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백범 김구 선생이 태어난 지 150년이 되는 날이다. 1876년 8월 29일 태어난 백범은 1949년 6월 26일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품었던 꿈은 150년이 지난 오늘 오히려 우리 앞에서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다. 유네스코는 2025년 제43차 총회에서 2026년을 ‘김구 탄생 150주년 유네스코 기념해’로 공식 지정했다. 한국 인물로는 정약용, 김대건 신부에 이어 세 번째다. 유네스코가 주목한 것은 독립운동가 김구의 삶만이 아니라 그가 꿈꾼 평화와 문화의 가치였다.
마침 오늘 국민일보에는 우성규 종교부장의 「백범의 사무사」가 실렸다. ‘사무사(思無邪)’는 생각에 삿됨이 없다는 뜻이다. 백범의 삶을 돌아보면 이 말이 깊이 다가온다. 그의 생애는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미래를 향한 일관된 삶이었다.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그는 동학에 입교했고, 치하포 사건으로 투옥과 사형선고를 겪었다. 탈옥 후 마곡사에서 출가하기도 했으며, 이후 기독교를 받아들여 교육과 계몽운동에 힘썼다.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경무국장을 시작으로 내무총장·국무령을 거쳐 주석에 올랐다. 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윤봉길 의거를 이끌었고, 한국광복군 창설에도 힘을 보탰다. 해방 후에는 통일된 자주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다 암살당했다.
백범은 독립을 단순히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자주독립과 민족통일,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문화국가 건설을 함께 꿈꾸었다. 권력을 얻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사람도 아니었다. 독립된 나라가 세워진다면 자신은 가장 낮은 자리의 문지기가 되어도 좋다고 했다. 해방 이후에도 분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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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신앙 역시 삶의 장식이 아니었다. 유교와 동학, 불교를 거쳐 기독교를 받아들인 그는 「나의 소원」에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라고 고백했다. 신앙은 조국 사랑과 이웃 사랑, 희생과 책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백범을 오늘 다시 읽게 하는 가장 놀라운 대목은 정치보다 문화다. 그는 강한 나라를 원했지만 단순히 부강한 나라를 원하지 않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했다. 군사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정도면 족하고, 경제적 부강 자체가 목표는 아니었다. 남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문화의 나라를 꿈꾸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보라. K팝과 영화, 드라마, 웹툰, 음식과 한글이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백범이 1947년 「나의 소원」에서 꿈꾸었던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는 나라’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백범 탄생 150주년인 오늘, 그의 질문은 정치인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당신은 무엇을 얻기 위해 정치를 하는가, 아니면 무엇을 남기기 위해 정치를 하는가.”
진영의 승리보다 국민을, 권력보다 미래 세대를 먼저 생각하라는 물음이다.
만약 백범이 해방 직후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면 역사가 달라졌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미·소 대립과 좌우 갈등이라는 거대한 현실 앞에서 그의 뜻만으로 분단을 막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오늘도 유효하다. 대한민국은 경제 강국과 군사 강국에 머물지 않고 문화로 세계를 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강한 나라는 힘으로 남을 누르지만, 아름다운 나라는 문화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 백범이 남긴 가장 오래된 미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정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