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선교·공창제 폐지운동·신사참배 반대 운동 등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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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혁주의연구소, ‘호주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교회’ 세미나 개최

한국개혁주의연구소는 서울 강남구 유나이티드문화재단에서 ‘초기 내한 선교사 탐구 시리즈 10: 호주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다니엘 최
한국개혁주의연구소(소장 오덕교 목사)가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유나이티드문화재단에서 ‘초기 내한 선교사 탐구 시리즈 10: 호주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는 예배, 논문발표 순으로 진행됐으며 예배에선 오덕교 목사의 인도로 현창학 교수(합신대학원 석좌교수)가 대표기도를 드렸다. 이어 박형용 교수(전 합신대학원, 전 웨신대학원, 전 성경신학대학원 총장)가 ‘하나님의 구속성취를 위한 두 계획’(누가복음 24:46-49)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어 정효제 총장(한국개혁주의 연구소 이사장)가이 축도함으로 예배 순서가 마무리 됐다.

이어진 논문발표는 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남송석좌교수/조직신학)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이영식 박사(한국연국재단 학술 연구 교수, 역사신학)가 ‘호주장로회 선교부의 사회개혁운동- 백정선교와 공창제 폐지운동을 중심으로’, 이상규 교수(고신대 명예 교수, 백석대 석좌교수, 역사신학)가 ‘제시 멕라렌의 한국학 연구와 『동경잡기』의 번역’, 정병준 교수(서울 장신대학교, 역사신학)가 ‘호주장로교 선교회의 신사참배 반대 신하과 교육 인퇴: 고백, 연대, 그리고 증언’이라는 주제로 각각 강의했다.

이영식 박사(한국연국재단 학술 연구 교수, 역사신학)가 ‘호주장로회 선교부의 사회개혁운동- 백정선교와 공창제 폐지운동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다니엘 최 기자

먼저 ‘호주장로회 선교부의 사회개혁운동 - 백정선교와 공창제 폐지운동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강연한 이영식 박사는 “호주 장로교 선교부의 한국 선교는 한 선교사의 죽음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복음의 불씨로 이어졌다. 1889년 한국에 들어온 데이비스 선교사는 부산과 경남 지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길을 떠났지만, 무리한 전도 여행 끝에 병을 얻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사람들은 호주 장로교의 한국 선교가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죽음은 오히려 호주 청년들과 교회 안에 한국 선교의 열정을 일으켰고, 이후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 땅에 들어와 복음을 전했다”고 했다.

그는 “호주 장로교 선교부는 부산과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교회를 세우고, 교육과 의료, 성경교육과 사회봉사 사역을 활발히 펼쳤다. 진주와 마산, 통영, 거창 등지에 선교 거점이 세워졌고, 병원과 미션스쿨, 성경학원을 통해 복음은 지역 사회 깊숙이 전해졌다. 이 사역은 단순히 교회를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을 치유하고 인재를 양성하며, 지역 사회를 변화시키는 통로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호주 선교부의 중요한 사역 가운데 하나는 백정 선교였다. 당시 백정들은 사회적으로 심한 멸시와 차별을 받았고, 사람답게 대우받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그들도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인격과 존엄을 지닌 존재임을 믿고 복음을 전했으며, 진주교회에서는 백정 성도들과 일반 성도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동석예배를 시도했다. 처음에는 큰 갈등과 반대가 있었지만, 선교사들의 헌신과 설득 속에 결국 화합이 이루어졌고, 이는 복음이 신분의 장벽을 무너뜨린 중요한 사례가 되었다”고 했다.

끝으로 이 박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역은 공창제 폐지 운동이었다. 일제강점기 공창제는 여성의 존엄을 훼손하고 사회를 병들게 하는 제도였으며, 호주 장로교 선교부는 이를 단순히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적인 구호와 재활 사역까지 함께 감당했다. 선교사들은 보호소와 지원처, 직업훈련 사역을 통해 고통받는 여성들이 다시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이처럼 호주 선교부의 사역은 복음 전파와 함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고, 사회의 잘못된 구조를 변화시키려는 실천이었다”고 했다.

