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성공회 수장인 사라 멀럴리 캔터베리 대주교가 오사마 빈 라덴을 찬양한 전력이 있는 무슬림 성직자에게 상을 수여한 것을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대주교의 사퇴를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에는 수천 명이 서명했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에 따르면, 청원 작성자 엠마 애시는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청원 사이트 ‘체인지닷오알지(Change.org)’에 업데이트를 게시하며, 멀럴리 대주교의 사퇴를 촉구하는 청원에 주말 사이 서명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이 청원은 멀럴리 대주교가 영국 성공회의 첫 여성 수장으로 취임한 지 약 8개월 후인 올해 초 처음 제기됐다.
애시는 업데이트에서 “이 청원이 시작된 이후 영국 성공회 최고위층의 판단과 사전 검증, 책임성, 피해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건이 추가로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된 것은 멀럴리 대주교가 지난 9월 11일, 9·11 테러 25주년 당일 파키스탄의 무슬림 성직자 하피즈 무함마드 타히르 메무드 아슈라피에게 ‘위베르트 월터 화해 및 종교 간 협력상(Hubert Walter Award for Reconciliation and Interfaith Cooperation)’을 수여한 일이다.
아슈라피는 파키스탄의 종교적 소수자, 특히 기독교인들을 지원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이 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애시는 아슈라피가 과거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해 논란이 되는 발언을 한 전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애시에 따르면 아슈라피는 2007년 빈 라덴을 가리켜 “이슬람의 고귀한 칭호인 ‘사이풀라(Saifullah)’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이풀라는 ‘하나님의 검(Sword of God)’이라는 의미다.
다만 아슈라피 측 대변인은 해당 발언이 빈 라덴을 지지하거나 찬양한 것이라는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으로 약 3,000명이 사망했다. 멀럴리 대주교는 9·11 테러 25주년 당일 아슈라피에게 상을 수여한 뒤, 그가 파키스탄 내 종교적 소수자, 특히 기독교 공동체를 위해 활동해 온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영국 성공회는 논란이 불거진 지 약 일주일 만에 해당 상을 철회했다.
애시는 상 철회와 별개로 “특히 9·11 25주년이라는 시점에 이러한 영예를 수여하기 전에 어떤 사전 검증이 이뤄졌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이어 이번 논란이 영국 성공회 최고위층의 검증 절차와 함께 “학대와 테러, 제도적 실패를 경험한 이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경청되고 있는가”라는 더 광범위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주장했다.
애시는 지난 20일 추가 업데이트를 통해 주말 동안 청원 서명이 3,000건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22일 오후 기준 해당 청원에는 3,700명 이상이 서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런던교구 재직 당시의 보호조치 논란도 제기
사퇴 청원에는 이번 상 수여 논란 외에도 멀럴리 대주교가 런던교구 주교로 재직하던 당시의 성직자 보호 및 교회 내 학대 대응과 관련한 문제도 포함됐다.
청원은 영국 언론이 보도한 ‘심각하고 해결되지 않은 세이프가딩(safeguarding) 문제’를 언급하며, 멀럴리 대주교가 런던교구 주교로 재직하던 시기의 사건들이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원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된 인물 가운데 한 명은 런던교구 세이프가딩팀에서 근무했던 미셸 번스다. 번스는 교회 내 세이프가딩 문제를 제기한 이후 자신이 심각한 개인적 피해를 입었다고 공개적으로 증언한 것으로 소개됐다.
또 다른 사례로는 앨런 그리핀 신부의 사망 사건이 언급됐다. 청원은 그리핀 신부의 사건을 멀럴리 대주교가 런던교구 주교로 재직하던 당시 교구 내 돌봄과 세이프가딩, 책임성에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했다.
애시는 런던교구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요구하는 별도의 청원도 제기했다. 이 청원에 따르면 그리핀 신부는 고발자나 공식적인 신고, 조사 절차가 없었음에도 교구 내부의 세이프가딩 문서에 이름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핀 신부는 2020년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공회 사제 폴 윌리엄슨 목사는 올해 초 열린 멀럴리 대주교의 선출 예배 당시 그리핀 신부 사건을 거론하며 그의 대주교 선출 확정에 항의했다. 윌리엄슨 목사는 그리핀 신부의 사망이 성적인 성격의 허위 의혹으로 인해 장기간 고통을 겪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번스는 청원에 인용된 발언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병들 것”이라며 교회의 대응을 비판했다. 청원 측은 이를 비롯한 피해자와 내부고발자들의 증언을 강조하며 “생존자들이 목소리를 냈고, 내부고발자들이 경고했으며, 한 사제가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청원에는 또 다른 학대 피해 생존자의 사례도 포함됐다. 이 생존자는 멀럴리 대주교가 런던교구 주교로 재직하던 당시 학대 의혹을 처리한 과정과 관련해 성직자징계법(CDM)에 따른 공식적인 세이프가딩 신고를 제기한 것으로 소개됐다.
청원 측은 학대 신고가 처리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진술이 어떻게 다뤄졌는지와 신고 이후 생존자들이 받은 대우가 장기적인 트라우마와 신뢰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애시는 청원에서 세이프가딩 문제와 관련한 피해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진지하고 세심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도 의문을 제기했다.
청원은 “캔터베리 대주교는 생존자들로부터 도덕적 권위와 신뢰를 얻어야 한다”며 “그 신뢰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고 주장하며 멀럴리 대주교의 사퇴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