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데일 모로의 기고글인 '음란물 단순히 개인적인 죄가 아니다. 하나의 영적 체계다'(Pornography isn't just a private sin. It's a spiritual system)를 10월 8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데일 모로(Dale Moreau)는 성서학 학사(BA), 목회학 석사(MDiv), 성서신학 및 성경언어학 박사(PhD) 학위를 취득했으며, 30년 동안 목회자로 섬겼다. 또한 대학과 신학교에서 강의했으며, 55년 넘게 글을 써왔다. 그의 저술은 학술 문헌에서도 인용되고 있다. 현재 그는 서브스택(Substack)에서 ‘Theological Voice’를 운영하며, 목회자와 학자, 학생들을 위해 성경이 담고 있는 초자연적 세계관을 재조명하고 회복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교회는 대개 포르노그래피, 곧 음란물 문제를 남성이 끊어야 할 은밀하고 사적인 습관으로 다룬다. 이러한 관점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만으로는 우리가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교회의 대응은 주로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며, 각각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첫째는 도덕적 접근이다. 포르노그래피는 죄이므로 의지력과 죄의 고백, 사용 내역을 점검하고 공유하는 소프트웨어, 때로는 수치심을 통해 이를 억제해야 한다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진실이 있다. 죄에 대한 개인의 책임은 분명하며 가볍게 넘길 수 없다. 그러나 이 방식만 강조하면 문제는 자신의 나약함과 홀로 싸우는 개인의 문제로 축소된다. 결국 당사자에게 남는 메시지는 더 열심히 노력하고, 실패하면 더 큰 자책을 감당하라는 것뿐일 수 있다.
둘째는 치료적 접근이다. 음란물 사용을 뇌의 보상 체계와 연결된 강박적 행동으로 이해하고, 그 배경에서 외로움이나 트라우마 등을 살피는 방식이다. 이러한 접근은 실제 경험을 설명하며, 임상적 통찰도 유용하다. 그러나 행동이 반복되는 기제를 설명하는 것만으로 그 행위의 영적·윤리적 의미까지 모두 밝힐 수는 없다. 사람이 어떻게 사로잡히는지를 이해하는 일과 그를 사로잡는 구조의 성격을 분별하는 일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 실체를 보려면 성경이 악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성경은 악을 개인의 잘못된 선택을 합한 것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인간 사회를 관통하는 비인간적인 구조와 그 배후의 적대적인 영적 권세도 말한다.
개인의 습관을 넘어 산업과 구조를 보아야 한다
성경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한 관점에 따르면, 민족들은 반역한 영적 통치자들의 지배 아래 놓였고, 그 권세들은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을 타락시켰다. 이러한 권세는 현실의 제도와 경제, 사회 구조를 통해 작용한다. 이 관점에서 포르노그래피 역시 그러한 구조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포르노그래피는 화면 앞에 홀로 앉아 있는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을 끌어들이고, 취약성을 수익으로 바꾸며,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성장하는 거대한 세계적 산업의 문제이기도 하다. 성경적 관점은 그 구조를 단순한 시장 논리로만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산업의 배후에 있는 영적 의미까지 살피도록 요구한다.
이 지점에서 사적인 습관이라는 좁은 관점으로는 놓치기 쉬운 사실이 드러난다. 포르노그래피는 화면을 보는 사람과 화면 속에 등장하는 사람, 양쪽의 존엄을 모두 훼손한다는 점이다. 모든 인간은 성별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됐다(창 1:27). 그 존엄은 노력으로 얻는 자격이 아니며, 타인이 임의로 빼앗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산업은 화면 양쪽에 있는 사람의 존엄을 동시에 위협한다.
화면 이쪽에는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왜곡되는 시청자가 있다.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이미지는 다른 사람을 인격체보다 욕망을 충족시키는 상품으로 바라보도록 길들일 수 있다. 화면 저편에는 소비의 대상이 된 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소중한 자녀이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그들은 인격을 상품으로 바꾸어 이윤을 얻는 산업 안에서 상품화와 착취의 위험에 놓인다.
화면 양쪽의 하나님의 형상을 보아야 한다
개인의 ‘순결 관리’에만 초점을 맞추는 접근은 시청자의 행동과 죄책감에 집중한다. 반면 성경적 관점은 화면 양쪽의 사람을 함께 바라보도록 요구한다. 문제의 본질은 개인의 도덕적 실패를 넘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데 있다.
이렇게 문제를 이해하면 “보지 말라”는 처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포르노그래피를 인간의 존엄을 겨냥한 영적 착취 구조로 본다면, 회복 역시 행동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 구조가 훼손한 시선과 관계, 존엄을 되찾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 문제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자유란 단순히 음란물을 보지 않은 기간을 늘려가는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달라지는 일이다. 사람을 상품으로 보도록 길들이는 지배에서 벗어나,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게 하시는 참된 왕께 속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존엄을 알아보고 존중하는 능력을 회복할 때 행동의 변화도 더 깊은 토대를 얻게 된다.
따라서 회복을 혼자 스마트폰에 차단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견뎌내는 사적인 과제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회복에는 언약 공동체의 역할이 필요하다. 공동체는 죄를 변명하지 않으면서도 한 사람을 그 죄로만 규정하지 않아야 한다. 그를 품고 책임 있는 변화를 돕는 가운데, 오랫동안 훼손된 존엄과 관계를 다시 세워가야 한다.
교회의 돌봄은 착취당하는 사람에게도 닿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교회가 화면 저편에 있는 사람들의 존엄에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시청자의 순결에만 관심을 두고 착취당하는 사람의 가치를 외면한다면, 화면 속 사람을 온전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산업의 논리를 되풀이할 위험이 있다.
성경적 비전은 죄와 씨름하는 사람의 순결을 회복하는 데서 멈출 수 없다.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존엄이 훼손되는 또 다른 하나님의 형상에게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시청자의 회복과 착취당하는 사람의 존엄을 함께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교회의 대응은 목회적 돌봄과 함께 선교적 책임을 포함해야 한다. 착취에 단호히 맞서고, 산업이 이용하는 사람들의 존엄과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개인이 음란물을 끊도록 돕는 일과 그 산업 안에서 사람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구조에 맞서는 일은 서로 연결돼 있다.
복음이 제시하는 회복과 자유
교회는 포르노그래피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야 한다. 이는 의지력으로 억눌러야 할 사적인 실패로만 설명할 수 없으며, 전문가의 관리가 필요한 강박적 행동이라는 설명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개인의 책임과 임상적 도움을 인정하면서, 현실의 산업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영적 착취 구조까지 분별해야 한다.
복음은 이러한 문제에 단순히 더 효과적인 차단 도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만 응답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깊은 진리를 제시한다. 참된 왕께서 악의 권세들을 무장 해제하셨으며, 사로잡힌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시고 그들의 시선과 존엄을 회복하신다는 진리다. 그분은 이 구조가 지우거나 상품으로 바꾸려 했던 사람들을 잊지 않으신다.
이 문제로 씨름하는 사람은 나쁜 습관을 가진 존재로만 규정될 수 없다. 그는 자유와 회복을 향해 나아가도록 부름받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화면 속 사람 역시 상품이 아니다. 그 또한 참된 왕께서 잊지 않으시는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