이상규 교수(고신대 명예 교수, 백석대 석좌교수, 역사신학)가 ‘제시 멕라렌의 한국학 연구와 『동경잡기』의 번역’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다니엘 최 기자

이어 이상규 교수(고신대 명예 교수, 백석대 석좌교수, 역사신학)가 ‘제시 멕라렌의 한국학 연구와 『동경잡기』의 번역’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이 교수는 “호주 장로교 선교부는 한국에 파송한 선교사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부산과 경남 지역 기독교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이들은 스코틀랜드 장로교 전통을 바탕으로 한국에 들어왔고, 부산·진주·마산·거창·통영 등지에서 복음 전도와 학교 교육, 의료 선교, 성경 교육 사역을 펼쳤다. 데이비스 선교사의 이른 죽음은 오히려 호주 교회 안에 한국 선교의 열정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여러 선교사들이 한국 땅에서 헌신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호주 선교사들 가운데는 부산진교회와 일신여학교 설립에 기여한 인물들, 평양신학교와 부산·경남 지역에서 신학과 교회사를 가르친 학자들, 진주 배돈병원과 의료 선교를 이끈 의사 선교사들이 있었다. 이들은 단순히 복음만 전한 것이 아니라, 교육과 의료, 사회봉사를 통해 지역 사회 안에 기독교적 가치와 문화를 심었다. 특히 경남 성경학교와 여러 교육기관은 평신도 지도자와 지역 교회 인재를 세우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고 했다.

이어 “이 가운데 제시 맥라렌은 호주 선교사들 중에서도 한국학 연구에 깊이 헌신한 인물로 주목할 만하다. 그는 한국의 역사와 문학, 언어, 예술, 법과 제도, 동식물, 건축, 불교와 유학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고, 조선어·중국어·일본어 자료를 폭넓게 수집했다. 특히 한문 고전과 한국 역사 자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으며, 선교사로서 한국을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마음을 학문적 노력으로 이어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시 맥라렌의 가장 중요한 업적 가운데 하나는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동경잡기』를 영어로 번역한 일이다. 이 작업은 서구인들에게 서양의 영향을 받기 전 한국의 역사와 지역 문화를 소개하는 귀한 통로가 되었다. 한국을 떠난 뒤에도 그가 남긴 자료와 장서는 호주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어 한국학 연구의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우리는 호주 선교사들 가운데도 한국을 깊이 연구하고 사랑한 학자적 선교사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정병준 교수(서울 장신대학교, 역사신학)가 ‘호주장로교 선교회의 신사참배 반대 신하과 교육 인퇴: 고백, 연대, 그리고 증언’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다니엘 최 기자

이어 정병준 교수(서울 장신대학교, 역사신학)가 ‘호주장로교 선교회의 신사참배 반대 신하과 교육 인퇴: 고백, 연대, 그리고 증언’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정 교수는 “호주 장로교 선교회의 신사참배 반대는 단순한 행정적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 주권에 대한 신앙고백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일제는 1930년대 이후 신사참배를 학교와 교회에 강요했고, 처음에는 묵도나 절충 방식으로 피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총독부의 요구는 더욱 강해졌고, 호주 선교사들은 신사참배가 단순한 국가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충돌하는 문제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는 “호주 선교부 안에서도 의견이 하나로 모인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학교 사역을 유지하기 위해 절충안을 찾으려 했고, 여성 선교단체 역시 기독교 교육의 중요성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맥라렌을 비롯한 선교사들은 일본의 국가주의와 군국주의가 신앙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보았고, 신사참배 문제를 하나님 주권에 대한 도전으로 이해했다. 결국 호주 선교부는 신사참배와 분명히 거리를 두겠다는 입장을 세우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이 과정에서 호주 선교사들은 신사참배를 거부한 한국인 그리스도인들과 깊이 연대했다. 경남노회 안에서도 순응하려는 이들과 저항하려는 이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신사참배 거부자들은 많은 압박과 고난을 겪었다. 선교사들은 고난받는 한국 교인들의 양심을 지지하며, 단순히 학교와 기관을 지키는 것보다 신앙의 진리를 증언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고 했다.

끝으로 정 교수는 “결국 호주 장로교 선교회는 학교와 건물을 남기지 못했지만, 하나님 주권에 대한 신앙고백과 고난받는 한국인 기독교인들과의 연대, 신앙의 자유를 위한 공적 증언을 남겼다. 이들의 교육 인퇴는 단순한 철수가 아니라 신앙 양심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역사는 국가와 교회의 관계, 기독교 교육의 본질, 신앙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다시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신학적 유산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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