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목사의 출애굽 해석에 대한 구원론 비판적 평가

오피니언·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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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목사

출애굽 사건은 성경의 구원사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이며, 신약성경은 이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의 예표로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특히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1–4절에서 이스라엘의 홍해 통과를 “모세에게 속하여 구름과 바다에서 받은 세례”로 표현한다. 이러한 본문에 근거하여 박영선 목사는 출애굽과 홍해 통과를 구원과 연결하고, 광야생활을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성숙해 가는 과정으로 해석하는 독특한 강조점을 보여준다.

실제 공개된 박영선 목사의 설교 영상에는 광야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을 질문하면서 그들이 천국에 갔다고 답하고, 그 근거 가운데 하나로 모세 역시 그들과 함께 광야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제시하는 대목이 확인된다.

본 논문은 이러한 해석이 성도의 견인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강조한다는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출애굽 공동체 전체를 중생한 신자들의 공동체와 동일시하는 데에는 상당한 주해적·구원론적 문제가 있음을 논증한다. 특히 고린도전서 10장의 “모두”(πάντες)와 “그러나”(ἀλλά)의 대조, 히브리서 3장의 “불신앙”(ἀπιστία), 로마서 9장의 참 이스라엘과 외적 이스라엘의 구별, 그리고 개혁주의의 성례론과 가시적·불가시적 교회론을 종합할 때, 홍해라는 구원사적 사건에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든 참여자의 개인적인 중생과 최종구원의 증거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본 논문의 중심 명제는 다음과 같다. 성도의 견인은 참으로 중생한 성도의 견인이지, 언약공동체의 모든 외적 구성원에게 적용되는 자동적 구원 보장이 아니다.

I. 서론

1. 문제의 제기

성경에서 출애굽 사건은 단순한 민족해방 사건을 넘어 하나님의 구원을 대표하는 구속사적 사건이다. 이스라엘은 바로의 노예 상태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방되었으며, 유월절 어린양의 피 아래 보호받았고, 홍해를 통과함으로 애굽의 지배에서 결정적으로 벗어났다.

이러한 이유로 신약성경은 출애굽 사건을 그리스도의 구원을 설명하는 중요한 배경으로 사용한다. 특히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1–4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홍해 통과가 신약의 세례와 대응되고 출애굽이 구원을 예표한다면,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구원받은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이해한다면 이후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음행하며, 하나님을 시험하고, 끝까지 불신앙 가운데 반역하여 죽은 사람들 역시 모두 영원한 구원을 받았다고 해야 하는가?

박영선 목사는 이 문제에서 매우 강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확실성을 강조한다. 공개된 설교 영상에서 그는 광야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에 대해 천국에 갔다고 답하며, 모세 역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는 점을 그 근거 가운데 하나로 든다.

이러한 해석은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의 실패보다 크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목회적 매력이 있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된다.

첫째, 출애굽의 역사적 구원을 개인의 중생 및 영원한 구원과 완전히 동일시할 수 있는가?
둘째, 홍해에서 “세례받았다”는 표현을 모든 사람의 중생의 증거로 이해할 수 있는가?
셋째, 히브리서가 광야세대의 실패를 “불신앙”으로 규정하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넷째, 광야에서 죽었으나 분명한 신앙인이었던 모세의 경우를 불신앙과 우상숭배 가운데 죽은 광야 세대 전체에 일반화할 수 있는가?

본 논문은 이 질문들을 개혁주의 구원론, 성례론, 교회론의 관점에서 검토하고자 한다.

II. 박영선 목사의 출애굽 구원론의 구조

박영선 목사의 성경 해석에서 두드러지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구원과 성화를 구별하면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주권성과 확실성을 강하게 강조한다는 점이다.

그의 여러 설교와 신학적 평가자료에서도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이후 가나안으로 향하는 과정이 신자의 구원 이후의 성숙과 훈련이라는 방식으로 자주 설명된다. 박영선 목사의 설교신학을 연구한 자료 역시 그가 홍해를 건넌 이후의 이스라엘 여정을 신자의 성화와 연결하여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특징을 지적한다.

