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호 목사의 영혼의 양식 61] 무너진 인생을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

오피니언·칼럼

 

제목
무너진 인생을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

 

성경
시편 147편 1~20절

서론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앞에서 주저앉기도 하고, 질병으로 인해 삶의 의욕을 잃기도 합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 관계가 깨어질 때도 있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서 홀로 눈물을 흘릴 때도 있습니다.

오늘날은 과학과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시대입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을 대신하고, 의학은 수많은 질병을 치료하며, 우리는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문명이 발전해도 인간의 상한 마음과 영혼의 공허함까지 치유하지는 못합니다. 돈도, 명예도, 성공도 깨어진 영혼을 회복시키지는 못합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편 147편은 놀라운 소망을 전합니다. 이 시편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의 찬양입니다.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우시고, 흩어진 백성을 모으시며, 절망 가운데 있던 민족을 다시 일으키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에는 매우 중요한 두 모습의 하나님이 동시에 나타납니다. 한편으로 하나님은 수많은 별을 창조하시고 이름까지 부르시는 전능하신 창조주이십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상심한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상처를 싸매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가장 크신 하나님께서 가장 작은 눈물까지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세 가지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둘째, 하나님은 누구를 기뻐하시는가? 셋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고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1~6절)

1절부터 3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무너진 공동체를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입니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너진 성을 다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공동체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둘째는 흩어진 백성을 다시 모으시는 하나님입니다. 포로로 끌려갔던 백성들은 절망 속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불러 모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셨습니다. 셋째는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여기서 ‘상심한 자’는 단순히 낙심한 사람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원어는 산산조각 난 그릇처럼 마음이 완전히 깨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예루살렘의 성벽보다 백성들의 마음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아무리 도시가 다시 세워져도 사람의 마음이 무너져 있다면 진정한 회복이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보다 먼저 우리의 마음을 만지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경제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건강만 회복되면, 직장만 좋아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내면을 새롭게 하십니다. 환경의 변화보다 마음의 회복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시는 가장 위대한 의사이십니다.

이어지는 4절과 5절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인간은 하늘의 별을 다 셀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별 하나하나를 아시고 이름까지 부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이름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형편과 눈물, 기도와 한숨까지 모두 알고 계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인생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세상은 사람의 능력과 성공을 바라보지만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먼저 바라보십니다. 그래서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세상은 강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붙드십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면 됩니다.

오늘날 상담심리학에서도 인간의 회복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알프레드 아들러 역시 열등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성장의 동력으로 삼을 때 사람은 더욱 성숙해집니다.

성경은 그보다 더 깊은 해답을 제시합니다. 인간의 참된 회복은 자기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상처를 가장 잘 아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하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에도 무너진 영역이 있습니까? 사람은 몰라줄지라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사람은 외면할지라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별들의 이름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이름도 부르고 계십니다. 상한 마음을 싸매시고 다시 일으키시는 회복의 하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의 삶을 새롭게 세우실 줄 믿습니다.

Ⅱ. 하나님은 누구를 기뻐하시는가?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시편 147:7~11)

첫 번째 단락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고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시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는지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7절입니다.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감사와 찬양의 순서입니다. 우리는 문제가 해결되면 감사하려고 합니다. 형편이 좋아지면 찬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먼저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감사는 형편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신실하게 돌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8절과 9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시인은 특별한 기적보다 하나님의 일상적인 섭리를 바라봅니다. 비가 내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풀이 자라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동물들이 먹이를 얻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홍해가 갈라지는 것만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매일 아침 태양이 떠오르고, 계절이 바뀌며, 생명이 자라나는 것 역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특별히 시인은 우는 까마귀 새끼를 언급합니다. 까마귀는 유대인들에게 깨끗하지 않은 새로 여겨졌습니다. 더욱이 부모에게조차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까마귀 새끼는 가장 연약한 존재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작은 울음소리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하나님께서 까마귀 새끼도 돌보신다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를 얼마나 더 사랑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감사는 큰 기적을 경험한 사람만의 고백이 아닙니다. 오늘도 나를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어서 세상의 가치관을 뒤집는 말씀을 선포합니다.

10절입니다.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당시 말은 군사력과 국가의 힘을 상징했습니다. 사람의 다리는 인간의 체력과 능력, 권력을 의미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학벌과 재산, 지위와 경력, 능력과 인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외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겉모습을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11절은 하나님의 기준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경외란 단순히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내 삶의 가장 높은 자리에 모시고, 말씀을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사람입니다. ‘인자하심’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 곧 ‘헤세드’를 의미합니다. 자신의 능력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강한 사람을 높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높이십니다.

