그러나 일부 교회는 목회자를 개인의 취향과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고용한 직원처럼 대하기도 한다. 신실한 목회자는 때로 회중이 듣고 싶어 하는 말보다 반드시 들어야 할 말씀을 전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들을 악의적으로 대하는 일을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예수님은 선지자들을 박해한 이들을 엄히 책망하셨다(마 23:29–37). 선지자의 직분을 오늘날의 목회자와 그대로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원리는 담겨 있다.
히브리서 13장 17절도 성도들의 영혼을 돌보며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질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라고 권면한다. 또한 그들이 탄식하며 사역하게 하는 것은 성도들에게도 유익하지 않다고 말한다.
『나이트의 새로운 예화 사전』에는 영적 생명력을 점차 잃어간 한 남자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는 처음에는 설교자의 방식에 불만을 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설교자 자체를 미워하게 됐다. 그 반감은 설교의 내용과 교회 전체를 향한 경멸로 번졌다. 개인적인 불편함에서 시작된 감정이 신앙의 소중한 것들까지 거부하는 태도로 굳어진 것이다.
이 예화는 신실한 목회자를 향한 지속적인 경멸이 그가 전하는 말씀을 듣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목회자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교회 공동체의 영적 건강과도 연결돼 있다.
호칭에 담긴 존중과 책임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시편 111편 9절의 ‘reverend’는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하나님의 위엄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필자는 이 구절이 영어권에서 존중의 뜻으로 사용하는 목회자 호칭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한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종교적 호칭을 경고하신 예수님의 말씀 역시 교만과 자기 과시의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성경은 목회자에게 이 호칭을 반드시 사용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필자는 존중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 자체를 금지한다고 보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호칭을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 어떤 태도를 갖느냐는 점이다.
목회자의 직분에 따르는 명예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 3:1)고 경고했다.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은 자신이 전한 가르침과 살아온 삶에 대해 더욱 엄격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 모든 설교자는 이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회중은 신실한 지도자를 어떻게 대했는지 하나님 앞에서 답해야 하며, 목회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권위를 어떻게 행사했는지 답해야 한다. ‘목사’라는 호칭에서 우월감을 얻는다면 그 의미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그 호칭이 목회자에게는 거룩한 책임을, 교회에는 신실한 지도자를 존중할 의무를 일깨운다면 이를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
부르심을 존중하고, 그 사람을 돌봐야 한다
이처럼 귀한 직분을 맡은 목회자도 여전히 연약한 인간이다. 지치고 낙심하며, 실망과 외로움을 겪는다. 다른 사람에게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무거운 짐을 감당할 때도 있다.
목회자의 부르심을 존중하는 일은 그 직분을 맡은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는 일로 이어져야 한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호칭에 담긴 예우만이 아니다. 사역의 짐을 함께 나누려는 이해와 기도, 따뜻한 격려와 실질적인 지원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