이를 도식화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애굽 → 홍해 → 광야 → 가나안. 그리고 구원론적으로는
죄의 종살이 → 구원 → 성화와 훈련 → 성숙과 책임 이라는 구조가 된다. 이 구조 자체는 상당 부분 성경적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다음 단계이다. 출애굽과 홍해가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의미한다면, 광야에서 발생하는 모든 실패는 구원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의 성숙 여부의 문제가 된다.

이 논리를 끝까지 밀고 가면 광야에서 우상숭배와 불순종 때문에 죽은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구원 자체를 잃은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육체적으로 죽은 것으로 해석하게 된다.

박영선 목사가 광야에서 죽은 백성의 천국 여부를 긍정적으로 답하면서 모세를 근거로 제시하는 것도 이러한 구원론적 틀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성도의 견인과 언약공동체 전체의 구원을 구별해야 할 필요가 발생한다.

III. 고린도전서 10장 1–5절의 주해

1. “모두”(πάντες)의 반복

고린도전서 10장 1–4절에서 바울은 의도적으로 “다”, 곧 πάντες를 반복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 구름 아래 있었으며,
다 바다 가운데로 지나갔고,
다 모세에게 속하여 세례받았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었고,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

따라서 바울은 출애굽 공동체가 동일한 객관적 언약의 특권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곧바로“모두 동일하게 중생했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다음 절 때문이다.

2. “그러나”(ἀλλά)의 결정적인 의미

고린도전서 10장 5절은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앞의 “모두”와 5절의 “그러나”가 바울의 논리를 결정한다. 바울의 논리는 모두 은혜의 특권을 받았다 → 그러므로 모두 최종적으로 구원받았다가 아니다. 오히려 모두 동일한 언약적 특권에 참여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 대부분을 기뻐하지 않으셨다 이다. 따라서 1–4절의 성례적 언어를 모든 참여자의 내적 중생으로 해석하면 5절의 반전이 약화된다.

IV. 고린도전서 10장 6–12절의 목적: 위로인가 경고인가

바울은 광야세대의 역사를 소개한 이유를 6절에서 명시한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리고 이어서 네 종류의 죄를 열거한다.

첫째, 우상숭배이다.
둘째, 음행이다.
셋째,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것이다.
넷째, 원망과 반역이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칼빈은 고린도전서 10장 6–12절을 해설하면서 이 사건들이 신약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심판의 “그림”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바울의 목적이 이스라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 신약의 성도들이 동일한 죄를 두려워하도록 하는 데 있다고 해석한다.

특히 칼빈은 고린도전서 10장 11절을 주해하면서 우상숭배자들과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 이 역사적 사건들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신약시대라고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악용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죄를 무시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바울이 이 사건을 언급한 목적은 “저들이 그렇게 범죄했지만 결국 다 구원받았다”고 고린도교회를 안심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그들과 같이 되지 말라.”

그리고 최종 결론이 나온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0장의 중심 기능은 무조건적 안심이 아니라 언약공동체를 향한 엄중한 경고이다.

V. 홍해의 ‘세례’와 개인의 중생은 동일한가?

여기에서 개혁주의 성례론이 중요한 해석의 기준을 제공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7장 1항은 성례를 은혜언약의 “표와 인”으로 설명하며, 표징과 그것이 가리키는 실체 사이에는 성례적 관계가 있다고 가르친다. 동시에 성례의 효력이 성례 자체 안에 내재되어 자동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사역과 하나님의 약속에 달려 있다고 명시한다.

특히 28장 5항은 결정적인 원칙을 제시한다. 세례와 은혜와 구원이 불가분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세례받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중생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를 명시적으로 부정한다.

이 원리를 고린도전서 10장에 적용하면 매우 중요한 결론이 나온다. 홍해 통과를 바울이 “세례”라고 부른다는 사실은 그 사건이 하나님의 언약적 구원의 표지라는 사실을 증명하지만, 그 사건에 외적으로 참여한 모든 사람의 중생을 자동적으로 증명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세례의 표지에 참여함이 반드시 중생함은 아니다. 그러므로 홍해를 건넜다 → 세례를 받았다 → 따라서 모두 중생했다 → 따라서 광야에서 우상숭배하다 죽어도 모두 천국에 갔다, 라는 박영선 목사의 논리는 개혁주의 성례론의 원리와 맞지 않는다.

