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복음주의연맹(EEA)이 안도라와 리히텐슈타인의 낙태 관련 법률 완화 움직임에 우려를 표명했다. 두 국가의 최근 동향이 유럽 전역에서 낙태 접근성을 확대하려는 흐름을 보여준다는 주장이다.
2026년 9월 가톨릭 전통이 강한 안도라와 리히텐슈타인에서는 낙태 관련 법률 및 정책 개정안이 추진되거나 의회에서 논의됐다.
안도라의 사비에르 에스포트 총리는 임기 종료 전 해외에서 낙태한 여성에 대한 처벌을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에스포트 총리는 바티칸과의 논의와 관련해 현지 매체 라 베우 리우레(La Veu Lliure)에 “우리는 계속 대화를 이어가고 있으며, 다가오는 의회 회기에서 낙태 비범죄화를 승인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도라는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과 우르헬 주교 조제프 류이스 세라노 페니낫이 공동 국가원수를 맡는 의원내각제 공동공국이다.
이번 제안은 안도라 내 낙태를 합법화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에서 낙태한 여성이 자국에서 형사처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법 개정이 이뤄질 경우 우르헬 주교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리히텐슈타인에서는 지난 9월 3일 의회가 임신 초기 12주 이내의 낙태를 합법화하는 시민 발의안을 찬성 13표, 반대 12표로 통과시켰다고 BBC가 보도했다.
현지 여성 권익단체가 주도한 이 발의안에는 낙태 관련 정보 제공을 전국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을 폐지하고, 낙태 시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알로이스 왕세자는 헌법상 권한을 행사해 해당 조치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 리히텐슈타인은 낙태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으며, 강간으로 인한 임신이나 여성의 생명·건강에 심각한 위험이 있는 경우 등에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타티아나 코팔레이슈빌리 EEA 브뤼셀 유럽연합(EU) 대표는 크리스천데일리 인터내셔널(CDI)과의 인터뷰에서 두 국가의 움직임이 유럽 전반의 낙태 접근성 확대 추세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우리는 안도라와 리히텐슈타인뿐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 낙태의 비범죄화나 합법화를 지지하지 않는다”며 “수정 순간부터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성경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으며, 두 국가의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두 국가의 가톨릭 전통이 낙태 논의에서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팔레이슈빌리는 “이들 국가가 가톨릭 유산과 헌법에 마련된 법적 보호장치를 실질적인 의미가 없는 것처럼 취급하면서 해당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모습은 안타깝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성들이 처음부터 낙태를 고려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거하고, 위기 임신을 겪는 여성들이 낙태만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느끼지 않도록 지원하며, 출산 이후 어머니와 자녀에게 충분한 돌봄을 제공하는 데 같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낙태 합법화를 추진하는 데 쏟는 만큼의 결의를 이러한 목표에 기울인다면 여성과 아동 모두에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팔레이슈빌리는 모나코의 사례도 언급했다. 가톨릭 전통을 지닌 모나코는 2009년 여성의 낙태를 비범죄화했으며, 2019년에는 관련 형사 규제를 추가로 완화했다.
생식권센터(Centre for Reproductive Rights)는 지난 10년간 낙태 접근성을 확대하는 조치를 취한 유럽 국가가 20개국이라고 밝혔다. 다만 일부 유럽 국가는 반대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코팔레이슈빌리는 “한 국가에서 비범죄화가 이뤄지면 다른 국가에서도 해당 주장이 점차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웃 국가들이 기존 입장을 유지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태어나지 않은 생명의 상실뿐 아니라, 이러한 흐름이 헌법적 보호장치의 역할을 약화한다는 점에서도 우려스럽다”며 “안도라의 공동공국 체제나 리히텐슈타인 군주의 재가권과 같은 제도는 의회의 근소한 다수가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도덕적·종교적 신념을 압도하지 못하도록 마련된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