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목회자보다 절망 극복한 19살 ‘청년 조용기’에 초점”

교회일반
교회
노형구 기자
hgroh@cdaily.co.kr
[인터뷰] 영화 <청년 조용기> 연출 권혁만 감독
권혁만 감독. ©노형구 기자

영화 <청년 조용기>는 폐결핵으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신을 저주하던 19세 소년 조용기가 절망의 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세계 선교의 역사를 써 내려간, 고(故)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의 삶을 다룬 휴먼다큐멘터리다. 신사참배를 거부한 고(故) 주기철 목사를 다룬 <일사각오> 등을 연출한 전 KBS 시사교양PD 권혁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총 900일간 세계 10개국을 돌며 1만여 개의 아카이브 자료와 AI 기술을 접목해 조용기 목사의 청년시절과 영적 부흥의 현장을 밀도 있게 담아냈다. 배우 양동근이 20대 청년 조용기의 내면을 오디오 연기로, 가수 유열이 따뜻한 내레이션으로 깊이를 더해 단순한 성공 조명을 넘어 죽음 앞의 청년 조용기가 겪은 번민과 치열한 성찰의 궤적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오는 11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최근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영산복지센터에 위치한 <청년 조용기> 임시 사무실에서 권혁만 감독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다큐멘터리 <청년 조용기>에서 조용기 목사의 어떤 면모에 주목하고 싶었는가.

“세상 사람들은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한 성공적인 목회자로 조용기 목사를 기억한다. 하지만 저는 위대한 목회자가 되기까지 겪어야 했던 과정, 즉 그분만이 가졌던 고뇌와 고난, 번민과 성찰에 주목하고 싶었다. 그 시기가 바로 20살 되기 전에 영적·신앙적·철학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확립했던 청년 시절이었다. 폐결핵 3기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죽음 앞에서 신을 부정하며 자살까지 생각했던 극심한 절망, 그리고 그 끝에서 희망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 있었기에, 성공한 목회자의 모습보다는 절망의 한가운데 있던 19살 ‘청년 조용기’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조 목사의 육필 일기 원본으로 글자 위로 조 목사가 앓던 폐렴으로 인한 각혈 흔적이 보인다. ©권필름 제공

-한국 최대 교회설립과 부흥사라는 화려한 수식 뒤에 숨겨진 인간적 면모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흔히 세계적인 목사님이라면 인격과 영성이 완벽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인간에게는 누구나 죄성과 나약함이 있기 마련이다. 겉으로 드러난 영성 깊은 모습 이전에 인간적 약점을 지닌 ‘진짜 조용기’를 조명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너무 뛰어난 사람이면 우러러볼 수는 있어도 우리의 롤모델이 되기는 어렵다. 예수님 역시 하늘에만 계셨다면 우리가 성품을 닮기 어려웠겠지만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지 않았는가. 이처럼 조용기 목사님도 높은 단상에서 내려와 우리와 똑같은 성품을 지닌 분임을 보여줘야 청년들도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고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취재 과정에서 조 목사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었던 인물들은 그를 어떤 사람으로 묘사했는가.

“첫째, 기도의 사람이다. 해외 선교를 가서도 관광하지 않고 새벽 3시나 늦어도 5시면 일어나 사람들을 만나기 전 몇 시간씩 홀로 기도하셨다. 둘째, 겸손과 검소의 사람이다. 5년간 곁을 지킨 비서 목사의 증언에 따르면 생각 이상으로 검소하셨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소박한 된장찌개였다고 한다. 셋째, 약속에 철저한 사람이다. 결혼식 주례를 맡으면 최소 1시간 전에 미리 도착해 혼주들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새벽 기도나 해외 성회 현장에도 늘 1시간 일찍 와 계셨다. 넷째, 용서의 사람이다. 대형 교회를 이끌며 시기와 질투, 헛소문 속에서 제자나 장로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소송까지 당했음에도 ‘내가 키운 제자이자 동역자’라며 맞서 싸우거나 내친 적이 없었다. 훗날 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면 무조건 품어주셨다. 다섯째, 노력의 사람이다. 프랑스에 가면 차 안에서 프랑스어를, 독일에서는 독일어를 공부할 정도로 언어 공부에 매진하셨다. 미국 현지 목사님들과 이동하며 영자 신문 퍼즐을 맞추실 때면 현지인보다 영어 단어를 훨씬 더 많이 아실 정도로 평소 노력을 거듭하셨다.”

