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교회사가 故 김영재 교수를 추모하며(1)

오피니언·칼럼
기고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명예교수)
김영한 박사

합신대 은퇴교수요 기독교학술원 고문 가운데 한 분이신 김영재 교수(1935-2026)께서 지난 2026년 7월 11일 소천하셨습니다. 말기암 선고를 받으시고 연락하시기를 “이제 먼저 가게되었다”고 의연한 태도로 말씀하신 그분의 신앙이 생생하게 되살아 납니다.

만 91세 삶을 향유하시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시고 후학을 가르치시고 달려갈 길을 마치시고 천국에 입성하신 그분의 귀한 삶에 대해 후학으로서 존경을 표합니다. 지난 7월 1일 남양주시 수동면 병실에 방문했을 때 얼굴은 수척했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대화를 나누시면서 “이제 주말부터는 수면에 들어가게 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곡기를 끊으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복음주의적 신앙의 태도는 죽음에 직면하는 의연함과 본향에 돌아가게 되는 영원에 대한 사모와 기대가 체화(體化)된 것을 느꼈습니다.

1. 독일 포이딩겐 시골교회를 목회하면서 마르부르그대신학부에서 한국교회사 연구하셨습니다.

제가 교수님을 처음 뵙게 된 것은 1970년대 중반 당시 목사님이 독일 유트(Judt) 목사의 초빙으로 독일 중북부 포이딩겐에 있는 독일 시골교회에서 목회하던 중이었습니다. 제가 독일 남서부 하이델베르그대 철학부에서 1974년대에서 철학박사(Dr. phil.)를 끝내고 마르부르그대학 신학부에서 연구하던 중 김영재 목사님을 만나 신앙적 학문적 교제를 시작하였습니다.

고인(故人)은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고와 서울대 종교학괴를 졸업하고 영국의 브리스톨(Bristol)에 있는 클리프톤 신학교(Clifton Theological College)와 독일 부퍼탈 신학교(Wuppertal Kirchliche Hochschule)에서 수학했습니다. 총회신학교에서 편목 과정을 이수한 뒤, 독일의 유수한 마르부르그(Marburg)대학에서 교회사가 빈프리드 첼러((Winfried Zeller, 1911–1982)교수 지도하에서 “한국개신교와 칼빈주의 전통”(Der Protestantismus in Korea und die calvinistische Tradition, Peter Lang, Frankfurt am Main, 1981)에 관한 논문으로 예장 고신측 및 합동측 보수교회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신학박사 학위(Dr. theol.)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마내소타와 애틀랜타 한인교회애서 목회하시다 귀국하여 총신대와 합신대에서 교회사를 가르치시다 정년퇴임하시고 용인시의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은거하면서 저술활동을 하셨습니다.

2. 한국교회사에 대한 개혁신학적 서술하셨습니다.

(고) 김 교수님은 고신 교단 출신으로 합동측 교단의 총신대에서 가르치다가 1980년대 교단 분규로 인하여 합신대로 옮겨가 한국교회사와 기독교 교리사를 가르치시며 후학들에게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사유하며 신앙생활하는 방식을 가르쳤습니다. 총신대에 계실 때에는 차영배 교수와 함께 정통개혁신앙과 신학을 계승하면서도 보수신학의 약점인 폐쇄성과 바리새적 자기 의(義) 고착 사유방식을 고치기를 추구한 개혁파 교수의 입장에 섰습니다. 총신대 신대원 시절 3년 조교 지내고 박사학위 논문 지도를 받은 강경림 박사(안양대 신학과 명예교수)는 “김영재 교수의 한국사 저술을 읽음으로써 비로소 개혁주의 역사관을 알게되었으며, 학문적 용기를 갖고 한국교회사 논문을 쓰는 후학들이 나오게 되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고) 김영재 교수는 『한국교회사』(개혁주의 신행협회 1992, 합신대 출판부 2002, 2009) 저술을 통하여 개혁주의 구속사관의 입장에서 한국교회사를 보는 관점을 제시하였습니다. “교회사는 기독교사와 달리 교회의 역사와 신학이 하나로 결합된 것이어야 한다”고 개혁주의적 입장을 분명히 천명하였습니다. 고인(故人)은 한국교회사를 단순히 민족 중심의 관점에 보는 민족사관이나 민중의 저항중심으로 보는 민중사관을 극복하고 기독교 신앙고백이 중심이 된 주류교회의 신앙고백의 관점에서 해석하셨습니다. 한국교회사를 정통개혁신앙의 입장에서 보는 관점이 교게와 학계에 학문적으로 자리잡도록 하는 데 공헌하셨습니다.

3. 기독교 교리사에 대한 신앙고백적 해석을 제시하셨습니다.

(고) 김영재 교수님은 『기독교교리사』(합신대 출판부, 2006, 2009), 『기독교신앙고백』(사도신경에서 로잔협약까지, 영음사, 2011) 등의 저술을 통하여 단지 교리의 연속이 아니라 종교개혁의 정신이 계승되는 신앙고백의 정신을 강조하셨습니다. 고인은 교리사를 교리의 발전사로 보지 않고 “교리에 대한 이해의 발전사”라고 보았습니다. 유명한 교리사가 하르낙으로 대표되는 일반 자유로운 사상가들은 교리의 형성을 주변의 종교 사상과 접촉에서 혼합주의적 관점에서 기독교 교리를 초기신앙을 희랍사상과의 혼합적 산물(syncretism)로 보았습니다. 이에 반해서 고인(故人)은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유대교와 일반 종교를 구별하고 있으며, 교리가 단지 종교 사상이 아니라 사도신경(Apostles’ Creed)처럼 성경적 진리에 입각하여 순교에 이르기까지 신앙을 표현한 교회와 신자의 신앙고백이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고) 김영재 교수님은 『그리스도인의 매뉴엘』(합신대 출판부, 2006) 저술을 통하여 개혁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개혁신앙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며 교회 목회자들이 신자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해주었습니다. 고인(故人)은 “신학이 하나님을 알고 우리 자신을 아는 일을 추구하는 학문이라면, 그것은 우리의 믿음과 삶을 전제로 하며,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고 믿음과 신학이 밀접한 관계 속에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독일에서의 만남과 신앙의 교제는 미국을 거쳐 교수님께서 한국에 돌아와 총신대와 합신대에서 교회사 교수로 봉직하시면서 총신대 차영배 교수와 숭실대 제가 1982년 함께 출범한 올해 44년 전통의 기독교학술원의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고인은 1996년 한국개혁신학회가 숭실대 과학관 회의실에서 창립되었을 때 차영배 교수와 함께 해주셨고, 학회에서 중요한 기조 강연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합신대에서 은퇴하신 후에는 기독교학술원에 자주 오셔서 동료 김명혁 교수님과 함께 선배로서 개혁신학에 관해 강의해주시고 기독교학술원의 신앙과 신학 형성의 배경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다 큰 영애 가족이 살고 있는 미주 애틀랜트로 이주하셔서 한동안 노후생활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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