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생명윤리연구소는 10일 서울대학교병원 교회 4층 연구소에서 김우진 교수(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치과약리학)를 초청해 ‘유전자치료·유전자편집: 치료와 강화의 경계, 그리스도인의 분별’을 주제로 성산 콜로키움을 개최했다.
온·오프라인으로 동시 진행된 이번 강좌는 유전자 기술이 단순한 질병 치료를 넘어 인간 능력의 '강화(Enhancement)'로 확장되는 현시점에서, 의학적 치료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와 기독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분별 기준을 심도 있게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발제자로 나선 김우진 교수는 1990년 아데노신 탈아미노효소(ADA) 결핍증 환아에게 시행된 최초의 유전자치료를 시작으로, 2012년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Cas9) 기술 발표, 2023년 첫 크리스퍼 치료제 ‘카스게비’의 승인, 그리고 2025년 단 한 명의 환아를 위해 맞춤형으로 설계된 염기편집에 이르는 35년간의 기술 흐름을 짚었다.
김 교수는 “과거의 유전자 기술이 정상 유전자를 추가로 넣어 주는 고전적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결함이 있는 바로 그 자리를 정밀하게 교정하는 유전자편집으로 기술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이 과정에서 ‘체세포 편집’과 ‘생식세포 및 배아 편집’을 철저히 구분하는 것이 윤리적 논의의 핵심이라고 짚었다. 김 교수는 “체세포 편집은 치료받은 본인에게만 효과가 국한되지만, 생식세포와 배아 편집은 편집된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후손 모두에게 유전적으로 전달되어 되돌릴 수 없다는(비가역성)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강연에서는 킴리아, 럭스터나, 졸겐스마, 헴제닉스 등 이미 상용화되어 병원에서 투여되고 있는 유전자 치료제들의 성과가 구체적으로 소개됐다. 특히 겸상적혈구병 치료제인 카스게비의 경우, 임상시험에 참여한 30명 중 29명이 12개월 이상 심각한 통증 발작을 겪지 않는 결과를 냈다. 또한 중증 요소회로이상증(CPS1 결핍증)을 안고 태어난 아기에게 약 6개월 만에 맞춤형 염기편집제가 설계 및 투여된 사례를 통해 ‘N=1 의학(초개인화 맞춤 치료)’의 시대가 열렸음이 확인됐다.
하지만 김 교수는 기술의 이면에 존재하는 부작용과 사회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1999년 유전자치료 임상시험 중 사망한 제시 겔싱어 사건, 2002년 면역결핍 아동 임상에서의 백혈병 발생 부작용, 그리고 2025년 고용량 AAV(아데노연관바이러스) 운반체 투여 후 발생한 간부전 사망 사례 등이 언급됐다.
김 교수는 “현재 승인된 치료제들은 1회 투여에 수십억 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발생해 의료 접근성과 분배 정의의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며 “위험은 늘 예기치 못한 곳에서 드러났기에, 기술의 힘이 커질수록 연구자의 겸손과 신중함, 그리고 환자의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치료와 강화의 경계 모호성에 대한 분석도 이어졌다. 김 교수는 2018년 전 세계에 충격을 준 중국 허젠쿠이의 유전자편집 쌍둥이 출생 사건을 ▲의학적 필요의 부재 ▲안전성 미확인 ▲부실한 동의 절차 ▲아이들에게 전가된 평생의 불확실성이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최근 실리콘밸리의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질병 예방’을 명분 삼아 등장하고 있는 배아 편집 스타트업들의 동향을 소개했다.
현재 국내 생명윤리법 제47조를 비롯해 유럽 오비에도 협약, 미국과 중국의 규제,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등은 유전되는 유전자 편집의 임상 적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러한 규제와 금지의 근거가 주로 ‘현재 기술의 안전성 부족’에 놓여 있어, 훗날 기술이 완벽히 안전해진다면 허용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치료와 강화의 경계는 단칼에 나뉘는 하나의 선이 아니라, 겸상적혈구병 치료에서부터 콜레스테롤 저하(PCSK9) 예방 편집, 에이즈 저항성(CCR5) 유전자 제거를 거쳐 궁극적으로 키·지능·외모의 ‘설계’에 이르는 그라데이션(스펙트럼)”이라며 “동일한 유전자 가위가 치료와 강화 양쪽 모두에 쓰이는 만큼, 판단의 기준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목적과 맥락이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 판단 기준으로 마이클 샌델의 ‘선물로서의 생명’ 개념과 위르겐 하버마스가 제기한 ‘자율성 및 세대 간 정의’ 등을 제시했다.
나아가 나치의 T4 작전이나 국내 한센인 강제 단종 및 낙태 등 역사 속 우생학의 비극을 언급하며 경각심을 촉구했다. 김 교수는 “역사적으로 우생학은 언제나 ‘과학’과 ‘선의’의 얼굴을 하고 등장했다”며 “과거에는 국가가 강제하던 우생학이 오늘날에는 부모와 시장의 ‘선택’이라는 자발적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며, 강압이 없더라도 사회 전반에 ‘어떤 생명은 장애나 유전병을 안고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낫다’는 메시지를 남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날 강연의 결론으로 김 교수는 급변하는 기술 앞에 선 기독교인을 위해 성경적 토대 4가지(네 개의 기둥)를 제시했다. ▲인간의 존엄은 유전자의 품질에 달려 있지 않다는 ‘하나님의 형상(창 1:27)’ ▲생명은 설계할 대상이 아니라 감사로 받는 선물이라는 ‘기묘하게 지으심(시 139:14)’ ▲질병을 고치는 일은 긍휼의 사역이라는 ‘치유의 사명(마 9:35)’ ▲완벽을 향한 욕망 너머 인간의 한계를 품는 ‘약함 속의 은혜(고후 12:9)’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기술을 평가할 때 던져야 할 ‘다섯 가지 질문’도 제안했다. 첫째, 질환의 회복이 목적인가, 남보다 앞서려는 경쟁이 목적인가(목적). 둘째, 스스로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가, 동의할 수 없는 태아를 대상으로 하는가(대상). 셋째, 그 과정에서 배아가 희생되거나 도구로 전락하는가(수단). 넷째, 누가 혜택을 받고 누가 소외되며 장애인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정의). 다섯째, 기술 사용이 감사와 겸손에서 기인하는가, 통제와 교만에서 기인하는가(태도)이다.
김 교수는 이 기준을 실제 사례에 적용해 보이며 토론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는 “성인 겸상적혈구병 환자에 대한 체세포 편집은 긍휼의 사역이므로 지지하되, 소외되는 이가 없도록 접근성 확대가 과제다. 희귀질환 신생아 맞춤 편집 역시 투명한 안전성 검증을 전제로 신중히 지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배아 편집을 통한 유전병 예방은 배아의 희생과 비가역성 때문에 반대하며, 키나 지능 등을 향상시키는 유전자 강화 편집은 생명의 도구화와 사회적 불평등 심화 등의 문제로 명백히 반대한다”고 선을 그었다.
끝으로 김 교수는 “교회는 장애와 질병을 가진 이들을 ‘유전자 기술로 고쳐야만 할 문제’로 보는 대신, 한 몸의 지체로 온전히 품어내는 환대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며 “의료인과 연구자는 치료의 사명에 적극 참여하되 충분한 설명과 동의, 이해충돌 관리를 엄격히 지키고, 성도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환자들의 의료 접근성을 위해 사회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 고칠 수 있는 것은 감사함으로 적극 고치고, 우리 힘으로 만들 수 없는 생명의 한계는 겸손히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