청년 시절 조용기 목사. ©권필름 제공

-청년 시절 무신론자였던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거듭난 일화가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가.

“70년 전의 19살 청년 조용기를 소환한 것은 훈계를 늘어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삶으로 직접 증명해 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6개월 시한부 선고와 제적이라는 절망 속에서 미래와 건강을 모두 잃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다. 일기장에 하나님을 ‘내 그림자보다 못한 놈’(영화에선 ‘존재’로 순화됨)이라 적을 만큼 신을 부정할 고통을 겪었으나, 결국 하나님을 의지해 이를 극복했다. 훈계가 아닌 삶으로 보여준 그의 궤적은 오늘날 청년들에게 깊은 공감과 도전할 용기를 줄 수 있다.”

-다큐멘터리에 나오지 않은 감독의 특별한 취재 일화가 있는가.

“조용기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1년간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며 병상에서 남긴 기도문에 ‘나는 평생 예수님의 진액을 빨아먹은 지렁이 같은 존재다’라고 적을 정도로 겸손하셨다. 투병 중에도 4차원의 영성으로 고난을 이기려 하셨고, 차남인 조민재 국민일보 회장이 건강이 회복되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묻자 ‘너와 함께 브라질로 선교를 가고 싶다’고 답할 만큼 삶이 곧 선교였다고 한다. 아들이 그의 통장과 도장을 정리해 보니 금고에는 아무것도 없고 전 재산은 7,800만 원뿐이었으며, 그마저도 제자들에게 빌린 돈을 갚고 나니 만 원도 남지 않았다. 선교 강의와 헌금으로 받은 돈을 이웃에게 다 나눠주며 사익을 취하지 않은 검소한 분이셨다.”

힘차게 달려가는 청년 조용기의 사진으로 만든 포스터. ©권필름 제공

-다큐멘터리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핵심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우나 영적으로 방황하며 스스로를 N포 세대라 부르는 다음 세대 청년들을 희망의 메시지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조용기 목사 자신도 17살에 폐결핵을 앓고 19살에 제적당한 아픔이 있기에 청년들을 누구보다 사랑하셨던 마음을 전하고자 했다. 둘째, 신유의 기적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유럽 등지에서 열린 신유 집회 전후로 현지 의사들이 신유 기적을 체험하기 전후 환자들을 직접 진찰하고 의학적 확인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간증자로 세웠다고 한다. 조 목사님 본인도 자신에게 은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낫게 하셨음을 믿음으로 선포했을 뿐이라 강조하셨다.”

대조동 천막교회 모습. ©권필름 제공

-제작 과정에서 가장 어렵고 극적이었던 순간은 언제인가.

“조 목사께서 생전 72개국을 다닌 발자취를 쫓느라 취재국이 10개국으로 늘어 3년이나 걸렸고, 만여 개의 설교 아카이브를 뒤지는 수고가 있었다.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하나님이 제작 이전부터 ‘청년 조용기’를 주제로 다루라는 마음을 주셔서 이에 따라 그의 청년 시절 행적을 쫓으려 했으나 취재 막판까지 20대 중반 천막교회 시절의 자료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아카이브실을 네 번째 방문했을 때 직원분이 우연히 꺼내준 보자기 속 낡은 노트 6권, 즉 19살이던 1955년에 쓴 일기와 편지들을 발견했다. 첫 줄의 ‘나는 벌써 두 장째 일기를 찢어버렸다’라는 문장을 발견하자 그의 청년시절 행적을 찾았다는 생각에 하나님께 바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조 목사의 치열한 번민과 절망 속에서 신을 만나 희망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담긴 가장 큰 은혜의 순간이었다.”

대조동 시절 조용기 목사가 인도한 부흥회 현장 모습. ©권필름 제공

-조용기 목사의 목회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다고 파악했는지?

