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영국 왕실령 맨섬(Isle of Man)의 기독교 교계가 현재 의회에서 추진 중인 조력존엄사 법안에 대해 취약계층 보호 장치가 미흡하다며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고 7월 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영국 성공회, 감리교, 가톨릭 등 맨섬 내 주요 기독교 단체들을 대표하는 '맨섬의 살아있는 교회들' 연합은 해당 법안이 성급하게 입법되고 있다며 의회에 부결을 촉구했다.
해당 조력존엄사 법안은 아직 정식 법률로 제정되지 않은 상태다. 앞서 영국 법무부가 인권 침해 우려를 제기해 영국 국왕의 재가가 한 차례 무산된 바 있으며, 지난 6월 일부 수정안을 거쳐 의회에 다시 제출됐다. 이 법안은 맨섬 하원이 총선을 앞두고 해산되는 오는 8월 13일까지 최종 재가를 받지 못하면 자동 폐기된다.
취약계층 생명 위협과 조력존엄사 강압 논란
맨섬 교회 연합의 조력존엄사 대응 대변인인 빌 리시먼 브로드웨이 침례교회 목사는 해당 법안의 통과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며 안락사 합법화가 취약계층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리시먼 목사는 이미 조력존엄사를 합법화한 캐나다, 네덜란드, 벨기에 등에서 무언의 강압이 이뤄진 실질적인 증거들이 확인되고 있다고 밝혔다. 명시적인 강요가 없더라도 죽음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미국 오리건주의 사례를 인용하며 최근 몇 년간 조력존엄사를 선택한 사람들의 약 절반이 가족이나 지인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꼬집었다. 다수의 노인과 취약계층이 이미 가족에게 부담을 준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조력존엄사 제도는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압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리시먼 목사는 국가의 자살 예방 정책과 조력존엄사 법안이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과거 무고한 생명을 빼앗을 수 있다는 이유로 사형제가 폐지된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며 조력존엄사 역시 취약계층을 억울한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치명적인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강조했다.
성급한 법안 수정과 의료 안전망 붕괴 우려
영국 기독교 교계는 공식 성명을 통해 틴월드(맨섬 의회)의 수정안에 포함된 보호 조치가 턱없이 부족하며 통상적인 의회 심사 과정 없이 법안이 성급하게 처리되었다고 규탄했다. 인간의 생사와 직결된 중대한 사안이 섬의 민주적 절차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교회 연합은 법안에 대한 철저한 심사를 요구하며 안락사 합법화가 호스피스 및 완화 의료 지원 예산에 미칠 타격을 경고했다. 이는 맨섬 의학회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맨섬 의학회는 조력존엄사 법안이 지역 보건 인력의 구인난을 심화시키고 임상 의사들에게 부정확한 기대수명 예측을 강요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특히 조력존엄사 과정에 참여하는 의사가 말기 질환 진단이나 관리에 대한 임상 경험을 갖출 필요가 없다는 조항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단 한 명의 의료 종사자만 참여하면 되고 그 인력이 의사가 아니어도 된다는 규정은 투명성과 환자 보호 장치의 심각한 결여를 의미한다고 교계는 지적했다. 아울러 신념에 따라 안락사 시술 참여를 거부하는 의료진이 실직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유럽인권협약 위반 소지와 선거 쟁점화
의료진과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조력존엄사 반대 단체 '맨섬 의무의 돌봄' 소속 그레이엄 맥올 박사는 영국 법무부가 이 법안에 대해 유럽인권협약(ECHR)이 규정한 기본 인권 보호 장치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맥올 박사는 정부가 자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에는 죽음에 대한 독립적인 검토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맥올 박사는 선거를 앞두고 통상적인 입법 절차를 우회하는 부실한 수정안이 제안되었다고 지적하며 법안 통과 시 유럽인권법원에 법적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는 법안이 최종 제정될 경우 의사의 오진 위험, 학대 피해자의 강압 노출, 완화 의료 체계 붕괴 등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맨섬의 모든 기독교 교단과 의료 및 사회단체들은 안락사가 일상화될 경우 말기 질환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제도가 확산될 수 있다며 법안의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맥올 박사는 조력존엄사 법안이 다가오는 총선에서 모든 후보가 입장을 밝혀야 할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며 정치권의 신중하고 책임 있는 결정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