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지하교회 변호사, 당국 압박 속 가족과 대만으로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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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기자
mklee@cdaily.co.kr
중국 기독교인. ©오픈도어

중국 최대 규모의 지하교회 가운데 하나인 시온교회(Zion Church) 목회자들을 변호해 온 법률회사 소속 변호사가 중국 당국의 압박 속에 남편과 두 자녀를 데리고 중국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에 따르면, 베이징 시온교회 목회자들을 대리해 온 VDoor 법률회사 파트너 루스 왕(Ruth Wang)은 이달 초 중국을 떠나 현재 대만에 머물고 있다. 대만 당국은 인도적 사유로 왕 변호사와 가족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왕 변호사는 중국 당국이 VDoor 법률회사에 해산을 요구하면서 자신과 동료 변호사들에게 상당한 압박을 가했다고 밝혔다. 당국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자신의 “경력 발전과 삶의 다른 측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설명이다.

왕 변호사는 지난해 10월부터 시온교회 설립자인 에즈라 진(Ezra Jin) 목사와 구금된 교인들을 변호하는 법률팀에 참여해 왔다. 중국 당국은 당시 진 목사를 포함해 지온교회 교인 18명을 체포했으며, 이는 한 교회를 대상으로 한 수년 만의 대규모 단속 가운데 하나로 평가됐다.

진 목사는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자신의 사건을 언급한 뒤 7월 석방됐다. 그러나 시온교회 지도자 8명은 여전히 구금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VDoor 설립자인 장카이(Zhang Kai)는 왕이 자신의 멘토라고 밝힌 인물로, 중국 당국에 의해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출국도 제한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왕 변호사에 따르면 다른 VDoor 소속 변호사들도 6개월간 변호사 업무가 정지됐으며, 사법 당국은 회사 소속 변호사들에게 지온교회 사건을 더 이상 맡지 말고 회사를 떠나도록 요구했다.

왕 변호사는 다른 법률회사로 옮기려는 변호사들 역시 제한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 일본을 방문하던 중 중국 당국 관계자로부터 전화로 직접 만남을 요구받았으나, 자신은 베이징에 있지 않으며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현재 대만에는 중국 본토 출신자를 위한 공식적인 난민법이 마련돼 있지 않다. 다만 대만의 양안 관계 담당 기관인 대륙위원회는 이와 같은 사례에 대응할 수 있는 별도의 절차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대만 당국은 왕 변호사에게 중국 본토 출신자에게 공식적인 망명을 허용하는 데 제한이 있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과 대만을 둘러싼 정치적 긴장이 지속되는 상황도 이러한 문제와 관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왕 변호사는 현재 미국이나 캐나다로의 재정착을 모색하고 있으며, 가족과 함께 이주하기 위해 현지에서 공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가족의 향후 거취가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미국에 기반을 둔 인권단체 차이나에이드(ChinaAid)의 밥 푸(Bob Fu) 대표는 왕 변호사의 사례가 신앙을 이유로 박해받는 기독교인이나 수감자들을 변호하는 중국 인권변호사들이 직면한 압박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만 정부에 왕과 가족이 중국 본토로 송환되지 않도록 보호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미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들이 사태 해결을 지원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시온교회는 진 목사가 2007년 설립한 가정교회로, 중국 정부에 등록되지 않은 채 예배를 이어온 대표적인 지하교회 가운데 하나다. 중국에서는 정부가 승인한 장소에서의 종교활동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등록되지 않은 가정교회는 당국의 규제 대상이 돼 왔다.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시온교회 션 롱(Sean Long) 목사는 지난해 지온교회가 약 5천 명의 교인과 100곳 이상의 예배처를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 내 약 40개 도시에서 아파트와 식당, 노래방 등을 예배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는 최근 중국 내 감시가 강화되는 가운데 올해 상반기 중국 10여 개 도시에서 ‘불법’ 종교활동을 신고하는 사람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조치가 도입됐다고 밝혔다.

대만 국방안보연구원의 션밍스 연구원은 왕이 대만을 거쳐 망명을 모색한 것은 중국 정부가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압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대만 국립중앙대학의 쩡젠위안 겸임부교수는 중국 정부가 국가가 승인한 교회만을 허용하는 한편, 종교단체가 중국공산당의 이념을 수용하도록 하는 이른바 ‘종교의 중국화(Sinicization)’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정책에 성경과 꾸란 등 종교 경전의 내용을 중국 정부의 이념에 맞게 재구성하거나 예배 방식에 개입하고, 종교단체에 중국 정부에 대한 전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내용 등이 포함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