“영화에 나오지 않았지만 60~70년대 산업화 시대의 계급 투쟁론과 노동자 의식화 교육 속에서, 실패와 좌절로 인해 슬럼가로 빠질 뻔했던 수많은 청년과 노동자들이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전도사나 집사를 만나 기도를 받고 복음을 접하면서 하루아침에 의식이 바뀌었다고 들었다. 30만~50만 성도를 품은 교회의 역할 덕분에 다른 선진국 대도시와 같은 극단적인 빈민 슬럼가가 우리나라에는 거의 형성되지 않았고, 노동자들이 사회에 대한 막연한 분노를 품지 않고 복음 안에서 희망과 소망을 견지하며 건전한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한편으로 조용기 목사 말년의 배임 사건이나 자녀의 일탈 등 어두운 부분을 영화에 다룬 이유는 무엇인가.

“다큐멘터리이므로 인물의 공과 사를 객관적으로 다루어야 영원한 기록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법인격 차이로 선교단체 목적 사업에 돈을 넘겨 법률상 목적 외 사용으로 배임 판결을 받았으나, 개인이 사익을 취하거나 교회에 손해를 끼친 것은 전혀 없었다. 이 부분을 투명하게 다룸으로써 언론의 조용기 목사에 대한 파렴치한 프레임이 사실이 아니며, 특히 조 목사님의 처절한 회개 장면을 통해 오히려 깊은 은혜와 존경심을 갖게 됐다는 이들이 많았다.”

-조용기 목사의 목회와 관련 기복신앙 및 맘모니즘 추구라는 비판도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장 완벽한 에덴동산을 주셨고 영·혼·육의 강건함과 환경적 축복을 누리며 살도록 만드셨다. 조용기 목사의 설교와 목회 방향 또한 영과 육, 생태와 환경까지 아우르는 온전한 ‘샬롬’을 강조하셨다. 실제 성경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유업을 믿는 우리 상속자들에게도 주기를 원하신다. 대한민국 60~70년대의 극심한 가난 속에서 성도들의 가장 절실한 요구가 생존이었기에, 조용기 목사의 가르침을 받았던 성도들의 관심이 육의 먹고 사는 문제에 쏠렸을 뿐, 조 목사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그 시대의 맞춤형 메시지였다고 본다. 그저 기복신앙으로만 비판받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생전 조용기 목사의 모습 뒤로 희망의 목회자가 적혀 있다. ©권필름 제공

-영화는 조 목사의 신앙과 삶에서 우리가 어떤 면모를 배우길 바라고 있는가?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시다’는 진리로, 과거에 희망을 주신 주님이 오늘과 내일도 변함없는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둘째, ‘눈에 보이지 않아도 예수님은 살아 역사하신다’는 4차원의 영성이다. 과학적 사고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주님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곁으로 다가와 함께 하시며, 절대 절망을 절대 희망으로 이끄시는 친구 같은 존재임을 배우게 된다.”

-가수 유열과 배우 양동근을 각각 내레이션과 청년 조용기의 목소리 연기로 섭외한 이유는 무엇인가.

“유열 전도사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신 간증이 있어 조 목사의 삶과 깊이 맞닿아 있었다. 특히 우연히 보게 된 신앙계 잡지에서 그의 간증을 통해 하나님의 확고한 사인을 느껴 섭외했다. 양동근 배우는 대중 앞에서 자신의 실패와 신앙 정체성을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밝히는 크리스천으로 유명하기에 청년 조용기 역에 적임자라 판단했다. 양동근 배우가 며칠의 고민 끝에 수락했다. 최근 시사회 현장에서 생전 조용기 목사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따라해 신선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권혁만 감독은 KBS 시사교양 PD 출신으로서 재직 당시에도 기독 다큐를 제작해왔다.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KBS 입사 6년 차에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2주간의 합숙 수련회를 통해 하나님이 확실한 소명을 부어주셨다. 외환위기 당시 시골의 한 개척교회 목회자의 일화를 다룬 다큐가 고작 시청률 1퍼센트만 나와 낙심하고 있었는데, 이를 봤던 유수 언론사 논설위원들의 찬사로 당시 KBS 사장이 성탄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프로그램이 9퍼센트의 시청률로 이어진 기적을 체험하며, 모든 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깨달았다. 이것이 10년 뒤 손양원·주기철 목사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한 씨앗이었다. 앞으로 복음을 주제로 한 생명력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길을 계속 걸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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