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문화가 만들어낸 '가짜 예수': 우리가 성경 속 진짜 왕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세스 우딘스키.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세스 우딘스키의 기고글인 '넷플릭스판 『나니아』, 아슬란의 ‘그리스도적 상징’을 흔들다'(Netflix's Narnia is an attack on Aslan's Christ figure)를 9월 29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세스 우딘스키는 전국적으로 방송되는 토크 라디오·TV 프로그램 ‘파이낸셜 이슈스(Financial Issues)’의 프로듀서이자 공동 진행자다. 이 프로그램은 투자자들에게 성경적 책임투자(Biblically Responsible Investing·BRI) 원칙을 통해 재정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방식으로 관리하는 법을 가르친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지난 70여 년 동안 전 세계 수많은 기독교인은 C.S. 루이스의 장대한 7권짜리 걸작 『나니아 연대기』를 읽고 사랑해 왔다. 신화와 마법이 살아 숨 쉬는 나니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루이스가 말한 일종의 기독교적 ‘가정(supposal)’을 통해 복음의 진리를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속에 풀어낸 작품이다.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위대한 사자 아슬란이 있다. 그는 ‘바다 너머 위대한 황제의 아들’이자 나니아의 창조주이며 구원자다.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에서 아슬란은 나니아와 그곳에 들어온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고, 다시 살아나 사악한 하얀 마녀를 무너뜨리고 나니아를 회복시킨다.

루이스에게 아슬란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캐릭터 이상의 존재였다. 그는 만약 말하는 동물과 신비로운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 세계에서 그리스도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실지를 상상했다. 다시 말해 아슬란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루이스의 문학적 ‘가정’이었다.

영화의 시대가 열리면서 『나니아 연대기』를 영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도 여러 차례 이어졌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2005년 월든 미디어(Walden Media)가 디즈니와 함께 제작한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었다. 첫 작품은 흥행에 성공했지만 이후 『캐스피언 왕자』와 『새벽 출정호의 항해』까지 이어진 시리즈는 결국 일곱 권 전체를 영화화하는 데 이르지 못했다.

이제 그레타 거윅(Greta Gerwig) 감독과 넷플릭스가 새로운 『나니아』를 준비하고 있다. 첫 작품은 『마법사의 조카(The Magician’s Nephew)』로, 2027년 극장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넷플릭스는 메릴 스트립(Meryl Streep)이 아슬란의 목소리를 맡는다는 사실도 공식적으로 공개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상당한 논란이 일고 있다.

 여성 배우가 목소리를 맡은 아슬란

아슬란은 원작에서 일관되게 남성으로 묘사되며, 역사적으로 영상과 라디오 드라마에서도 남성 배우들이 목소리를 맡아왔다. 그런 점에서 메릴 스트립의 캐스팅은 이전 작품들과 분명히 다른 선택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거윅 감독이 아슬란의 성별 자체를 여성으로 바꿨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최근 관련 보도에서도 아슬란은 여전히 ‘he’라는 남성 대명사로 소개되고 있으며, 성별 변경 여부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로이터 커넥트

거윅은 메릴 스트립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깊이와 권위, 지혜를 표현하는 동시에 기쁨과 경이로움까지 전달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70세 이상의 배우 가운데 이러한 요소를 모두 갖춘 인물을 찾았고, 그 결과 스트립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단순히 목소리 배우의 성별에만 있지 않다. 새롭게 공개된 아슬란의 모습 역시 과거의 나니아 영화와 상당히 다르다. 첫 공개 이미지에서 아슬란은 양쪽 눈의 색이 서로 다른 이색증(heterochromia)을 지니고 있으며 얼굴에는 강렬한 붉은 무늬가 들어가 있다. 거윅의 이러한 시각적 접근에는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이미지가 주요 영감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

거윅은 이번 작품 전체를 일종의 ‘록 오페라’적인 감각으로 구상했다고 설명한다. 나니아가 아슬란의 노래로 창조되는 세계라는 점에서 음악과 록 문화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창작자가 원작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할 자유가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나니아 연대기』처럼 기독교적 의미가 작품의 핵심 구조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작품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특히 아슬란이 누구를 가리키는 존재인가 하는 질문은 단순한 캐릭터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다.

