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모세, 다윗, 바울 등 굵직한 거목들이 솟아 있는 성경이라는 광활한 숲에는,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그늘진 곳마다 자신만의 생명력을 피워낸 수많은 여성들이 숨어 있다. 신간 『성서의 숲에 숨어 있던 그녀들』은 리브가, 레아, 다말부터 사마리아 여인과 마리아에 이르기까지, 성경 속 숨겨진 여성 12명의 삶을 히브리어·헬라어 원어의 렌즈와 생생한 스토리텔링으로 복원해 낸 독창적인 성경 인물 탐구서다.
수동적인 주변인이 아닌, 생명을 붙든 주체적 신앙인
오랜 시간 성경 속 여성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견디는 사람, 혹은 타인의 결정에 운명이 좌우되는 수동적인 인물로 읽혀왔다. 그러나 저자는 독자들을 이끌고 성경의 현장으로 찾아가 이들의 주체적인 결단을 새롭게 조명한다. 고향에 묶여 있던 밧줄을 스스로 끊어낸 리브가, 사랑받지 못하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사모한 레아, 생명을 잇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다말과 요게벳 등, 이들은 세상의 배제 속에서도 끈질기게 생명과 말씀을 붙든 강력한 믿음의 소유자들로 다시 태어난다.
공감각을 일깨우는 입체적 ‘스토리텔링 주석’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독자를 성경 속 사건의 한복판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게 만드는 서술 방식에 있다. 고대 근동의 지리와 문화, 인물 이름의 의미 등 탄탄한 주석적 배경 위에 바람의 촉감과 우물가의 냄새 등 문학적 묘사를 입혔다. 독자는 마치 노련한 가이드의 안내를 받는 ‘술래’가 되어, 하란의 우물가에서 물동이를 내리는 리브가를 지켜보고 너울 너머 레아의 떨리는 눈빛을 마주하는 듯한 강렬한 몰입감을 경험하게 된다.
원어가 열어주는 묵상의 깊이와 12달의 순례
존더반 아카데믹 성서 언어 우수상을 수상한 저자의 탄탄한 원어 독해력은 텍스트의 뉘앙스를 극대화한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미세한 문법과 단어의 결을 살피는 과정은 지루한 학술적 설명에 머물지 않고, 희미했던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선명하게 비추는 돋보기로 작용한다.
1년 열두 달의 흐름에 맞춰 기획된 이 책은 각 장 끝에 ‘기도 노트’를 수록하여, 성경 속 그녀들의 갈망과 상실에 독자 자신의 삶을 잇대어 묵상하도록 돕는다. 삶의 한계와 짙은 그늘 속에서 위로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이 책은 성경 속 여성들에게 임했던 찬란한 은총을 ‘나의 이야기’로 되찾게 하는 따뜻하고도 힘 있는 영적 순례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