VI. 외적 언약공동체와 참된 이스라엘

이 문제의 또 하나의 중요한 성경적 해석원리는 로마서 9장 6절이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여기에서 바울은 외적으로 이스라엘에 속하는 것과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는 참된 이스라엘을 구별한다.

이 원리를 출애굽 공동체에도 적용할 수 있다. 출애굽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의 외적인 구성원이었다.

모두 홍해를 건넜다.
모두 만나를 먹었다.
모두 반석에서 나온 물을 마셨다.
모두 모세의 지도 아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구성원이 동일하게 참된 믿음과 중생을 소유했다는 뜻은 아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교회론 역시 이와 유사한 구별을 한다. 가시적 교회는 참된 종교를 고백하는 자들과 그 자녀들로 구성되지만, 지상에서 가장 순수한 교회조차 혼합과 오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고 고백한다.

따라서 언약공동체의 외적 구성원과 구원의 내적 실체에 참여하는 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개혁주의 교회론의 기본원리이다.

VII. 히브리서 3장의 증언: 광야세대의 근본 문제는 불신앙이었다

박영선 목사의 해석에 가장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본문은 히브리서 3장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출애굽한 광야세대를 직접 언급한다.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그리고 그들의 가나안 입성 실패에 대한 최종적인 신학적 평가를 다음과 같이 내린다.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여기에서 사용되는 핵심 개념이 ἀπιστία, 곧 불신앙이다.

히브리서는 광야세대의 실패를 단순히 “구원받은 성도가 성숙에 실패했다”는 차원에서만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 가운데 드러난 반역의 근원을 믿지 않음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히브리서 4장 1절에서는 이것을 신약교회에 직접 적용하여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고 경고한다.

따라서 광야세대 전체를 처음부터 중생한 성도들로 전제하고, 그들의 우상숭배와 반역을 전적으로 성화의 실패라는 범주에 넣기는 어렵다.

VIII. 모세의 경우를 광야세대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가?

박영선 목사의 논증에서 특별히 검토해야 하는 것이 모세의 사례이다. 모세는 분명 광야에서 죽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이유도 그의 범죄와 하나님의 징계였다. 그러나 모세가 구원받지 못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히브리서 11장은 모세를 명백히 믿음의 사람 가운데 포함시키며, 변화산 사건에서는 모세가 엘리야와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난다. 따라서 다음 명제는 확실히 성립한다.

“광야에서 죽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그 사람이 영원히 멸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 점에서 박영선 목사의 강조는 옳다. 그러나 여기서 다음 명제로 넘어가면 문제가 발생한다. “모세도 광야에서 죽었으나 구원받았다. 따라서 광야에서 죽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도 구원받았다.” 이 결론은 논리적으로 따라오지 않는다.

모세 한 사람의 사례는 “광야에서의 육체적 죽음 = 영원한 멸망”이라는 등식을 깨뜨릴 수는 있지만,“광야에서 죽은 사람 = 모두 영원한 구원을 얻음”이라는 반대의 등식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모세에 대해서는 성경 자체가 참된 믿음을 적극적으로 증언한다. 반면 광야세대 가운데 상당수에 대해서는 성경이 불신앙, 우상숭배, 음행, 완고함과 반역을 강조한다. 따라서 서로 다른 영적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단순히 “광야에서 함께 죽었다”는 공통점만으로 동일한 구원론적 범주에 넣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이다.

IX. 우상숭배와 구원의 문제

이 해석의 가장 심각한 신학적 문제는 우상숭배와 연결할 때 나타난다. 고린도전서 10장 7절은 말한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그리고 14절에서 다시 명령한다.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고린도전서 6장 9–10절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우상숭배하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도 우상숭배를 육체의 일 가운데 포함시키면서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따라서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구별이 필요하다. 참된 신자가 심각한 죄에 일시적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과 회개하지 않는 우상숭배가 최종 구원과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주장이다. 개혁주의는 전자는 인정하지만 후자는 인정하지 않는다.