오늘날 상담심리학에서도 회복력은 자신의 능력만을 믿는 사람보다, 자신보다 더 큰 존재와 건강하게 연결된 사람에게서 높게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연결의 대상이 분명하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참된 힘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느새 세상의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나는 가진 것이 없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부족하다” “나는 저 사람처럼 성공하지 못했다” 이러한 비교는 결국 열등감과 낙심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조건을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끝까지 붙드는 사람입니다. 약할 때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눈물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사람, 환경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낙심하고 있습니까? 세상은 우리의 스펙을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세상은 결과를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살피십니다. 그러므로 비교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늘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보십시오. 그 믿음 위에 서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붙드시고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Ⅲ.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말씀을 붙들고 평안을 누리며 찬양하는 삶 (시편 147:12~20)

이제 시편 147편의 마지막 단락은 하나님을 경험한 성도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12절입니다.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시편 147편을 보면 1절에서 찬양으로 시작하고, 7절에서도 찬양을 권면하며, 마지막 역시 찬양으로 마무리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삶은 결국 찬양으로 귀결됩니다. 찬양은 좋은 일이 있을 때만 드리는 노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사람이 드리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13절과 14절입니다. “그가 네 문빗장을 견고하게 하시고 네 가운데에 있는 네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며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큰 복은 재물이 아닙니다. 평안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안, 곧 ‘샬롬’은 단순히 문제가 없는 상태를 뜻하지 않습니다. 환경은 여전히 어렵지만 하나님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안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공했지만 평안을 잃어버렸습니다. 재산은 늘었지만 불안도 함께 커졌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마음은 더욱 외로워졌습니다. 세상이 주는 행복은 일시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환경을 넘어서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은 문제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평안을 누리는 삶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15절부터 18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의 명령을 땅에 보내시니 그의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눈과 서리, 우박과 바람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겨울을 오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얼어붙은 땅을 녹여 봄을 허락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자연 만물은 하나님의 명령 앞에 즉시 순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신앙의 성숙은 성경을 많이 아는 데 있지 않습니다. 들은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겨울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기도가 메마르고, 마음이 굳어지고, 예배의 감격이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임하면 얼어붙은 영혼이 다시 살아납니다. 회개의 눈물이 흐르고, 감사가 회복되며, 소망이 다시 피어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살아 있는 말씀은 오늘도 사람을 변화시키고, 가정을 회복시키며, 교회를 새롭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씀을 듣는 데서 멈추지 말고, 순종으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셋째, 말씀의 특권을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19절과 20절입니다. “그가 그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할렐루야.” 이스라엘의 가장 큰 축복은 풍요로운 땅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같은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인 성경을 자유롭게 읽고 묵상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세상은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지만,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미래를 알기 위해 점술과 미신을 찾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세상은 불확실한 내일을 두려워하지만,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소망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우리의 삶을 비추는 등불이며,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길을 인도하는 나침반입니다. 말씀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말씀을 붙드는 가정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말씀 위에 세워진 교회는 어떤 시대에도 사명을 감당합니다.

결론

오늘 시편 147편은 우리에게 세 가지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고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시는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세상의 힘과 조건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은혜를 의지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셋째, 성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말씀에 순종하고, 날마다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에도 겨울이 계속되고 있습니까?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마음은 지쳐 있으며,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겨울이 영원한 계절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얼음은 녹고, 메마른 땅에는 다시 생명이 움트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절망은 소망으로 바뀌고, 눈물은 감사로, 탄식은 찬양으로 변합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고, 가정과 교회, 삶의 모든 자리를 새롭게 세우실 줄 믿습니다. 이번 한 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 입술마다 “할렐루야”의 찬양이 넘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시편 147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상한 마음을 아시고 눈물을 닦아 주시는 주님, 우리의 연약함과 상처를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우리의 심령을 치유하시고 무너진 삶을 다시 세워 주옵소서. 세상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경외하며 주의 인자하심만을 바라보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말씀 위에 굳게 서게 하시고, 어떤 환경 속에서도 주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원망보다 감사가 많게 하시고, 염려보다 찬양이 많게 하시며, 두려움보다 믿음이 더욱 커지게 하옵소서. 이번 한 주간도 말씀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우리의 걸음을 지켜 주셔서 어디를 가든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회복자 되시며 소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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