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이 찾으시는 열매
본문
이사야 5장 1~7절
서론
씨앗을 뿌린 후 농부가 기다리는 것
지난 2주 동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삶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말씀을 통해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지지난주 시편 65편에서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의 마음 밭을 기경하시는 분이심을 배웠습니다. 굳어진 마음을 갈아엎으시고 은혜의 단비를 내리셔서 말씀이 뿌리내릴 수 있는 밭으로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 같은 말씀이 선포되어도 마음 밭의 상태에 따라 열매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길가와 돌밭, 가시떨기에서는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좋은 땅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의 마음을 기경하시고, 왜 말씀의 씨앗을 심으셨을까요? 농부가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바로 열매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인 이사야 5장 1~7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어떤 열매를 기대하셨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신학자들은 이 본문을 ‘포도원의 노래(Song of the Vineyard)’라고 부릅니다. 겉으로는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처럼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탄식과 심판으로 끝나는 매우 슬픈 노래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 삶에서 찾으시는 열매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며, 혹시 우리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포도가 아니라 들포도를 맺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론
1.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 (이사야 5:1~2)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사 5:1)
이사야는 마치 한 편의 사랑 노래를 부르는 시인처럼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연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리고 그 사랑이 어떻게 안타까운 탄식으로 바뀌게 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님의 노래입니다. 본문에서 ‘사랑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며, ‘포도원’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 오늘날로 말하면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 포도원을 어디에 심으셨습니까? 본문은 “심히 기름진 산”이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가나안의 비옥한 지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마련하신 최상의 은혜와 언약의 자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강한 손과 편 팔로 구원하셨습니다(출 6:6; 신 26:8). 광야에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먹이시며 굶주리지 않게 하셨고(출 16:13~15, 35),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며 보호하셨습니다(출 13:21~22).
시내산에서는 언약을 세우시고 율법을 주셔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길을 가르쳐 주셨으며(출 19:5~6), 성막과 성전을 허락하셔서 언제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출 25:8). 또한 선지자들을 보내 끊임없이 회개를 촉구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들려주셨습니다(대하 36:15~16).
사도 바울도 이스라엘이 받은 은혜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롬 9:4) 하나님께서는 열매를 맺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필요한 모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백성의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열매를 맺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모든 은혜를 공급하고 계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더 많은 조건이 아니라 그 은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2절은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위해 얼마나 세심하게 준비하셨는지를 다섯 가지 동사로 보여 줍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를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사 5:2)
첫째, “땅을 파서.” 굳은 땅을 갈아엎어 뿌리가 깊이 내릴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완고한 마음을 말씀과 성령으로 기경하시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둘째, “돌을 제하고.” 가나안 땅에는 돌이 많았습니다. 농부는 뿌리의 성장을 방해하는 돌을 하나씩 골라냈습니다. 우리 안에도 교만과 욕심, 상처와 죄의 습관이라는 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제거하시며 우리를 다듬으십니다.
셋째,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생명의 말씀을 심어 주셨습니다. 문제는 씨앗이 아니라 그 씨앗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삶입니다.
넷째, “망대를 세웠고.” 망대는 포도원을 보호하는 파수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오늘도 말씀과 성령으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다섯째, “술틀을 팠도다.” 아직 열매도 맺히지 않았는데 술틀부터 만들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셨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실패를 예상하고 포도원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좋은 열매를 확신하며 모든 준비를 마치셨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은 너무도 충격적입니다.
“좋은 포도를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령을 주셨습니다. 교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예배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은 이미 다 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더 많은 은혜가 아니라 열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성껏 가꾸신 포도원에서는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열매는 무엇이었으며, 왜 하나님은 그 열매를 ‘들포도’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이어지는 말씀 속에 나타납니다.
2. 들포도의 비극 : 하나님이 기대하신 열매와 이스라엘이 맺은 열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성껏 가꾸신 포도원에서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본문은 그 충격적인 결말을 단 한 문장으로 기록합니다. “좋은 포도를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사 5:2) 여기서 ‘들포도’는 히브리어 ‘베우심(Be'ushim)’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맛이 떨어지는 포도가 아니라, 부패하여 먹을 수 없고 악취를 풍기는 야생 포도를 의미합니다.
이 장면을 농부의 마음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한 해 동안 밭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고, 포도나무를 심고, 망대를 세워 밤낮으로 지켰습니다.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며 술틀까지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확의 계절이 되어 손에 쥔 것은 향기로운 포도가 아니라 버려야 할 들포도였습니다.
그 순간 농부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단순한 실망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쏟아부은 수고가 허사가 된 슬픔이며, 기대가 무너진 깊은 탄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곧바로 심판을 선언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백성을 법정으로 부르십니다.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사 5:3)
여기서 ‘사리를 판단하라’는 말은 단순히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법정에서 옳고 그름을 판결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마치 재판장이면서도 원고가 되어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잘못했느냐? 내가 포도원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직접 판단해 보아라.”
이어지는 4절은 하나님의 변론입니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사 5:4) 이 말씀은 책망 이전에 하나님의 절절한 호소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않았느냐?” “내가 너희를 지키지 않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씀을 주지 않았느냐?” “내가 해야 할 일을 남겨 둔 것이 있었느냐?”
결국 문제는 농부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포도원이었고, 문제는 열매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시 물으십니다. “내가 좋은 포도를 기대했는데, 어찌하여 들포도를 맺었느냐?”
