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국가의 경제발전에 미친 영향이 기존 경제학계의 인식보다 훨씬 크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영국 크리스천투데이(CT)에 따르면, 이번 연구는 종교적 신념과 제도, 종교적 관행이 교육과 금융 시스템, 가족 규모, 기술 혁신, 정치 제도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러한 요소들이 세계 각국의 경제 성과를 장기적으로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연구는 독일 연구기관 RFBerlin이 지난 5월 발표했으며, 영국 워릭대학교(University of Warwick)의 사샤 베커(Sascha Becker) 교수, 미국 채프먼대학교(Chapman University)의 재러드 루빈(Jared Rubin) 교수, 독일 뮌헨대학교(University of Munich)의 루트거 뵈스만(Ludger Woessmann) 교수의 경제학 연구를 종합·검토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연구진은 투자와 기술, 인적자본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을 설명해 온 기존 경제이론에 문제를 제기하며, 종교가 경제학자들이 성장의 핵심 요인으로 꼽는 여러 요소들을 형성하는 배경으로 작용해 왔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종교는 개인의 신앙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지배하는 기본적인 제도와 규범을 형성함으로써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종교개혁이 교육과 경제발전 이끌어
연구진은 종교가 경제발전에 미친 대표적인 사례로 종교개혁을 꼽았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모든 신자가 직접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러한 신념은 유럽 전역의 개신교 지역에 학교 설립을 촉진했다.
그 결과 19세기 프로이센에서는 개신교 지역의 문해율이 인접한 가톨릭 지역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교육 수준의 차이가 개신교 지역의 경제발전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이는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가 개신교의 번영을 주로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Protestant Work Ethic)’에서 찾았던 기존 이론보다 교육의 역할이 더욱 중요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영향은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개신교 선교사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중남미 곳곳에 학교를 세웠으며, 이들 지역은 오늘날까지도 높은 문해율과 교육을 통한 사회적 이동성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고 연구는 밝혔다.
금융·은행 발전에도 종교 영향
연구는 종교가 금융제도의 발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역사적으로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행위를 제한해 왔다.
이후 다양한 우회 방식이 등장했지만, 이러한 종교적 규범은 수세기 동안 은행업과 상업 발전의 방향에 영향을 미쳤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특히 오스만 제국의 오랜 지배를 받았던 지역은 오늘날에도 인접 지역보다 은행 서비스 보급률이 약 10%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는 혁신 촉진하기도, 저해하기도
종교는 기술 혁신에도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모두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대표적인 사례로 연구진은 오스만 제국이 약 250년 동안 아랍어 활자의 인쇄를 금지했던 정책을 제시했다.
이 조치는 지식의 확산을 늦추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반면 서로 다른 종교 집단이 공존하는 지역에서는 혁신이 더욱 활발하게 나타났다.
19세기 후반 프로이센 도시들을 분석한 결과, 종교적 다양성이 높은 지역일수록 특허 출원 등 기술혁신 활동이 더욱 활발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 방식도 경제성장에 영향
연구는 종교와 교육의 관계를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주류 개신교나 전통적 유대교는 문해력과 수리 능력을 길러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반면, 일부 마드라사(이슬람 신학교)나 초정통파 유대교 예시바(Yeshiva)는 신학 교육에 집중하면서 현대 경제에서 요구되는 기술 교육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연구진은 이러한 관계는 종교 전통과 시대적 배경, 지역적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출산율과 경제발전에도 영향
종교적 가치관은 가족 규모와 인구 증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유럽에서는 개신교 지역이 가톨릭 지역보다 출산율이 낮은 경향을 보였으며, 이는 교육을 더욱 중시하는 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인구 구조 변화가 장기적인 경제성장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종교를 단순한 문화 요소로 봐선 안 돼”
보고서는 오늘날 정책 입안자들이 경제 문제를 다룰 때 종교를 단순한 문화적 배경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종교가 교육과 금융, 가족제도, 공공기관 운영 등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정책 수립 과정에서 더욱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집트와 튀르키예의 사례에서는 교육 개혁을 통해 종교의 영향력을 줄이려 했지만 오히려 종교 운동이 더욱 강화되는 역효과가 나타난 사례도 소개됐다.
종교 자유가 혁신과 경제성장 촉진
연구는 종교의 자유와 관용 역시 경제발전의 중요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사회일수록 아이디어 교류와 혁신이 활발해지는 반면, 종교 박해는 인적자원과 사회적 네트워크를 파괴해 경제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연구는 주로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불교와 힌두교, 유교 등 다른 주요 종교의 경제적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럼에도 연구진은 “경제발전을 논하면서 종교를 더 이상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기존 경제성장 연구가 종교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는 사실은 중요한 공백”이라며 “어떤 국가는 번영하고 어떤 국가는 빈곤에 머무는지를 이해하려면 종교적 신념과 종교 제도가 사회를 형성해 온 강력한 역할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