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브리스길라의 가정교회 자리를 찾아보리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성도로 로마에 사는 것은 유익한 점이 많다. 신앙의 선배들이 남겨준 유적지를 손쉽게 방문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온 세계의 성도 중에 교회사에 관심 있는 분들은 로마를 그리워할 것이다. 핍박의 현장들이 빗지 않은 머리같이 남겨있는 현장들을 방문하여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비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로마에 거주한다는 이점은 역사적 현장을 쉽게 찾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그 유산들을 찾아보고 또 기록을 더듬어 소개하여 신앙의 도전을 주고 싶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였듯이, 유적지에 대한 글이 읽는 분들에게 도전이 되고 나 자신도 새로워지는 계기가 된다면 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싶다.
전철로 테르미니(Termini)로 가서 B 선으로 갈아타고 콜로세움을 지나, 치르코 마시모(Circo Massimo)에서 내렸다. 왼편엔 유엔의 세계 식량농업 기구(FAO)가 커다란 몸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기구는 직원이 수천 명이 일하기에 가난한 아프리카 지역에 있다면, 큰 도움이 될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대표적인 국제기구는 대부분, 선진국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많은 후원금을 부담했으니, 일부라도 빼 먹어야 한다는 의도는 아닌지 모른다.
길 건너로 로마 은행(Banco di Roma)의 본부가 있다. 현금이 많아서인지 건물도 거만한 표정이다. 보고 싶지 않은 그 건물(실은 교회당 융자 문제로 자주 찾아왔던 곳)을 오른편으로 두고 직진하면,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길(Via Prisca,11)을 만나는 데,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정상에 버티고 있는 건물이 바로 브리스길라 교회(Basilica S, Prisca)다. 오느라 수고가 많다고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것 같다.
그곳은 로마 건국의 중요한 일곱 언덕의 하나인 아벤티노(Aventino)이다. 이 지역은 로마 시대에도 그랬겠지만 지금도 부촌이다. 평범한 아파트 대신 고급스런 빌라들이 모여 있는, 겉으로 보기에도 부유한 냄새가 폴폴 나는 그런 주택지이다.
아마도 브리스길라가 귀족 출신이었기에 1세기에 이런 부촌에 거주했던 것 같다. 단순하게 교회당만 덩그렁 있는 게 아니라, 중앙에 교회당이 있고 양쪽으로는 넓은 땅과 더불어 커다란 부속 건물이 오랜 역사를 지켜왔다는 표정으로 낯선 동양인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다. 교회당 오른편의 건물 지하에는 미테라 신전에 대한 사진이 있는데, 현재는 수리 중이라서 6월에 되어서야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미테라 신전은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페르시아에서 들어온 종교로 콘스탄틴 대제도 전에 이 신을 섬겼다고 알려져 있다. 브리스길라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또한 저 아래로는 로마의 대전차 경기장인, 치르코 마시모(Circo Massimo)가 가로로 길게 누워 있다. 숨넘어가도록 달려대는 경주마들로 인해 가뜩이나 지쳐버린 표정이다. 영화 벤허에서 찰턴 헤스턴이 보여주었던 경기 장면은 그 옛날 실제로 열렸던 경기를 엿보게 한다. 보통 관중이 15만 명 이상 참석하였다고 하니, 그들이 외치는 함성은 로마를 뒤흔들었을 것이다. 그런 소리를 귓전으로 들으며 가정교회를 이끌었던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 넓은 땅과 안락한 집을 소유하고 있어 다른 귀족들처럼 많은 종들을 부리며 호사스러운 삶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브리스길라 부부는 복음을 깨달은 후, 변했다. 가치관이 새로워졌기 때문이다. 현재, 이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로마의 상류층일 것이다.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집 내부는 영화에서처럼 아름답게 꾸며져 있고, 고급 가구들로 정돈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요소들은 파티를 열고 이웃들을 초청할 때, 자랑의 요소는 되겠으나 본인에게는 전혀 새로울 게 없는 대상일 것이다. 눈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복음의 가치에 연합하여 헌신의 도구로 접목될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게 된다.
브리스길라 부부는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복음을 위해 자신의 집을 미련 없이 열어젖혔고, 모인 무리를 섬기는 일에 투자했다. 그런데 21세기에 와서 유럽인들은 선배들이 전수한 보석 같은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남자의 정장 상위 주머니에 꽂는 포켓 스퀘어(Pocket Square) 정도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복음은 내용이 빠진 형식에 안주하였고, 그것이 전부인 양 인식되었다.
그러자 공허함이 자리를 메우게 되자, 그 빈자리로 방탕, 동성애, 마약 등등, 온갖 더러운 것들이 찾아왔고, 거기서 가치를 찾으려고 발버둥 치는 어리석음을 좇게 되었다.
인생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만났던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삶을 가치 있게 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도모하는 삶을 우선하게 된다. 고로 이 시대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부부처럼, 주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것이 한 시대를 멋지게 사는 생명줄이 될 수 있다. 수많은 여행객이 브리스길라 부부가 걸었던 길을 뒷발치 치지만 그가 만난 주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헛될 뿐이다. 당신은 어떤가?
#한평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