X. 성도의 견인에 대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가르침

박영선 목사의 해석에서 가장 가치 있는 부분은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쉽게 취소되는 것이 아니라는 강조이다. 이것은 개혁주의 성도의 견인 교리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7장 1항은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받아들이시고,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신 사람들은 은혜의 상태에서 완전히 또는 최종적으로 떨어질 수 없으며 끝까지 견인하여 영원히 구원받는다고 고백한다.

또한 17장 3항은 참된 성도도 사탄의 시험, 세상의 유혹, 자신 안에 남아 있는 부패 때문에 심각한 죄에 빠질 수 있으며 한동안 그 죄 가운데 머물 수도 있다고 가르친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 성령을 근심하게 함, 은혜와 위로의 감소, 양심의 상처와 현세적 심판을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박영선 목사의 강조는 정당하다. 참된 신자가 범죄했다고 해서 즉시 구원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하나님의 징계로 육체적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만으로 영원히 버림을 받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문제는 성도의 견인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견인의 대상이 누구인가이다. 웨스트민스터 17장 1항이 말하는 견인의 대상은 세례받은 모든 사람도 아니며, 교회명부에 있는 모든 사람도 아니며, 언약공동체에 외적으로 참여한 모든 사람도 아니다. 그 대상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효과적으로 부르심 받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된 사람들이다.

따라서 먼저 광야세대 전체가 이러한 의미에서 참으로 중생한 성도였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그들에게 성도의 견인 교리를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을 성경이 입증하지 않는다. 오히려 히브리서는 그들 가운데 불신앙이 존재했다고 증언한다.

XI. 칼빈의 고린도전서 10장 이해

칼빈은 이 문제에서 매우 균형 잡힌 위치를 보여준다. 그는 구약 이스라엘을 단순한 그림자나 가짜 교회로 보지 않는다. 고린도전서 10장 11절을 해설하면서 그는 이스라엘이 신약교회의 모형이면서 동시에 그 시대의 실제 교회였다고 강조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약속은 복음을 포함하고 있었고, 그들의 성례 역시 단순한 빈 상징이 아니라 실제적인 성례였으며, 그것을 바르게 사용한 사람들은 신약의 성도들과 동일한 믿음의 영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칼빈은 “구약의 성례는 아무 효력이 없었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 성례적 특권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모든 개인의 구원을 자동적으로 보장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린도전서 10장의 하나님의 심판을 신약교회에 적용하며, 하나님이 우상숭배자와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의 죄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는 교훈을 강조한다.

따라서 칼빈의 해석에서 중요한 원리는 다음과 같다. 언약과 성례는 실제적인 은혜의 수단이다. 그러나 그 외적 표지를 받은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그 실체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후대 개혁주의 성례론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XII. 박영선 해석의 장점

공정한 신학적 평가는 비판 대상의 장점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박영선 목사의 해석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장점이 있다.

첫째, 구원을 인간의 공로와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두려는 강조가 강하다.
둘째, 구원과 성화를 혼동하지 않는다.
셋째, 성도가 심각하게 실패했다고 해서 곧바로 그 사람의 구원을 부정하는 율법주의적 신앙관을 경계한다.
넷째, 광야를 단순히 실패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다루고 훈련시키시는 장소로 이해한다.
다섯째, 하나님의 징계와 영원한 정죄를 구별하려는 시도는 성경적으로 필요한 구별이다.

이러한 강조들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이 참된 성도가 심각한 죄에 빠질 가능성과 하나님의 현세적 징계를 동시에 인정하는 것과 상당 부분 조화를 이룬다. 따라서 박영선의 출애굽 해석 전체를 단순히 비성경적이라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XIII. 그러나 박영선 해석이 넘어서는 안 되는 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남는다.

1. 객관적 구원사건과 개인의 중생을 지나치게 동일시할 위험

출애굽은 명백히 하나님의 구원사건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사건에 외적으로 참여했다는 것과 개인이 영원한 구원의 실체를 소유했다는 것은 동일한 명제가 아니다.