아슬란의 정체성은 이야기의 중심이다

『나니아 연대기』에서 나니아인들은 아슬란의 백성이다. 기독교인이 그리스도의 백성인 것처럼, 그들은 창조주이자 왕인 아슬란에게 속해 있다. 이야기 속에서 나니아가 번영하는 때는 아슬란이 누구인지 기억하고 그의 뜻에 충실할 때이며, 그를 잊거나 왜곡할 때 혼란과 재앙이 찾아온다.

이 점은 『나니아 연대기』 마지막 작품인 『마지막 전투』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이 작품에는 퍼즐(Puzzle)이라는 당나귀와 시프트(Shift)라는 원숭이가 등장한다. 교활한 시프트는 퍼즐에게 사자 가죽을 입힌 뒤 그를 아슬란이라고 속인다. 사람들은 진짜 아슬란과 가짜 아슬란을 구별하지 못하기 시작하며, 결국 그 혼란은 나니아의 마지막 위기와 연결된다.

루이스가 의도한 것은 단순히 ‘가짜 사자’를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진짜 왕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공동체가 얼마나 쉽게 거짓된 권위와 왜곡된 신앙에 넘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이러한 점에서 새로운 『나니아』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메릴 스트립이 아슬란의 목소리를 맡아도 되는가”라는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더 중요한 질문은 영화가 루이스가 아슬란에게 부여했던 정체성과 의미를 얼마나 충실하게 보존할 것인가 하는 데 있다.

각색과 재해석의 경계

문학 작품을 영화로 옮기면서 변화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영화는 소설과 다른 매체이고, 감독 역시 자신만의 미학과 해석을 가지고 작품에 접근한다. 이전의 『나니아』 영화들 역시 원작을 그대로 옮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든 변화가 같은 무게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의상이나 배경, 장면의 순서와 같은 요소를 바꾸는 것과 작품의 신학적 중심에 있는 인물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아슬란은 『나니아』에서 주변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작품 전체의 신학적·도덕적 세계관을 떠받치는 중심축이다. 그가 어떤 존재인지가 달라지면 나니아라는 세계가 무엇을 말하는지도 함께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기독교 독자들이 이번 각색을 우려하는 것 자체를 단순히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나 특정 배우에 대한 반감으로 치부할 필요는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질문은 아슬란의 외모나 목소리가 아니라, 그가 원작에서 지닌 ‘그리스도적 정체성’이 새로운 영화에서도 유지되는가 하는 문제다.

동시에 아직 작품 전체가 공개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캐스팅과 일부 이미지, 감독의 제한적인 설명뿐이다. 메릴 스트립의 캐스팅과 파격적인 디자인이 실제 영화 속에서 아슬란의 성격과 신학적 의미를 어떻게 표현하게 될지는 작품이 공개된 뒤 더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진짜 아슬란’

그럼에도 루이스의 작품이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진짜 아슬란이 누구인지 잊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 전투』에서 가장 큰 위험은 아슬란이 사라졌다는 데 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진짜 아슬란을 기억하지 못하게 됐다는 데 있었다. 그의 성품과 목소리, 그의 뜻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사자 가죽을 뒤집어쓴 당나귀에게 그처럼 쉽게 속지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둘러싼 문화가 어떤 예수를 만들어내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증언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시대와 문화는 끊임없이 예수를 자신들의 가치관과 필요에 맞춰 새롭게 해석하려 하지만, 교회는 그때마다 복음이 증언하는 그리스도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문화가 만들어낸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다. 그분은 단순한 문화적 상징이나 인간이 자유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이 고백하는 창조주이며 구원자이고 만왕의 왕이시다.

그렇기에 새로운 『나니아』를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분노나 문화전쟁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이 논쟁은 기독교인이 자신이 믿는 그리스도를 얼마나 분명히 알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넷플릭스와 거윅 감독이 새로운 아슬란을 어떻게 그려낼지는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영화가 나오든, 기독교인이 붙들어야 할 기준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옛이야기’, 곧 복음의 진리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며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왕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문화가 어떤 모습으로 그분을 다시 그려내든,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예배해야 한다.

그분은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이시다. 기독교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분을 본래의 모습 그대로 알고 따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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