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 족보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총(창세기 3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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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 연합교회 담임)
이선규 목사

고대 근동 지방에서 행해지던 풍습 가운데 ‘계대결혼’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형제가 자손을 남기지 못한 채 죽었을 경우, 죽은 형제의 남은 형제가 미망인과 결혼해 후손을 이어주도록 하는 제도였다.

본문을 보면 유다의 가정에 비극이 찾아온다. 유다에게는 장남 엘과 차남 오난, 셋째 아들 셀라가 있었다. 유다는 다말이라는 여인을 장남 엘과 결혼시켰다. 그러나 엘이 죽자 당시의 관습에 따라 둘째 아들 오난이 다말을 통해 형의 대를 이어야 했다.

하지만 오난은 다말에게서 태어나는 자녀가 자신의 후손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형의 대를 잇는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결국 오난도 죽게 됐다. 이제 셋째 아들 셀라가 다말과 결혼해야 했지만, 유다는 셀라마저 죽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셀라가 아직 어리다는 이유를 들어 다말에게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나 셀라가 장성한 뒤에도 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에 다말은 창녀로 변장해 유다와 동침했고, 그 결과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를 낳게 됐다.

성경 기자가 요셉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처럼 다소 충격적인 유다 가문의 사건을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다는 형제들을 떠나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지냈고, 이후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았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를 가나안 여인 중에서 택하지 말라고 당부했고(창 24:3), 이삭 역시 야곱에게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지 말라고 명했다(창 28:1). 그러나 유다는 이러한 신앙적 전통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불경건한 교제는 삶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다의 가정에서 일어난 일들은 그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오난은 형의 아내를 통해 형의 후손을 이어야 할 책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의도적으로 거부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앞세워 당시 계대결혼이 요구하던 책임을 외면했다.

유다 역시 며느리 다말과 관계를 맺는 심각한 잘못을 범했다. 인간적인 시각에서 보면 유다의 가정은 도덕적으로 온전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이처럼 허물 많고 부끄러운 역사를 가진 유다의 가문을 통해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이어가신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준다.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 가운데 사무엘이 처음부터 주목했던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택해 기름 부으셨다. 이후 다윗은 우리아를 죽게 하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는 심각한 죄를 범했지만, 그 가정에서 태어난 솔로몬이 훗날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았다.

다윗의 아버지는 이새였고, 이새의 아버지는 오벳, 오벳의 아버지는 보아스였다. 보아스는 이방 여인 룻과 결혼해 가문을 이어갔다. 룻은 모압 여인이었지만 시어머니 나오미를 끝까지 섬기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경탄할 하나님의 은혜

창세기 38장에 기록된 사건들은 인간의 부도덕과 실패, 연약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유다와 다말 사이에서 태어난 베레스가 훗날 다윗의 조상이 되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룻기 마지막 부분에는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라고 기록한 뒤 그 후손을 소개하면서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베레스는 유다 지파의 계보를 이어 다윗의 조상이 됐고, 다말 역시 그 계보에 포함됐다.

그렇다면 성경은 왜 굳이 이처럼 부끄럽고 감추고 싶을 만한 조상의 이야기를 숨기지 않았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의 완전함이나 공적, 자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은혜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인간의 가치 기준이나 완전함에 좌우되지 않는다. 인간의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는 멈추지 않고 이어진다.

예수님의 족보에 기생 라합이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라합은 이방인이었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했고,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됐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 역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있어서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게 된 것이 아니다. 유다의 가문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역시 스스로에게서 소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은혜 안에서 소망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그 은혜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인간의 불의와 실패를 뛰어넘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된다. 인간은 연약해 실수하고 범죄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로 인해 중단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실패마저 넘어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황이 어렵고 우리의 모습이 부족하다고 해서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구원하시고 품어주시며 영원한 생명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작고 가진 것이 많지 않은 민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사용하신다면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그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있다.

사람의 불의와 실패를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믿자. 그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을 잃지 말자.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속에서 믿음으로 쓰임 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하자.

#이선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