2. 성례의 외적 참여와 내적 은혜를 동일시할 위험

홍해를 세례로 보는 것은 바울 자신의 해석이다. 그러나 세례받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중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개혁주의 성례론이다. 따라서 홍해의 세례를 광야세대 전원의 중생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3. 박영선의 주장은 히브리서의 ‘불신앙’ 규정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함

히브리서는 광야세대의 근본문제를 단지 성화의 미성숙이 아니라 “믿지 않음”으로 규정한다.
이것은 단순히 상급을 잃거나 성숙에 실패한 신자를 묘사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언어이다.

4. 모세를 광야세대 전체로 일반화하는 문제

모세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구원받았다는 사실은 광야의 죽음이 곧 영원한 멸망이라는 등식을 부정한다. 그러나 광야에서 죽은 모든 사람의 천국행을 증명하지 않는다.

5. 바울의 경고 기능을 약화시킬 가능성

고린도전서 10장은 고린도교회를 안심시키기 위한 본문이 아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우상숭배, 음행, 하나님을 시험함, 원망, 심판을 보여준 뒤,“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결론짓는다.

칼빈도 이 본문을 하나님의 심판을 신약교회 앞에 보여주는 실제적 경고로 해석하였다. 따라서“이스라엘도 이렇게 범죄했지만 결국 모두 천국에 갔다”를 본문의 중심 메시지로 만들 경우 바울의 경고구조가 상당 부분 약화된다.

XIV. 개혁주의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대안적 해석

따라서 출애굽과 광야 사건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것이 성경 전체와 개혁주의 신학에 더 조화롭다.

1. 출애굽

하나님의 객관적인 구원의 행동이며 장차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구원의 위대한 예표이다.

2. 홍해

바울 자신의 해석에 따라 세례적 사건이며 이전 주권 아래 있던 백성이 모세에게 속한 새로운 언약공동체로 들어가는 사건이다.

3. 만나와 반석

하나님께서 언약백성에게 베푸시는 실제적인 은혜와 성례적 특권을 나타낸다.

4. 광야

언약백성의 믿음이 시험되고 그 실제 상태가 드러나는 장소이다.

5. 가나안

역사적으로는 약속의 땅이며, 히브리서의 발전된 해석에서는 궁극적인 하나님의 안식을 가리키는 예표적 성격을 가진다.

그러나 이 구조 안에서 반드시 다음과 같은 구별을 유지해야 한다. 언약공동체 전체와 그 안에서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는 동일하지 않다. 따라서 광야에서 죽었다고 해서 모두 멸망했다고 말해서도 안 되지만, 반대로 출애굽하고 홍해를 건넜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중생하여 영원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XV. 성도의 견인과 경고본문은 어떻게 조화되는가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남는다. 참된 성도는 반드시 견인한다면 고린도전서 10장과 히브리서 3장의 엄중한 경고가 왜 필요한가?

개혁주의 신학에서 대답은 매우 중요하다. 경고는 성도의 견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도를 견인시키시는 수단 가운데 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택자를 끝까지 보존하신다. 그러나 그 보존은 인간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권면, 책망, 징계, 교회의 권징, 그리고 배교에 대한 엄중한 경고 등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끝까지 믿음 안에 붙드신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역시 성도의 견인을 인간의 자유의지나 자기보존 능력에 두지 않고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선택의 작정, 그리스도의 중보, 성령의 내주와 은혜언약의 확실성에 근거시킨다. 동시에 성도가 심각한 죄에 빠질 가능성과 하나님의 징계를 분명하게 인정한다.

그러므로 개혁주의의 성도의 견인은 “한번 구원받았으니 어떻게 살아도 천국 간다”는 값싼 영원구원론이 아니다. 오히려“하나님께서 참으로 중생시킨 사람은 경고와 징계와 은혜의 수단을 통하여 결국 끝까지 믿음 안에 붙드신다”는 교리이다.

XVI. 종합적 평가

이제 박영선 목사의 해석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가 강조하려는 신학적 중심, 곧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고 인간의 실패가 하나님의 구원을 무효화하지 못한다는 것은 개혁주의 구원론과 조화를 이룬다. 또한 모세의 경우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현세적 징계와 영원한 정죄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도 정당하다.

