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지 않는 자는 배지를 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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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진(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공동대표,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나라가 넘어가도 모르고” 민초들의 피 맺힌 절규

이명진(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공동대표,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최근 보수 국민들의 가슴을 파고들며 강한 공감을 얻고 있는 노래가 있다. 가수 우하이의 ‘모르고’다.

경찰이 넘어가는 것도 모르고, 국회가 넘어가는 것도 모르고, 검찰이 넘어가는 것도 모르고, 헌재가 넘어가는 것도 모르고, 학교 교육 넘어가는 것도 모르고, 투표함이 탈탈 털려도 모르고, 부동산을 빼앗아가도 모르고, 역사들이 왜곡돼도 모르고, 공산화가 되는 줄도 모르고, 삼권분립이 무너져도 모르고... 가사는 담담하지만 날카롭다.

단순한 유행가가 아니다. 국가의 기둥이 무너지고 체제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데도, 눈감고 귀 막은 채 살아온 우리 사회를 향한 처절한 경종이다. 자유를 향한 국민의 피 맺힌 절규다.

지금 국민의 가슴은 무거운 자괴감과 분노로 짓눌려 있다. 믿었던 보수 정치인들마저 원칙을 내팽개치고 얄팍한 정치공학에 매달리다 정권을 헌납했기 때문이다. 이 노래의 반향은 단순한 한탄이 아니다. 더 이상 속지 않고 나라를 지켜내겠다는 깨어난 젊은 세대와 국민들의 다짐이다.

꽃놀이 정치질의 참혹한 결과

지난 시간 보수가 보여준 모습은 실망을 넘어 국민에게 큰 피해와 상처를 남겼다. 윤석열 정부 시절 전개된 사법 정국은 보수가 법치를 어떻게 오독하고 소모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관련된 재판들과 공직선거법 사건은 6·3·3 원칙을 훌쩍 넘겨 대법원 접수까지 무려 2년 6개월이 걸렸다. 당시 권력이 법과 원칙대로 사법처리하지 않고, 총선 국면까지 끌고 가며 정치적 지렛대로 삼으려 했다는 의심을 져버릴 수 없다.

이런 정치질은 이미 보수의 길에서 이탈한 것이다. 그 결과, 정권을 내다 주고 현 여당의 입법 독재를 낳게 했다. 법치와 가치를 지키지 못하고 꽃놀이 정치질을 한 결과다. 상대의 불법에 기생해 반사이익을 챙기려던 얄팍한 계산이 보수정권의 토대를 무너뜨렸다. 보수는 상대의 실책에 기대어 연명하는 기생 세력이 아니다.

보수가 목숨 걸고 사수해야 할 가치의 전선은 분명하다. 국민의 참정권을 지켜내야 한다. 국민의 사유재산을 보호해야 한다. 군기 빠진 정치군인들과 안보불감증에 걸린 정치인들을 몰아내야 한다. 다음 세대의 등을 꺾는 포퓰리즘 현금 살포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제한적 낙태법을 막아야 하고, 가정을 사회의 가장 거룩하고 기초적인 공동체로 지켜내야 한다. 연령과 발달 단계에 맞지 않는 성교육으로부터 우리 자녀를 보호해야 한다. 역사를 왜곡하는 교육현장을 바로 잡아야 한다. 생물학적 성별과 가족의 의미를 상대화하는 급진적 젠더 이데올로기에 물들 자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몰아내야 한다. 신분과 권력을 막론하고 불법에는 추상같은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한미동맹을 굳건히 사수하고, 불편한 반론까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

“소수라고 목소리 내지 않으면 버림받는다”

비록 의석수가 적은 소수라 할지라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치 보며 침묵하는 정당은 결국 국민에게 버림받을 뿐이다. 보수 정당은 소수 야당 시절부터 원칙과 가치를 타협하지 않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교훈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의석수가 적다고, 여론의 눈치가 보인다고 마땅히 내야 할 원칙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정당은 이미 존재 이유를 상실한 정당이다. 숫자가 적을수록 가치는 더 또렷해야 하고, 어둠이 깊을수록 불빛을 높이 들어야 한다. 전선이 불리할수록 헌법적 원칙을 더 높이 외쳐야 한다. 눈치만 보며 웅크린 비겁한 소수 정당을 국민이 대체 무엇을 믿고 지지하겠는가.

“싸우지 않는 자는 배지를 떼라”

국회 안을 들여다보면 ‘투표함이 털려도 모르고’라는 노랫말처럼, 주권과 헌법 권리가 흔들려도 침묵하는 의원들이 부지기수다.

지난 6·3 선거에서 불거진 선거 관리 부실과 참정권 훼손, 부정선거 의혹과 여러 정황을 통해 누가 국민의 편에 서 있는 진짜 보수 정치인인지 진위가 드러났다. 국민의힘 내부에는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의원들도 있었지만, 상당수 의원들은 이 중대한 사안에 침묵하거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국민의 참정권이 훼손되는 중차대한 일이 벌어졌는데도 상대의 공격이 두려운지 좌편향 언론의 눈치가 두려운지 침묵하고 있다.

장동혁 대표의 일갈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싸우지 않는 자는 배지를 떼라.” 상대와 싸울 때는 비겁하게 숨죽이고, 당내 자리싸움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자들은 필요 없다.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이 위협받는데도 침묵하는 자들은 금배지를 달 자격은 없다.

국민들이 올공(올림픽공원) 광장과 전국 각지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최핵심 가치인 참정권을 지켜 달라고 눈물 흘리며 호소할 때, 그들은 국민의 처절한 외침을 외면하고 어느 뒷방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위한 꿍꿍이를 꾸미고 있었다. 정치질만 하지, 국민은 눈에 없는 자들이다.

그들과 함께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자들은 기회만 되면 기어나오는 내부의 무원칙주의자들이다. 평소에는 침묵하다가도 전선이 서면 “중도를 잡아야 한다”, “선명성을 버려야 산다”며 보수의 뼈대를 흔들고 있다. 중도를 얻겠다고 생명을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법치를 양보하자는 것인가? 간판만 보수이고 알맹이는 기회주의인 정당에 국민이 신뢰를 보낼 리 만무하다.

권리 위에 잠자는 의원들에게 더 이상의 관용은 없다. 싸우지 않을 자는 스스로 금배지를 반납해야 마땅하다. 소수라는 핑계로 침묵하고, 국민의 참정권이 무너져도 뒤에 숨는 비겁자들은 국민을 위해 솎아내야 한다.

원칙으로 무장한 행동가들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취임 후 처음 30%대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보수 진영은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 정권의 추락이 보수의 반사이익으로 저절로 돌아오지 않는다. 감나무 밑에서 입만 벌리는 정치는 끝났다. 상대가 법을 어기면 법대로 엄단하되, 보수 스스로도 동일한 도덕적·법적 잣대 위에 서야 한다.

지금 보수 정당에 필요한 것은 영리한 정치 기술자도, 해바라기도 아니다. 보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물러서지 않는 의원들이다.

#이명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