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매산기념강좌가 2일 오후 숭실대학교 한경직기념관 숭덕김덕윤예배실에서 ‘원삼국~한성백제기 남한강 유역의 물질자료와 지역정치체’를 주제로 열렸다.
이번 강좌는 원삼국시대부터 한성백제기에 이르는 남한강 유역의 물질자료를 통해 지역정치체의 성장 과정과 백제 중앙과의 관계를 지방의 관점에서 살펴보기 위해 마련됐다.
발표에는 박장호 (경산박물관), 한지선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 장덕원 (서원문화유산연구원)씨가 나섰다. 박장호 씨는 ‘원삼국 전환기 남한강유역의 물질자료와 지역정치체’, 한지선 씨는 ‘원삼국~한성백제기 남한강 하류역의 물질자료와 지역정치체’, 장덕원 씨는 ‘원삼국~한성백제기 남한강 중·상류역의 물질자료와 지역정치체’를 각각 발표했다.
박장호 “자료 부족…가능성 열어두고 봐야”
첫 발표에 나선 박장호 씨는 초기철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남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철기와 토기 등 물질문화의 변화 양상을 살폈다.
그는 남한강 유역에서 원삼국 전환기를 직접 보여주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먼저 전제했다. 그는 “실제 오늘 발표한 내용에서 대부분은 가설적인 부분이 많다”며 “물질자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다른 지역의 자료를 가지고 이 지역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검토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최근 중부와 중서부 지역에서 철제 무기와 농공구가 함께 확인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남양주 금남리와 가평 달전리 등에서 철제 무기와 농공구가 동반된 무덤이 확인되는 만큼 이를 특정 지역에 국한된 현상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장호 씨는 남한강 유역에서도 상류와 중류, 하류에 따라 자료의 양과 성격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상류에서는 전환기를 보여주는 자료가 부족하지만 중·하류의 경우 주변 지역에서 확인되는 철기와 토기 자료를 통해 문화 유입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남한강 일대에서 아직 직접 확인되지 않은 철기문화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가능성에 대해서는 열어둬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만 현재 자료만으로 남한강 유역 전체를 하나의 동일한 문화권으로 규정하기 어렵다며 지역별 입지와 물질자료의 차이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한지선 “지역별 물질문화 차이…공동체 성격도 살펴야”
한지선 씨는 남한강 하류역을 중심으로 취락과 무덤 자료를 분석해 지역정치체의 성격과 한성백제기의 변화를 살폈다.
그는 남한강 본류를 비롯한 각 수계의 주거지 형태와 취사·난방시설, 토기, 무덤 등의 차이를 비교했다. 지역별로 주거지 구조와 시설 구성에서 차이가 나타났고, 일부 지역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요소가 함께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양평과 여주 일대에서는 원삼국시대부터 한성백제기까지 취락이 이어지는 양상이 나타났으며, 여주·이천 일대에서는 4세기 이후 백제와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확인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무덤 자료 가운데 적석묘의 구조와 매장 방식에도 주목했다. 여러 사람의 화장 인골이 하나의 묘역에서 함께 확인되는 사례 등을 토대로 개인보다 공동체의 결합이 상대적으로 강조된 사회였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한 적석묘에 대해 “개인이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결합된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며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묘역을 사용한 양상에 주목했다.
이어 “적석묘를 함께 쌓고 또 쓰는 행위 자체가 구성원들에게 집단적인 정체성을 환기하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성백제의 영향이 확대된 이후 나타나는 변화 역시 지역별로 달랐다고 봤다. 일부 지역에서는 현지 집단이 백제의 물질문화를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는 자료가 나타나는 반면, 다른 곳에서는 백제 중앙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검토할 수 있는 자료가 확인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지선 씨는 남한강 하류의 지역집단이 동일한 방식으로 백제에 편입됐다고 보기보다 각 지역의 기존 문화와 정치적 성격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덕원 “충주, 4세기 중반 전후 유적 분포 변화”
장덕원 씨는 충주·제천·단양을 중심으로 한 남한강 중류와 정선·영월·평창 등 상류 지역의 유적과 유물을 비교해 지역정치체의 변화 양상을 검토했다. 그는 지역마다 발굴자료의 양에 차이가 있는 만큼 유적의 규모와 출토 유물, 생산시설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남한강 중류에서는 충주를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많은 유적이 확인됐으며, 지역에 따라 탄요와 제철 관련 시설의 분포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일부 유적은 기존에 제시된 연대 역시 출토 유물과 주변 지역 사례를 통해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특히 충주 일대에서는 4세기 중반을 전후해 유적 분포가 달라지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4세기 중·후반 들어 탑평리 일대를 비롯한 여러 유적이 확인되는 점을 토대로 기존 중심지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장덕원 씨는 “4세기 중후반에 들어가면 중심지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가면서 탑평리 일대로 중심지가 이동한 것으로 보면 어떨까 한다”며 현재 자료를 토대로 한 해석임을 전제로 밝혔다.
남한강 상류에서는 영월과 평창, 정선 등에 분포하는 소규모 유적을 개별적으로만 보기보다 일정한 범위의 취락군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가까운 거리에 분포하는 유적들이 같은 시기에 형성됐다는 점이 확인될 경우 “하나의 취락권 혹은 취락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각 유적의 시기를 먼저 명확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4세기 중반 이후 남한강 상류지역에 대해서는 자료 부족을 강조했다. 그는 “자료가 좀 부족하다”며 현재까지는 백제와의 교류나 관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백제와 관련된 교류나 교섭이 미비한 상태에서 5~6세기 이후에는 신라와 관련을 좀 더 깊게 맺지 않았을까”라고 조심스럽게 해석했다.
한편, 세미나는 이어 종합토론, 좌장논평으로 이어졌으며 모든 순서가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