그러나 이 원리를 출애굽한 모든 광야세대에게 적용하여 그들은 모두 이미 구원받았으며 우상숭배와 불신앙 가운데 죽은 자들까지 모두 천국에 들어갔다고 일반화하는 데에는 충분한 성경적 근거가 없다.

오히려 고린도전서 10장은 동일한 성례적·언약적 특권을 받은 공동체 안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보여주며, 히브리서 3장은 그들의 문제를 “불신앙”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박영선 목사의 해석에서 수정되어야 할 부분은 성도의 견인 교리 자체가 아니라 견인의 대상에 대한 규정이다. 이를 가장 간결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박영선 목사의 해석에서 신학적 문제는 ‘성도의 견인’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이 아니라, 참된 중생자에게 적용되어야 할 견인의 원리를 광야의 외적 언약공동체 전체에 확대 적용한 데 있다.

XVII. 결론

출애굽은 구원의 위대한 예표이다. 홍해 통과는 바울 자신이 세례라고 부르는 성례적 사건이다. 만나와 반석은 하나님의 언약적 은혜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객관적 은혜의 특권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반드시 그 은혜의 구원론적 실체를 소유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다음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출애굽 = 모든 개인의 중생
홍해 통과 = 모든 개인의 영원한 구원
광야에서의 죽음 = 모두 구원받은 성도의 징계

성경은 훨씬 더 복합적인 그림을 제시한다. 언약공동체에는 참된 신자와 불신앙자가 함께 존재할 수 있다. 성례의 표지는 실제적이지만 표지를 받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표지가 가리키는 실체를 소유한 것은 아니다.

참된 성도는 심각하게 실패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끝까지 보존하신다. 그러나 지속적인 불신앙과 우상숭배는 결코 구원의 안전성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가 아니다.

따라서 고린도전서 10장의 메시지는 “홍해를 건넜으므로 이제 무슨 일을 해도 안전하다”가 아니라, “그토록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이스라엘에게 일어난 일을 보라. 그러므로 너희도 우상숭배와 불신앙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끝까지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라”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고는 성도의 견인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끝까지 견인하시는 은혜의 수단이다. 그러므로 개혁주의적으로 이 문제를 가장 정확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성도의 견인은 참된 신자의 견인이지 언약공동체 모든 구성원의 자동구원이 아니다. 세례의 표지에 참여했다는 것과 중생의 실체를 소유했다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출애굽은 하나님의 객관적인 구원을 예표하지만, 출애굽한 모든 개인의 영원한 구원을 자동적으로 선언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Calvin, John. Commentary 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Commentary on 1 Corinthians 10.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칼빈은 고린도전서 10장의 광야 사건을 신약교회 앞에 제시된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의 실제적 사례로 해석하면서, 구약 이스라엘을 실제 교회이자 동시에 신약교회의 모형으로 이해한다.

The Orthodox Presbyterian Church.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Chapters 17, 25, 27, 28. 성도의 견인의 대상, 가시적 교회의 혼합성, 성례의 표와 실체의 관계, 그리고 세례받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중생한 것은 아니라는 개혁주의 원칙을 규정한다.

박영선. 광야세대의 구원과 모세에 관한 설교 발언. 공개된 CBS 영상 자료에서 광야에서 죽은 사람들의 천국 여부를 긍정적으로 답하며 모세의 경우를 근거 가운데 하나로 제시한다.

박영선 관련 설교신학 연구자료. 홍해 이후의 이스라엘 여정을 구원받은 신자의 성화와 성숙이라는 틀 안에서 설명하는 박영선 설교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주요 성경본문

출애굽기 12–14장; 32장
민수기 14장; 20장; 21장
신명기 1장
시편 95:7–11
로마서 9:6–8
고린도전서 6:9–11
고린도전서 10:1–14
갈라디아서 5:19–21
히브리서 3:7–19
히브리서 4:1–11
히브리서 11:23–29

김선우 목사
새하늘교회 담임
예장 합신 전 동성애대책위원장
복음법률가회 운영위원
모든성경의 신적권위수호운동협회(성수협)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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