3. 하나님이 찾으시는 열매 : 정의와 공의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7절에 나옵니다. 7절은 이사야 5장 전체를 마무리하는 결론이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열매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핵심 말씀입니다.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사 5:7)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좋은 포도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정의(미쉬파트, Mishpat)였습니다. 정의는 사람과 사회를 공정하게 세우는 바른 질서입니다. 약자를 보호하고, 거짓과 불의를 바로잡으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둘째는 공의(쩌다카, Tzedakah)였습니다. 공의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신실하며,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거룩한 인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열매 대신 전혀 다른 열매가 맺혔습니다. 이사야는 이를 놀라운 히브리어 언어유희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미쉬파트(정의)’를 기대하셨는데, 돌아온 것은 ‘미스파흐(포학)’였습니다. 하나님은 ‘쩌다카(공의)’를 바라셨는데, 들려온 것은 ‘쩌아카(부르짖음)’였습니다. 발음은 매우 비슷하지만 의미는 정반대입니다.
겉으로는 신앙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삶에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아니라 전혀 다른 열매를 맺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기대하셨지만 힘 있는 자들은 약자를 억압했고, 공의를 바라셨지만 사회 곳곳에서는 억울한 사람들의 탄식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신 것은 성전의 찬양 소리가 아니라, 상처받은 이웃들의 울음소리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열매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종교적인 외형보다 삶의 열매를 보십니다. 주일의 예배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더욱 기뻐하시는 것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삶입니다. 가정에서는 사랑과 용서의 열매를, 직장에서는 정직과 책임의 열매를, 사업에서는 신실함의 열매를, 이웃에게는 긍휼과 배려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삶에서는 어떤 향기가 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향기입니까? 아니면 아직도 이기심과 탐욕, 거짓과 상처를 남기는 들포도의 냄새입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삶에서 정의와 공의의 열매를 찾고 계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열매의 모양이 아니라 열매의 본질을 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끝내 거부한 포도원에는 마침내 공의로운 심판이 선포됩니다.
4. 들포도를 맺은 포도원의 운명 (이사야 5:5~6)
이제 하나님은 들포도만을 맺은 포도원에 대해 공의로운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가시와 찔레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사 5:5~6)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심판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점차 거두시는 과정으로 나타납니다. 먼저 울타리를 거두십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자 포도원은 외부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다음으로 담을 허무십니다. 더 이상 대적을 막을 수 없게 되고, 포도원은 짓밟히기 시작합니다.
이어 하나님은 농부의 손길을 거두십니다. 가지를 다듬지 않고 잡초도 제거하지 않으십니다. 그 결과 가시와 찔레가 무성하게 자라 포도원은 황폐해집니다. 마지막으로 하늘의 비마저 내리지 않게 하십니다. 생명을 살리는 은혜가 끊어지자 포도원은 완전히 메마르게 됩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이 말씀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고, 유다 백성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었으며, 아름답던 포도원은 황폐한 땅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마음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즐거워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심판은 회개하지 않는 삶이 맞이하는 결과이며, 동시에 백성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시는 마지막 사랑의 경고입니다.
성경은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문을 닫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가 눈물로 회개했을 때 주님은 그를 다시 세우셨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메뚜기가 먹은 햇수를 갚아 주시겠다”(욜 2:25)고 약속했고, 에스겔은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겠다”(겔 36:25~26)고 선포했습니다.
오늘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에게는 무너졌던 울타리가 다시 세워지고, 메마른 심령에는 은혜의 단비가 내리며, 잃어버린 열매가 다시 맺히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5. 어떻게 좋은 포도를 맺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포도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안에는 여전히 죄성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정의와 공의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사야의 탄식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한 해답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1, 5) 이사야 5장의 포도원은 하나님을 실망시킨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5장의 참포도나무는 실패하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노력이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참포도나무를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가지는 줄기에 붙어 있을 때만 생명을 공급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 안에 거할 때만 성령의 능력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 안에 거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날마다 마음을 기경해야 합니다. 회개는 한 번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평생 계속되는 삶입니다. 교만과 욕심, 미움과 상처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갈아엎으시도록 맡겨야 합니다.
둘째,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씨앗이 좋은 땅에 뿌리를 내려야 열매를 맺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은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이어질 때 열매가 됩니다.
셋째, 삶의 현장에서 정의와 공의를 실천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사랑으로, 직장에서는 정직으로, 사업에서는 신실함으로, 이웃에게는 긍휼과 배려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열매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갈 5:22~23) 참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결론
지난 두 주 동안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기경하셨습니다. 말씀의 씨앗도 심어 주셨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나는 열매를 기다린다.” 하나님은 우리의 직분보다 열매를 보십니다. 경력보다 열매를 보십니다. 말보다 삶을 보십니다. 주일의 예배도 중요하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가꾸시고, 여전히 말씀의 씨앗을 심으시며, 여전히 아름다운 열매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포도나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날마다 거하십시오. 성령께서 공급하시는 생명으로 정의와 공의의 열매를 맺고, 사랑과 거룩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십시오.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바라보시며, “그래, 내가 기다리던 열매가 바로 이것이구나”라고 기쁨으로 말씀하시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열매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날마다 기경하여 주시고, 참포도나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늘 거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 속에서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며,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옵소서. 주일의 예배뿐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삶에서도 정직과 사랑, 신실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고,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누군가에게 상처와 탄식이 아니라 위로와 소망을 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우리의 삶을 돌아보실 때, 기뻐 받으시는 좋은 열매를 드리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